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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치 Sep 19. 2021

쓰는생활

20210308 문명의 이기

집에 돌아오면 발을 뻗어 로로의 전원 버튼을 꾹 누른다. 위잉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로로가 후진한다.

로로는 2019년 여름에 왔다. 10개월 무이자 할부로 구매한, 샤오미의 물걸레 달린 2세대 버전 로봇 청소기다. 물걸레 하나 달렸다고 가격이 이렇게 뛰나 싶긴 했지만 없으면 없는 대로 후회한다는 말에 마음을 굳혔다. 어플을 연동해서 쓸 수도 있는데, 몇 번 도전했지만 잘 되지 않아서 그냥... 그렇지만 청소한 양을 보면 정말 압도적이다. 이게 다 집에서 나온 먼지라고? 싶은 걸 뭉쳐서 꼭꼭 챙겨 다닌다. 물론 완벽에 가까운 청소는 아닌지라 한 번씩은 구석구석을 내가 닦아야 하고 한 번은 미르가 실수로 볼일 본 걸 방에 다 칠하고 다녔지만(...) 진짜 두 발 딛고 서서 쓸고 닦는 로봇 친구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로로를 아끼고 닦아가며 잘 쓰지 않을까? 먼지통 비워주고 때때로 필터를 갈아주고 하면 손 가는 일이 정말 적어서, 어릴 적에 청소기 봉투 끼워서 그 무거운 걸 끌고 다녔던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또 조금 무거워지고.


베란다에 있는 양양이는 고양이 로봇 화장실인데, 21년 1월에 우리 집으로 왔다. 2년 약정의 렌탈인데 당시 구매하는 가격과 렌탈 가격이 큰 차이가 없어서 처음으로 렌탈에 도전해 봤다. 고양이 로봇 화장실 중 가장 유명하고 오래된 기업의 제품이다. 리터로봇. 입이 떡 벌어지는 가격이지만 화장실 여섯 개를 생짜로 삽질하기에는 몸이 버티지 못할 것 같아서 고양이가 넷이 됐을 때 결정했다. 와디즈 펀딩 제품들 중에는 로봇 화장실이 갑자기 멈춰 고양이가 갇히는 경우도 있었다는데, 리터로봇은 1년 동안 잔고장 한 번 없이 네 마리 모두 고르게 사용했다. 호기심이 많은 참외와 살구는 아직도 가끔씩 화장실이 돌아가는 걸 구경하곤 한다. 한 가지 단점은 보일러 돌아가는 방에 두면 바닥에 모인 볼일들이 따뜻해져서 비울 때 고역이라는 점인데, 이사 오고 나서는 차가운 베란다에 두니 이제 단점이라고는 없다고 할 수 있겠다.


방에 둔 공기청정기는 위닉스의 펫 공기청정기인데, 펫 필터를 따로 판매하고 부착할 수 있는 공기청정기다. 털이 진짜 장난 아니고 이불처럼 모인다... 예전에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던 사진 중에, 2년 동안 공기청정기 쓰다가 필터 갈으려고 열었는데 필터 하나도 안 뜯었던 공기청정기 사진을 아시나요? 바로 그 공기청정기입니다. 엄마가 사줬어요. 사실 엄마가 건조기도 사줬어요. 나는 엄마한테 잘해야 한다... 공기청정기는 거실에도 하나 두고 싶은데 샤오미 제품으로 하나 더 살까요. 근데 그 친구가 고양이 털을 잘 잡을지는 모르겠다.


건조기는 요즘 자리를 잡지 않아 사용을 못하고 있지만 명실상부 우리 집의 현물 첫째다. 내놓을 일은 전혀 없지만. 무덤 들어갈 때 같이 안고 들어가려구요. 내 삶은 조금 과장 보태, 건조기를 만나기 전과 후로 나뉘기 때문에 찬양하려면 조금 입이 아픈 정도다. 옷 먼지와 고양이 털 떼는 건 물론이고, 고온으로 돌릴 수 있는 직물들은 고온으로 바짝 말려 여름 장마에도 무서울 거 하나 없이 빨래할 수 있다. 우리 집 첫째 우주는 스프레잉이나 볼일을 이불이나 옷들에 하는 편이기에 이불도 너끈히 돌릴 수 있는 14kg. 거거익선이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이제는 층간소음으로 민원이 발생할까 걱정스러워 그러지 않겠지만, 예전 집에서는 조금 늦은 시간에도 4시간에 구김 방지 모드로 때때로 돌아가게 뒀다. 열이 채 식지 않았을 때 갓 구워낸 빵처럼 따뜻한 수건에 얼굴을 묻으면 터지는 안도감. 아. 고양이 키우는 집은 원래 수건으로 얼굴 못 닦거든요.


요리를 하나도 안 하고 살아서 식기세척기를 사고 싶다는 말은 좀 양심 없어 보여서 잘 안 하지만, 작은 식기세척기라든지 정수기, 커피 머신처럼 생활의 질을 단시간에 올려주는 기계들 또한 위시리스트에 들어있다. 백색 가전이라고 하면 백색 가전일 테지. 기계 친구들 좋아. 너무 낭비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누리고자 한다. 누린다고는 표현했지만 사실 정말로 고마운 문명의 이기. 너희가 없었다면 난 고양이들이랑 살지 못했을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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