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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실을 벗어나 광야로

30년 근속한 대기업 부장의 사직서

by 꿈꾸는 아재

회사에 어제 사직서를 냈다.


긴 세월 미운 정 고운 정이 켜켜이 쌓인 사랑하는 나의 회사였다. 대리부터 부장까지는 한 번도 승진을 놓치지 않았지만 14년간 나는 내내 부장이었다. 일명 대마불사 대기업 만년 부장. 이곳에서 개나리 꽃 피는 계절을 서른 번 맞았고 눈 내리는 계절도 서른 번 보냈다. 어느 새 내 머리에도 눈꽃이 피기 시작했다.


이 회사를 다닌 덕분에 아내를 만나서 결혼을 했고 어여쁜 두 딸이 대학을 졸업했다. 기쁜 날들도 많았고 그만큼의 힘든 날들도 있었다. 일 욕심에 과로로 쓰러지기도 했고 암을 만나 병가를 냈던 적도 있었다. 믿었던 회사 사람에게 배신당한 후 정신적 경제적 고통으로 베개를 적셨던 날들도 있었다. 고향에서 그 소식을 전해 들으셨던 어머니께서 쌀포대 쌀 속에 이천만 원이 넘는 현금을 함께 파묻어서 보내주셨다.

십 수년간 조개나 야채 파셔서 장롱 속에 모아두신 꼬깃꼬깃 만원권 뭉치였다. 은행 입출금도 할 줄 모르셔서 쌀포대에 현금을 파묻어 보내신 무지한 시골 촌로셨지만 ‘험한 세상 다시 만나더라도 절대 굴하지 말라’ 시며 아들을 다독이시던 태산 같은 어머니셨다. 그렇게 뼈가 아릴 정도였던 내 직장생활도 결국 사람이 다시 일으켜 주었다. 사랑하는 가족들, 참 좋았던 회사 동료 선후배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퇴사를 만류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안정된 소득 누리면서 정년까지 가라는 조언이 대부분이었다. 흔들린 날들도 있었지만 결국 떠나기로 결정했다. 오랜 기간 몸담았던 소속 직제가 해체되어서 직원들을 뿔뿔이 흩어지게 만든 일말의 책임감도 컸다. 또 하나는 좋아하는 일에 대한 꿈이었다. 내 모든 걸 쏟아부었던 그간의 업무와는 동떨어진 직무로 배치받아 정년까지 월급루팡 되기는 싫었다. 배부른 소리, 알량한 자존감일 수도 있다. 퇴사의 결심을 나 홀로 마음에만 품고 석 달 전 브런치를 시작했을 때의 마음도 생각난다. 글로 담아낸 내 마음 내가 배반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이제, 드디어, 마침내, 따뜻했던 온실을 떠나 춥고 배고플 광야로 나선다.


【김부장 이야기, 그리고 우리들의 이야기】

최근 TV드라마 <김부장 이야기>가 인기였다. 젊은 시절에는 <미생>의 장그래였을 수도 있을 대기업 25년 차 김낙수 부장 이야기는 언뜻 보면 뻔한 직장 드라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우리 세대가 지난 이삼십년 동안 버틴 시간과 눈물, 책임, 애증이 촘촘히 새겨져 있다. 드라마 속 김부장은 늘 묵묵하고, 어딘가 굽히지 않으면서도, 또 어디에 선가는 자신도 모르게 타협하며 오늘을 버티고 사는 우리의 또 다른 얼굴이다. 회사라는 거대한 구조 속에서 자기 목소리를 잃지 않고 살아남는 것조차 어렵고, 때로는 맞서야 했고, 때로는 삼켜야 했던 날들. 그런 날들 속에서 그의 언어는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마음을 때리는 건 언제나 투박한 진심이다. 간간히 평균적인 직장인의 현실을 벗어난 장면들도 있지만 인기의 이유는 어쩌면 단순하다.

“지금 그 자리를 버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서사와 고단을 품고 있는지”


드라마 원작자 송희구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건네고 싶었다고 말한다. 학생 때는 몇 학년 몇 반 누구로, 사회에서는 대리, 과장, 부장으로 불려 왔지만 그 명함이 사라지면 나는 누구인가? 만년 대기업 부장이라는 정체성으로 살아온 나에게도 그 질문은 송곳처럼 가슴을 뚫고 들어왔다.


많은 한국인들이 정년 제도를 믿고 산다. 그러나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2024년 퇴직자의 평균 퇴직 연령은 51.2세이며 이들 중 84%는 "계속 일하고 싶다"라고 답했다. 원하는 근로 연령은 평균 70.5세, 퇴직 이후 19년을 더 일하길 원하는 셈이다. 하지만 냉혹한 노동시장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은 넘치지만 정작 설 자리가 없다. 주된 직장에서 50세 이전에 퇴직하는 비율은 45.9%로 절반에 육박한다. 더 가혹한 것은 퇴직 사유 중 정년퇴직 비율은 10%가 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세월이 흘러 베이비붐 세대와 MZ 세대에 끼여 양쪽의 눈치를 봐야 하는 4050 '낀 세대'. 위로는 고령의 부모를, 아래로는 자녀를 부양하면서 자기 노후 준비까지 떠안고 있는 전형적인 '샌드위치 세대'가 눈앞에 직면한 현실이기도 하다. 그런 통계 숫자의 비자발적 한 명으로써 '버티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사직서를 쓰기까지의 밤들, 그리고 새로울 밤들】

사직서를 쓰기로 결심하기까지 수많은 밤을 뒤척였다.

드라마 <김부장 이야기>의 김부장과 정대리가 모텔에 누워 나누는 대화 장면도 생각했다. 정대리는 "가장의 무게를 견뎌야 하는 것이 무섭다"라고 토로하고 김부장은 "가족을 지킨다는 것은 숭고한 것이지만 사실 나를 지키는 것"이라고 고백한다. 그렇다. 나는 가족을 위해 버텨왔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대기업 부장'이라는 명함 속에 갇혀 진짜 나를 잃어가고 있었던지도 모른다. 치매처럼 '나다움'이 소멸될까 봐 겁났다.


대기업은 안전한 온실이 맞다.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 명함 하나만 내밀어도 열리는 많은 문들, 예측 가능한 미래가 많았다. 앞서 걸었던 이들이 온실 밖 세상은 생각보다 춥고 배고프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아무도 보호해주지 않는 곳, 모든 걸 스스로 개척해야 하는 곳. 하지만 광야에는 온실에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자유와 오롯한 자기 책임이다. 재기불능 수준으로 실패할 수도 있지만 그 실패조차 온전히 나의 것이다.


사직서를 제출할 때 손이 떨렸다. 30년의 무게가 달랑 A4 용지 한 장에 담겨 있었다.

회사라는 험한 물길을 건너면서도 끝내 자신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되는 법. 중년은 흔히 인생의 ‘전선 중앙’이라 불린다. 뒤에는 지켜야 할 가족이 있고, 앞에는 여전히 파도가 밀려오고, 그 가운데서 자신을 잃지 않는 것이 이 세대의 유일한 자존이었다. 그러나 <김부장 이야기>는 또 하나의 중요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

“중년의 삶은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마지막이자 최초의 시간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도 비슷한 갈림길에 지금 서 있는 분도 있을 수 있다. 버티라고 하는 목소리와 떠나라고 하는 목소리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떠나야 한다고 나는 절대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것은 누구도 대신 결정할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이것만은 나누고 공감하고 싶다. 남든 광야로 나가든, 중요한 것은 그 선택이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진짜 내 의지에서 비롯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두려워서 머무는 것과 선택해서 머무는 것은 다르다. 떠나는 것도 마찬가지다. 남는 것도 떠나는 것도 그만큼의 큰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어떤 선택이든, 나와 비슷한 선택을 앞둔 분이 있다면 그 선택이 '자기다움'을 더 단단하게 살아내는 길이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나도 그런 내가 될 수 있도록 응원받기를 소망한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지금도 불안하다. 재수 없으면 120세까지 살 수도 있는 세상인데 '내가 잘한 걸까. 버틸 수 있을까. 가족들은 괜찮을까.' 오만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돈다. 하지만 이 불안과 막막함은 동시에 살아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오랜만에 느끼는 진짜 날것의 감정이다. 온실 안에서는 모든 것이 예측 가능했기에 두근거림도 불안도 덜했다. 그러나, 지금의 이 불안은 역설적으로 내가 새롭게 살아 움직여야 한다는 신호다. 흔들린다는 건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흔들린다는 건 내 안의 용기와 두려움이 정직하게 그리고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는 증거다.


인생의 가장 큰 성장은 예측 불가의 불안을 통과하며 생긴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인생을 직책이 아니라 선택을 통해 완성해 나가고 싶기에 허허벌판을 마주하기로 했다. 분명 광야는 비바람이겠지만, 적어도 거기에는 나만의 별이 있을 것이다. 온실의 천장에 가려 보지 못했던 수없이 많은 별들. 그 별빛들을 따라 걸어가다 보면 비록 희미하더라도 나만의 별을 언젠가는 만나겠지.


“아꼈던 사람들, 소중한 곳을 떠나는 모든 이들의 뒷모습이 담담하고 당당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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