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마크는 괴짜다. 홍콩 국적인 마크가 외계인만 들입다 파고든지 벌써 10년째다. 그런 마크가 최근 서울에 있는 내게 전자우편을 하나 보내왔다. 외계인 연구에 있어서 전기가 될 만한 세기의 발견을 했다나 어쨌다나. 전자우편을 열어보니 보고서가 한 통 첨부돼있었다. 마크의 설명대로라면 이 보고서는 외계인이 쓴 것이다. 수년째 홍콩 상공을 지나는 전자기파를 모조리 탐지한 결과 우연히 일정한 형태를 띠는 파장을 발견해 해독해냈다는 게 마크의 설명이다. 나는 낙담했다. ‘드디어 마크가 미쳤구나.’ 헛된 욕심과 망상이 친구를 망쳤다는 생각에 우울해졌지만 이제는 광인이 된 친구가 보내온 마지막 결과물을 보지 않고 버리는 것 역시 예의가 아닌 듯해 첨부파일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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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번호 NX0822. ETKT6754407852621/2
보고자명 MCN C16EC2003WWUMM
태양 흑점 폭발로 인한 통신 장애로 보고가 늦어진 점 양해 바란다. 여기는 태양계 행성인 지구다. 현 위치는 중국 대륙 남부에 있는 홍콩이다. 통신 장애가 지속되는 동안 한반도에 있는 서울을 먼저 들러 현지탐사를 한 뒤 이곳 홍콩으로 이동했다.
먼저 지구에서 가장 흔한 생물체 중 하나인 인간을 소개해야겠다. 인간은 매우 미개한 종족이다. 인간은 단 다섯 개 감각만을 활용한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같은 가장 원초적인 감각만으로 세상을 접하다보니 가로, 세로, 높이로 구성된 3차원만으로 공간을 인식한다. 시간도 느끼긴 하지만 어림짐작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그러다보니 인간들 중 가장 똑똑하다는 물리학자라는 부류도 우리 관점에서는 무지렁이 수준이다. 이들은 강한 핵력, 약한 핵력, 전자기력, 중력 등 아직 4가지 힘밖에 발견하지 못했으며 아직도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결합시키지 못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더하기 빼기 수준인 중력을 겨우 조금 이해하는 데만 1만년 넘게 걸리고 있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17개의 감각으로 10차원을 살아가는 우리처럼 세상을 이해하라고 인간에게 요구하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다. 그럼에도 인간들은 자신들이 전 우주에서 가장 뛰어난 종족이라 착각하며 살아간다. 이같은 종족적 특성을 이해하고 다음 보고 내용을 읽어주길 바란다.
인간이 군집생활을 하는 ‘도시’라는 공간 중 홍콩과 서울을 탐사대상으로 삼은 것은 다양한 발전 단계를 밟은 곳이라서다. 두 도시 모두 한자문화권에 속해 있으며 고대와 중세, 근대를 거치며 중국대륙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후 각각 영국과 일본의 식민지를 거치며 시장경제체제와 자유민주주의를 받아들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비슷한 역사 탓에 도시의 외양 역시 매우 유사하다. 뾰족하게 솟은 빌딩과 아파트라는 고층 건물이 두 도시를 빽빽하게 메우고 있다. 좁은 면적에 너무 많은 인간들이 모여든 탓에 이처럼 집 위에 집을 얹는 미개한 방식의 건축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좀 더 분석해보니 고층 건물을 세운 것은 인간의 본성 때문이었다. 개체의 생물학적 생존과 사회적 생존을 추구하는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인간은 다른 개체들보다 더 강력한 힘과 권위를 가지려 했고 이 과정에서 계급과 재산의 격차가 발생했다. 홍콩과 서울에 신분제도가 있을 때는 상위 계급에 속한 자들이 자신의 영지를 확보한 뒤 이곳에서 충성맹세를 한 부하와 노예들을 거느리며 살았다. 이를 노예제 사회, 봉건사회라 불렀다. 그러다 식민지시대에 접어들어 신분제가 명목상 폐지된 후부터 지배자들은 고층 건물로 된 자신들만의 성을 지어놓고 세입자들을 들였다. 서울에서는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이 통용될 정도다. 서울 청년들의 꿈도 건물주가 돼 세를 받으며 사는 것이다.
건물주가 세를 더 받으려면 동일한 면적에 더 높게 지어서 최대한 사무실과 주택의 수를 늘려야한다. 홍콩은 특히 심하다. 40층 이상 되는 고층 아파트가 즐비해 마치 도시 곳곳에 칼을 꽂아놓은 듯하다. 홍콩의 건물은 외관만 좁게 느껴지는 게 아니다. 심지어 남자 화장실 소변기와 소변기 사이도 좁다. 나란히 볼 일을 보게 되면 발을 뻗기가 옹색할 정도다. 만만찮게 공간이 부족한 서울에서도 하루가 멀다 하고 수십 층짜리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다. 홍콩의 고층 건물이 칼이나 창을 연상시킨다면 서울의 고층 건물은 몽둥이를 떠올리게 한다. 건물은 재물을 독차지하겠다는 건물주의 욕심만큼 높아진다. 토지주들은 자신들만의 아방궁을 만들고는 세입자들로부터 인두세를 받으며 새로운 귀족으로 부상하고 있다.
고층 건물은 하늘에 닿는 집이라는 뜻의 마천루(摩天樓)로 불린다. 홍콩과 서울을 방문한 관광객이라는 무리는 고층 건물이 밀집한 도심을 찾아가는 습성이 있다. 이들은 화려한 조명에 열광하며 사진이라는 것을 찍는다. 홍콩의 소호거리, 헐리우드거리를 찾아온 전 세계 관광객은 멋지다며 사진을 찍기 바쁘다. 아름다움은 진실을 덮는 경향이 있다. 별들이 소곤대는 홍콩의 밤거리에 취하면 이 도시에 숨겨진 억압상을 간과하게 된다. 사실 사진을 찍는 관광객 중 대부분은 건물 소유자가 아니다. 대부분 건물주가 되길 간절히 원하는 이들이다. 홍콩인들이 소원을 비는 종교시설인 웡타이신 사원에서 그들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어봤더니 대부분이 ‘부자가 되게 해 달라’, ‘건물주가 되게 해 달라’, ‘돈을 많이 벌게 해 달라’였다. 그들의 미래를 보니 안타깝게도 그들 중 소원을 이룰 이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은 평생을 빚에 시달리다 살게 될 운명이었다. 홍콩인 중 90% 이상이 집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한 달에 200만원이 넘는 월세를 내면서 살아가야 한다. 한 평당 1억원을 호가하는 매매가 때문에 주택 구입은 꿈도 꾸기 힘들다. 홍콩인들 중 상당수가 해외 이주를 희망하는 이유도 바로 살인적인 주거비 부담 때문이다. 서울도 다르지 않다. BTS라는 가수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서울이 행복한 도시처럼 보이지만 도시 안에서는 귀족과 평민 간에 총성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토지주들과 현금부자들은 손바꿈을 통해 시세차익을 올리며 돈놀이를 한다. ‘내 집 마련’이라는 신화를 추종하는 서울 젊은이들은 자신의 미래를 빚과 맞바꾼다. 이들은 높은 이자를 감수하면서 수억원을 빌려 아파트를 구입한다. 그리고 그 이자와 원금을 갚는 데 자신의 남은 수십년 삶을 대가로 치른다. 귀족 건물주와 쌍무적 계약관계를 맺고 그들의 기사가 되기 위해 자신의 생애 중 한 뭉텅이를 기꺼이 지불한다. 젊은이들이 이런 희생을 치르는 것은 그래도 영주의 건물주로부터 기사 작위라도 하나 받는 게 낫기 때문이다. 어영부영하다가는 성 안에도 들어가지 못한 채 평생 저소득 월세 농노 신세를 면키 어렵기 때문이다.
홍콩과 서울은 모두 고도 성장기를 거친 도시다. 아시아의 용으로 비유될 정도로 두 도시는 급속도로 성장했다. 식민지시대 시장경제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식민정책에 적극적 또는 소극적으로 호응한 매판자본을 중심으로 자본축적이 이뤄졌다. 이들 매판자본가들은 수출주도 경제정책과 인구 증가로 인한 구매력 증가 등에 힘입어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중국이라는 거대한 경쟁자가 같은 방식으로 경제성장을 꾀하자 홍콩과 서울 모두 주도권을 잃어버렸다. 공산품 생산과 수출 등 모든 분야에서 중국에 주도권을 내주자 두 도시의 자본가들은 부동산을 활용한 돈놀이로 급선회했다. 이들은 재화의 공급이 끝난 부동산의 경우 가격이 장기적으로 오를 수밖에 없다는 점에 착안했다. 여기에 중산층의 호기심을 자극할 양념만 조금 쳐주면 단기적으로도 부동산 가격의 급등락을 통해 차익을 맛볼 수 있었다. 서울에서는 한때 부동산 돈놀이를 부추기는 ‘뉴타운 카지노’까지 성업을 이뤘다. 시 정부가 토지주들에게 기존 건물을 밀어버리고 고층 아파트를 지어 집값을 올리고 임대료를 벌 기회를 제공했다. 공권력을 투입해 기존 세입자들을 쫓아내주는 것은 일종의 덤이었다. 대체 주거지를 찾지 못한 영세세입자들은 ‘쫓아내려면 쫓아내라’며 농성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용산참사 등 인명피해가 수없이 발생했다. 재개발 재건축을 추진하는 토지귀족과 건물주들은 세입자들에게 강제점거를 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놨지만 보금자리를 뺏긴 세입자들은 강제철거를 하지 말라며 맞불로 대응하고 있다. 홍콩과 서울에서 벌어지는 건물주와 세입자의 전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칼자루는 건물주가 쥐고 있다. 두 도시에서 시장경제체제가 유지되는 한 재산권과 생존권 중 승자는 늘 재산권일 수밖에 없다. 둥지 내몰림(젠트리피케이션) 현상 역시 건물주와 세입자간 전쟁의 일환이다. 건물주는 주변 환경이 좋아진다는 이유로 월세를 올리고 세입자를 쫓아낸다. 월세를 올릴 이유는 허다하고 월세를 내릴 이유는 하나도 없다. 지불능력이 떨어진 기사를 영지 밖으로 쫓아내는 귀족 영주에게 자비를 구해봤자 소용없다. 4세기 강력한 기세로 유럽대륙으로 쳐들어오는 소수정예 훈족 앞에 기존 게르만족이 하릴없이 대규모 이주를 해야 했던 것처럼 힘없고 돈 없는 인간들은 늘 추풍낙엽 신세다. 인간들의 역사는 늘 그랬다. 약자를 위한 시대는 없었다. 약자가 강자로 등극하고 강자는 약자로 전락하는 권력 교체가 있었을 뿐. 미개한 인간들에게 타자에 대한 진정한 공감을 바라는 것 자체가 무리다. 물론 건물주가 세입자를 몰아붙이는 이 일방적인 전쟁에서 세입자의 손을 들어주는 인간 지도자도 있다. 서울시의 현직 시장은 별난 인물이다. 그는 재개발 재건축으로 인한 세입자 쫓아내기를 막겠다며 뉴타운 카지노를 폐쇄했다. 이 시장은 재개발 재건축을 하려는 건물주들에게 저소득층을 위한 공공임대주택을 포함시키라고 주문한다. 그는 시민보다 시장이 우선시되는 서울에서 반란군 지휘자나 마찬가지다. 사람이 아닌 돈이 지배하는 서울이란 도시에서 사람을 우선시하겠다는 것은 반란이나 다름없는 행위기 때문이다.
우리 종족에게 주어진 축복받은 능력을 바탕으로 인류의 미개한 역사를 두루 살펴본 결과 인류 역사는 이기심과 이타심의 거대한 전쟁으로 분석됐다. 홍콩과 서울에서 벌어지는 건물주와 세입자의 싸움은 이 거대한 전쟁의 일부분일 뿐이다. 시장경제체제와 계획경제체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역시 이 전쟁의 일환이다. 이 전쟁에서 대부분 이기심이 승리해왔다. 어쩌면 홍콩과 서울은 이기심 숭배의 최전선에 있던 도시라 할 수 있다. 중요한 점은 이 두 도시가 조만간 이타심을 숭배하는 도시 내지 국가와의 인위적인 융합을 앞두고 있다는 점이다. 홍콩은 2047년 일국양제 체제를 벗어나 중국에 완전 통합되고, 서울은 한반도 통일 시 대규모 북한인 유입을 앞두고 있다. 중국과 북한은 모두 이타심을 숭배해온 나라다. 전혀 다른 방향을 지향해온 체제와 구성원이 인위적으로 섞였을 때 과연 그 결과는 어찌될까? 이기심과 이타심 중 어느 한쪽만 옳다는 원리주의적 접근으로는 실패를 면키 어렵다. 이타심 없는 이기심은 늘 소외된 약자들의 저항을 불러왔고 이기심 없는 이타심은 늘 약자의 대변인을 참칭한 독재자들의 전횡으로 시름에 젖었다. 홍콩과 서울에서 살아갈 인간들이 어떤 해법을 내놓을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인간 역사에 영원히 번영한 도시는 없었다는 점을 명심해야할 것이다. 무(Mu) 대륙과 아틀란티스, 모헨조다로, 나스카 등 도시들도 한때 번영을 구가했지만 지금은 흔적만 남았다. 물론 우리 종족은 이 도시들이 어떻게 멸망했는지 그 사연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 하지만 인간들에게 이를 공개하지는 않을 것이다. 진실을 알려줘도 인간들은 결국 이기심과 이타심의 양쪽으로 나뉘어 양쪽의 주장에 맞게 진실을 곡해하고 싸워댈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