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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레나 Apr 18. 2023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나의 베스트 영화

나는 한 번 봤던 영화는 다시 보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는 최근까지 모두 4번을 봤다. 너무 아련하고 아름답고 가슴을 간질간질하게 해주는 영화라고 할까? 이전에 볼 때는 와닿지 않았던 대사와 장면이 새롭게 다가오고 이번에는 ost까지 너무 좋게 들려서 멜론에서 찾아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해서 매일 듣고 있다. 후샤의 'Those Bygone Years'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는 대만의 어느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첫사랑에 대한 영화이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커징텅의 친구들이 '결혼식 날 신부를 기다리게 해서야 되겠니?'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커징텅과 션자이의 결혼식이었다면 좋았겠지만 대부분의 첫사랑 이야기가 그러하듯이 둘의 결혼식이 아니었다.


학창 시절로 돌아간 영화는 주인공들의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를 들려준다.

공부에는 관심이 없고 친구들과 유치한 장난만 일삼던 커징텅이 어느 날 선생님께 혼이 나면서 모범생 션자이의 앞자리에 앉게 되는데 선생님의 지시대로 션자이는 커징텅을 감시하고 공부도 도와주게 된다.

영어 시간에 책을 가지고 오지 않은 션자이에게 커징텅이 자신의 책을 건네고 대신 혼난 이후로 션자이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더욱 적극적으로 커징텅의 공부를 도와주는데 커징텅은 싫은 척을 하면서도 션자이가 시키는 대로 열심히 공부를 한다.

시험 성적 내기에서 커징텅이 져서 커징텅은 삭발을 하게 되는데 웬일인지 이긴 션자이도 졌을 때 벌칙이었던 머리를 묶어서 다니기를 시작한다. 영화 속 맘에 남는 장면들이 아주 많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머리를 묶은 션자이를 커징텅이 넋이 나간 듯 바라보는 장면이 정말이지 너무 좋았다. 이때 나온 음악도..ㅠㅠ 슬로 모션으로 웃으며 지나가는 션자이의 모습은 정말 너무 아름다웠고 말이다.

이때 이미 션자이도 커징텅을 좋아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학생주임 선생님의 부당한 지시(의심 가는 친구를 적어보라는)에 반기를 드는 주인공들의 에피소드도 좋았다. 선생님께 반항했다는 이유로 단체로 벌을 서게 되는데 모범생이기만 했던 션자이가 벌을 서면서 펑펑 울자, 커징텅이 "너 아까 정말 멋지더라." 라고 말해준다.

이 말에 션자이가 울면서 웃는데 그 모습이 너무 예뻤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커징텅의 모습도. 


어느덧 모두 대학 입시 고사를 치렀고 시험을 망쳐 우는 션자이를 위로하며 커징텅은 '이미 알고 있겠지만 나 너 좋아해.'라고 고백을 한다. 그런데 션자이는 우느라 '그래서 나더러 어쩌라는 거야?'라고 말해 버린다.

서로 다른 지역의 대학을 다니게 되면서 떨어져 지내게 되는데 커징텅은 매일 션자이에게 전화를 걸어 마음을 표현하지만 둘은 티격태격 되며 서로의 마음을 확실하게 확인하지는 못한다.


크리스마스에 둘은 여행을 가게 되는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함께 기찻길을 걸을 때 션자이가 말한다.

"커징텅, 너 정말 나 좋아해?"

"응 진짜 좋아해."

"어쩌면 너는 너의 상상 속의 나를 좋아하는지도 몰라."

"나 그렇게 상상력이 좋지 않아."

"사실 나는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좋은 애가 아니야. 집에서는 엉망이야. 아침에 일어나지도 못하고 사소한 일로 동생이랑 싸우고 말이야... 그래도 내가 진짜 좋아?"

"응 진짜."

"유치해. 좀 진지하게 대답해야지."


이때, 션자이는 둘이 사귀게 되었을 때 커징텅이 자신의 모습에 실망할까 봐 두려웠던 것 같고 커징텅은 션자이가 왜 자꾸 저런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션자이가 자신을 거절하고 싶은 것을 돌려 말하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둘이 소원 풍등을 날리기 전에 션자이는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려고 하는데 커징텅은 거절당할까 봐 두려워 대답을 하지 말라고 한다.

"그냥 너를 계속 좋아하게 내버려 둬."

사실 이때 션자이는 풍등에 '좋아해. 우리 사귀자.'라고 써서 날렸는데 말이다.


커징텅은 확실하게 션자이의 마음을 사로잡고 싶어서 학교에서 열리는 격투기 대회에 참가해 션자이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다. 미숙한 남자는 여자의 성숙함을 견디지 못한다는 독백이 나오는데... 이 사건으로 인해 둘은 크게 싸우게 된다. 션자이는 격투기에서 맞는 커징텅이 안타깝고 마음이 아파 왜 이렇게 유치하냐고 화를 내는데 커징텅은 자존심이 상해 '그래 나 유치하다!'라고 소리를 치고 만다.

비가 내리는 와중에 둘은 서로 떨어져 우는데.. 그러고는 진짜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헤어지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실제로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커징텅이 울고 있는 션자이에게 다가가 눈물을 닦아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제로 그랬다면 어땠을까? 션자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션자이의 얼굴에 손을 대는 커징텅과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그런 커징텅을 바라보는 션자이... 둘의 모습이 너무 예뻤다.)


커징텅이 션자이와 싸웠다고 하자 션자이를 오랫동안 좋아해 온 커징텅의 친구 아허가 션자이에게 다가가는데 션자이는 커징텅을 잊지 못하면서도 아허와 5개월이나 사귄다.

아허와 영혼 없는 대화를 나누면서 카페 창밖으로 서로 싸운 커플이 화해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션자이는 희미하게 웃음을 짓는데, 아마 커징텅과 다퉜을 때, 먼저 진심을 표현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듯했다.


시간이 흘러 대학 4학년이 되고 타이베이에서 지진이 발생하자 커징텅은 션자이에게 전화를 건다.

둘은 오랜만에 대화를 하며 지난 추억들을 이야기하는데...

션자이는 커징텅에게

"누구도 너만큼 날 좋아하는 것 같지 않았어."라고 말해준다.

왜 나를 거절했냐고 묻는 커징텅에게 션자이는

"사람들이 말하는데 누군가를 사랑할 때 가장 아름다운 시간은 시작하기 전 설레는 감정이라고. 정말 사귀고 나서는 좋았던 감정이 많이 사라져 버린대. 그래서 네가 좀 더 오래 날 좋아하도록 두고 싶었어."라고 말한다.


"션자이, 그거 알아? 평행 세계가 있다면 그곳에서 우린 함께일 거야."

"그 사람들 정말 부럽다."


진심을 표현하지 않는 션자이가 답답했지만 너무 사랑하고 소중하기 때문에 남겨 두었던 감정이 이해가 될 것도 같았다.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더 애틋하고 소중하며 아련한 것이 첫사랑인 것을.


그리고 세월이 지나 커징텅은 션자이의 결혼식에 초대받게 된 것이었다.

커징텅은 진짜 사랑은 그 사람과 함께이지 못해도 그 사람의 행복을 빌어주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예쁜 드레스를 입고 입장하는 눈부신 션자이의 모습을 바라보는 커징텅의 표정이 그 마음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영화의 마지막은 커징텅과 션자이의 키스(진짜 키스가 아니었지만)와 함께 과거 둘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음악과 함께 너무 아련하고 짠해서 보는 내내 가슴이 간질간질했다.


"난 계속 이렇게 유치하게 살 거다."

"그래, 꼭 그래라."


커징텅은 인터넷 소설 작가가 되었는데 그들의 이야기를 글로 쓰기로 한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아서 더 아름답다는 것을 잘 알지만 둘의 모습이 너무 예뻐서 이루어지지 않은 결말이 내심 아쉬웠다. 게다가 션자이의 남편은 왜 그런 사람으로 설정했을까? (전혀 멋있지 않은 아빠같은 사람?)

그래도 나를 바라봐주지 않아도, 그 사람이 행복하면 그걸로 나도 행복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면 커징텅의 사랑은 마지막까지 진짜 사랑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우리는 보통 사랑을 할 때, 내가 사랑하는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사랑을 받고 싶어하니깐 말이다. 어쩌면 그건 진정한 사랑이라기 보다는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도 그랬던 것 같다. 지금도 마찬가지고.

내가 이만큼을 베풀고 마음을 표현했을 때, 그 만큼 돌아오지 않으면 속상하고 손해보는 기분이 드는 것.

어쩌면 이번 생에서는 진짜 사랑을 해보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사랑. 그저 상대방이 기쁘고 행복하면 나도 좋은 사랑.


'첫사랑'이라는 단어는 단어 자체 만으로도 설레고 아련한 느낌을 준다. '첫사랑'을 이렇게 잘 그려낸 영화가 또 있을까? 많이 서툴고, 환상이 깨어질까봐 조심스럽고, 어떤 해석이나 편집 없이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은 첫사랑의 감정을 너무 잘 그려낸 영화인 것 같다. 이 영화를 보고 대만에 대해서도 관심이 생겨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나의 소녀시대', '말할 수 없는 비밀' 등의 대만 영화를 찾아보기도 했었는데 또 다시 찾아 보게 되는 영화는 이 영화가 유일하다. '사랑'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고 오래 전 시절을 추억하게 만드는 나의 베스트 영화 중 하나이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너를 아프게 하지 않고 네가 진정, 그 사람이 삶이 아픈 것이 네가 아픈 것만큼 아프다고 느껴질 때, 꼭 나와 함께 아니어도 좋으니, 그가 진정 행복하기를 바랄 때, 그때는 사랑을 해야 해.


진정한 자존심은 자신에게 진실한 거야. 신기하게도 진심을 다한 사람은 상처받지 않아. 후회도 별로 없어. 더 줄 것이 없이 다 주어 버렸기 때문이지. 후회는 언제나 상대방이 아니라 자신을 속인 사람의 몫이란다.


더 많이 사랑할까 봐 두려워하지 말아라.


공지영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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