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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얀 Apr 12. 2020

부자 친구와 티슈 한 장

부자 친구에게서 배운 티슈 한 장의 비밀




한국에서는 보통 금융자산 10억쯤 되면 literally 부자의 줄에 섰다고 본다.



대다수 한국 부자들의 자산이 부동산에 집중되어 있기에 금융자산 10억이라 함은 총자산이, 못해도 20억쯤은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부채를 뺀 총자산이 20억 이상이 되면

그때부터 돈으로는 대한민국 상위 1%다.



금융자산 10억.




이게 정말 내 생에 가능할까 싶은 금액이지만

나도 부자가 되겠다 결심했을 때의 기준이 바로 금융자산 10억이었다.

45살까지 10억 모으기. 물론 나는 대출 포함 10억다.

(요즘 같은 시절에는 대출도 능력이라고요)



자, 그럼 다시 금융소득 10억, 진짜 부자들의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에게도 literally 부자 친구가 한 명 있다.


내 주변에서 유일한 부자. 는 나의 부자 멘토다.



사실 정확한 재산은 모다. 하지만 그는 현재도 월 천 이상의 수입을 내는 전문직 종사자이고, 나보다 20년 가까이 더 살았으니 금융자산 10억 정도는 충분히 있을 거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그가 평상시 돈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렇다고 확신할 수 있다.


-


쉽게도 우리는 직접적으로 얘기를 해 본 적이 없다. 그는 치과 의사이고 나는 그 밑에서 일하던 아르바이트생이었으니 우리가 돈을 벌고 모으는 방식이 같을 리 없고, 당시 나는 돈에 관해서라면 돈걱정밖에 할 줄 모르던 가난한 예술인이었다.


우리가 처음 만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4년 전.


나는 내 모든 것을 걸고 쓴 [바 얼 사 얼]이 참패한 직후였고 내 인생 최고의 고통을 견디고 있었다.



바다의 얼굴, 사랑의 얼굴:


쓸쓸했던 나의 유년 시절과 내가 사랑했던 연인에 관한 이야기  








네이버 평점 9.7

안 읽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 읽은 사람은 없다는 그 책.

나의 문학 멘토 윤대녕 작가님도 "대단히 문학적다"라고  극찬한 나의 첫 자전 소설.

나는 이 글을 쓰고 허물을 벗은 뱀처럼 새로운 사람이 되었지만 결론은







안 팔 렸 다. 




초판으로 찍은 2000부도 다 못 팔았으니 쫄딱 망했다고도 할 수 있겠다.



...



내 이름으로 된 책이 두 권이나 세상에 나왔지만 생활은 더욱 곤궁해지고 결국 다시 부모님 집으로 들어가야 했던 내 나이 서른다섯. 물론 많이 팔겠다고 쓴 책은 아니었지만 내 모든 힘을 다해 썼던 작품이 독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을 때 받은 상처는 정말 아프다. 함께 애를 썼던 출판사분들에게도 죄송한 마음이었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다음 기회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었다.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고 여러 출판사에 다음 책을 투고를 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유일하게 자신 있는 건 글쓰기였고, 내가 하고 싶은 유일한 것도 그것뿐이었는데 이제는 기회도 얻지 못할 판이었다. 상심이 깊었던 나는 그냥 한국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디로 떠나려고 해도 돈이 필요했다. 움직이면?




돈이다.



자고로 옛말엔 틀린 말이 없다.



하지만 나는 빨리 집을 벗어나야 했다. 서른다섯이나 되었어도 결혼 안 하고 이리저리 떠도는 딸이 꼴도 보기 싫은 아빠. 나 역시 나를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과 살고 싶지 않다. 그렇게 틈만 나면 서로 날을 세우는 아빠와 나 사이에서 가장 고통받는 건 엄마였다. 절이 싫으면 스님이 떠나라고 결국 내가 출가를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비행기 값이라도 벌려면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했는데 한두 달 단기 알바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3월부터 5월은 치과에서 가장 비수기인 때였다. 그렇다고 무작정 집에 있자니 가시방석, 도서관을 떠돌며 글을 쓰자니 돈 걱정 때문에 머릿속이 캄캄했다. 말 그대로 사면초가의 상황이었다.


그때.


사방에서 들리는 초나라의 노래를 뚫고 전화벨이 울렸다.


아는 동생이 다니고 있던 치과에 내 사정을 얘기했더니 원장님이 한번 와보라고 했다는 거였다. 그 치과는 일대에서 환자가 제일 많기로 유명한 치과였다. 마침 나는 그 근처의 도서관에서 글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당장 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 날 내가 입고 있던 옷 면접과는 너무 거리가 먼 차림이었다.   쓸 때 가장 편한 옷이긴 했지만 5년도 넘게 입어 소매가 다 늘어난 GAP 후드 티에 무릎이 튀어나온 청바지 차림은 누가 봐도 글 쓴다는 핑계로 동네를 떠도는 백수의 차림이었다. 집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고 가야 할 것 같다고 하니 곧 치과가 마칠 시간이라 그냥 오라는 말에 결국 에라, 모르겠다 하고 노트북과 함께 냅따 뛰었다.


기회가 왔을 땐 일단 잡아야 한다.



그렇게 이력서도 없이 헐레벌떡 찾아 들어간 치과. 마감이 끝난 치과 안은 조용했다. 그런데 내가 상상했던 [잘 되는 치과]와는 다르게 인테리어가 너무 평범했다. 아니 사실 인테리어라고 할 것도 없었다. 


요즘은 동네 어디를 가더라도 카페인지 호텔인지 알 수 없게 인테리어를 한 치과들이 가득한데 이 치과는 정말 말 그대로 치. 과. 였다. 대기실에는 티브이와 소파가 전부였다. 아무리 한 자리에서 20년 이상 진료 치과라지만 이런 인테리어로 과연 장사가 될까 싶었다. 안내 데스크통 어리고 예쁜 직원을 앉혀고 병원의 얼굴이라고 내세우는 게 요즘 치과들의 공식인데 나보다 띠동갑으로 많은 실장님이 앉아 계셨다. (참고로 실장님의 나이는 올해 51살로 지금도 여전히  원장님과 25년째 함께 근무 중이시다)


아무튼 원장님과의 면접.


급하게 오는 바람에 이력서도 못 가져왔다 하니 어차피 치과 경력이 있으니 굳이 봐서 뭐하겠냐고 하시더니


그래 지금까지 어디서 뭐하고 살았냐 하셨다.


예전에 일했던 옆 치과 원장님과 절친이었기 때문에 뜬금없이 작가가 되겠다고 서울로 올라간 특이한 직원( = 나)에 대해서 대략 알고 계셨던 것이다.


뭐, 서울 가서 글 쓰고 책 내고 근데 뭐 또 먹고살기가 힘들어서 호주로 가서 호텔 청소하고 세탁 공장 일하고 돈 모으고 글 썼는데 또 뭐 잘 안 됐다. 두세 달 아르바이트로 비행기 값 벌어서 다시 호주로 가려한다고 주절주절 말씀드렸다.


[음. 그럼 와서 원하는 만큼 일을 해 보세요]


넹?


원래 호인으로 유명한 원장님이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쉽게 패스될 줄은 몰랐다. 아무래도 소매가 다 늘어난 티셔츠와 감지 않은 머리 등이 뭔가 가난한 예술인의 고단함을 잘 표현해버린 듯했다.



아무튼 그렇게 가난한 예술인 특별 전형으로



그러나 다음 날 출근 해 보니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일단 그 아무것도 없이 썰렁한 대기실은 말 그대로 대기하는 환자들로 가득 찼다. 그 일대에 건물마다 있는 게 치과인데 이렇게 끊임없이 환자가 몰려오는 치과는 난생처음이었다. 임플란트 수술했다가 교정했다가 보철 진료 신경 치료했다가 진짜로 원장님은 무슨 슈퍼맨처럼 날아다니셨다. 그래도 지금은 예약제로 해서 이 정도지만 예전에 선착순으로 진료를 할 때는 대기실이 꽉 차서 문 밖에서 기다려야 할 정도였다고.


하,,, 나도 나름 치과일에는 잔뼈가 굵은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원장님을 쫓아다니는 것만으로도 랑이가 찢어질 뻔했다. 사실 이 정도로 바쁘면 사랑니 난발치 같은 건 큰 병원으로 넘길 법도 한데 아프다고 오는 환자는 그냥 돌려보내는 법이 없었다. ㅡ보통 사랑니 난발치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외과 전문의가 아니면 뽑기도 어렵고 여러 기구도 준비해야 해서 노동/시간 대비 수가가 높지 않 선호하는 진료가 아니다.


그때 확실히 깨달았다.

아. 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구나.

아. 기본에 충실하면 이런저런 꾸밈이 필요 없구나.



이건 뭐 원장님 한 분이서 대학병원 수준으로 진료를 보는데도 장님과 실장님 그리고 직원들 아무렇지 않게 일을 쳐냈다. 25년의 내공이란 이런 걸까. 그렇게 첫 날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깊은 상념에 빠졌다.




하.......

어쩌지...... 내일 그냥 못 간다고 할까......

진짜 힘들어 디지는 줄 알았.........



하지만 버텨야 했다. 나만 보면 한심하다고 쯧쯧 혀를 차던 아빠도 근을 하고 온 나를 보곤 처음으로  말건넸다



"까불지 말고 그냥 거기 딱 붙어있어!!!"




하........

그래 어차피 길어야 3개월이다.


아침 9시 출근 퇴근 7시를 몇 25년 동안 묵묵히 견뎌낸 사람들도 있는데 까짓, 3개월 그것도 못 참으면 나이제 아무것도 못 한다. 호주에서는 그 땡볕에서 바퀴벌레를 잡아가며 청소도 했는데 치과 일은 거기에 비하면 아주 클린 하다.



하자 하자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자. 누구에게?


나 자신에게!



렇게 한 달이 갔다. 어쨌거나 시간은 간다. 하지만 여전히 끝없이 밀려오는 환자들은 역시나 적응이 되지 않았다. 러던 중 드디어 사건 하나가 발생했다. 원래 일 적으로는 이런저런 실수를 해도 일체 언급 없이 커버해주는 원장님이 진료가 끝나고 입을 헹구는 환자한테 티슈를 , 뽑아 건네데 나를 보고는 잠깐만, 하시며 손가락을 세웠다.



"1장만"


순간 당황한 나.



예?

하.... 한 장요?


나는 이제껏 30년이 넘도록 티슈를 한 장만 뽑아 써 본 적이 없었다. 물 묻은 입가도 한 장으로만 닦을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고 한편으로는 이런 거 아껴서 뭐하나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생전 남한테 싫은 소리 하는 법 없는 원장님이

아주 강력하게 "1장"을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건 크리넥스 티슈 한 장이면 진짜 웬만한 건 충분히 다 닦고도 남았다.



때부터 이 치과의 놀라운 점들이 이기 시작했다.

 

일단 뭐든 일체 낭비가 없다. 보통 치과에서 쓰는 재료들은 대충 눈대중으로, 감으로 하는 경우가 많아서 때로는 쓰는 것보다 버려지는 게 많다. 하지만 이곳은 이미 계량화를 해 둬서 뭐든 정량 사용으로 딱 맞아떨어진다. 그리고 이곳 직원들의 공통적인 습관이 바로 사용하고 난 전자기기들은 바로 콘센트를 빼고, 마치기 전에는 모든 전기 콘센트를 빼고 퇴근을 한다. 원장님이 직원들을 모아놓고 하시는 얘기는 늘 그런 생활의 습관이었다.


아니라 다를까 재료대를 체크해 보니 다른 곳의 반이었다. 이렇게 보니 예전에 일했던 치과에서 아무 생각 없이 썼던 것들이 미안해졌다. 조금만 신경 쓰면 이렇게 아낄 수가 있는 거였는데.


그렇게 3개월이 지났을 때 하루는 원장님이 우리 치과에서 일해보니 좀 어떤 것 같냐고 하셨다.

나는 이미 많은 것을 배운 후였지만 일단 가장 인상적이었던 한 가지를 먼저 말했다.


"음. 일단 원장님이 참 알뜰하신 것 같아요."라고 하니 살짝 고개를 갸웃하시곤

"음. 알뜰하다기 보단 합리적이지"라고 하셨다.


원장님의 출퇴근용 차는 H사의 싼타페였다. 개원을 하고 환자가 많아지면 제일 먼저 수입차부터 뽑는 게 보통의 개원의들인데 원장님은 사실 몇 년 전까지 모닝을 타고 다니셨다고. 울산에 홍수가 나서 침수가 되지 않았더라면 여전히 모닝을 타고 다니셨을 거라는 직원들의 말.


결국 나는 그곳에서 7개월을 더 일했고, 드라마 작가로 러브콜을 받아 그곳분들의 박수를 받으며 다시 상경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4년이 흐른 지금. 내 드라마가 방영이 되면 금의환향하겠노라 하고 큰소리를 치며 떠나왔지만 결국 그 약속은 아직도 지키지 못하고 있다.


결국 다시 가난한 예술가로 연소득 480만 원으로 은행에서 개망신을 당한 뒤 부자가 되겠다고 결심했을 때 가장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이 바로 그때 배운 티슈 한 장의 비밀이었다.



어느 책을 봐도 부자가 되는 돈 관리의 핵심은 딱 이 두 가지뿐이다.

 

1. 애끼거나

2. 소득의 사이즈를 키우거나

 

"아니 내가 가진 재주라곤 이백 벌어 이백 쓰는 재주밖에 없는데 도대체 어떻게 소득의 사이즈를 키운다는 말이죠?"



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겐 1. 애낀 가 가장 쉽고 빠르고 합리적인 방법인 것입니다.



"아이씨, 그래 봤자 티끌 모아 티끌이에요."


하며 천 원짜리, 만원 한 장 아끼는 것을 청승 떤다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은 매달 말 날아오는 카드 명세서를 보면 역시 옛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디 가서 만원을 벌어 오는 것보다 만원을 안 쓰는 게 만원을 버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그래서 나는 부자 친구에게서 배운 알뜰한, 아니 합리적인 소비 생활을 시작했다.


 

1. 구멍 난 양말 꼬매 신기: 양말 그거 요즘엔 하나 천 원 이천 원 하는데 그거 아껴서 뭐하냐 하겠지만, 천 원 이천 원짜리다 보니 구멍도 그만큼 쉽게 나서 자주 사야 한다. 그리고 막상 양말 가게 가면 천 원짜리 한 개만 사서 나오지 않는다. 천 원짜리 보단 이천 원짜리가 예쁘고 세 개 만 원짜리가 예쁜 법. 옆에 있는 레깅스도 왠지 있으면 좋을 것 같고 그런 식으로 천원이 이만 원이 된다. 그리고 바느질을 하고 있다 보면 마치 컬러북을 칠할 때처럼 잡념이 사라지고 스트레스가 해소된다. 요즘엔 워낙 패스트 패션이 판을 치는 마당에 일부러 튀는 색으로 꿰맨 양말이 세상 하나뿐인 양말처럼 귀엽게도 보인다


2. 아침에 일어나면 날씨 앱 확인하기: 갑자기 비가 와서 급하게 편의점에서 사던 우산, 날씨가 흐릴 땐 3000원이지만 비가 오기 시작하면 오천 원, 만원이다. 하지만 오천 원짜리는 너무 안 예쁘고 결국 그래 뭐 어차피 필요하니까 하며 만 원짜리 산다. 하지만 외출하는 날은 늘 까먹기 일쑤고, 결국 우산은 빨간 우산 파란 우산 찢어진 우산으로 가득 찬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면 날씨를 확인한다. 비 확률이 조금이라도 뜨면 가방에 삼단 우산을 미리 챙겨서 새는 돈을 막는다. 


3. 공복 14시간: 저녁 식사를 하고는 바로 양치를 하고 물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기. 일명 간헐적 단식. 누군가는 다이어트 때문에 한다고 하는데 살 빼는 건 관심 없다. 나는 오직 돈을 아끼려고 시작했고 현재 10개월째 유지 중이다. 원래 내 생활비 중의 대부분이 과일과 군것질이었는데 과일을 좀 심하게 많이 먹었다. "맛있는 건 비싸"라는 과일 가게 아주머니의 말씀처럼 과일 값으로 하루에 기본 만원을 썼다. 그런데 이렇게 먹는 시간을 통제함으로 생활비도 디톡스가 되고, 건강과 미용까지 챙길 수 있다.



구멍 난 양말을 꼬매고 있는 나를 보고 혹자는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하겠지만, 자수성가한 부자들의 시작은 다들 그렇게 안 쓰고 안 먹으면서 모았다고 한다. 화장지 값 아끼면서 부자가 됐다는 소리가 우스갯소리가 아닌 것이다. 게다가 이렇게 한 푼 두 푼 잔돈을 아끼는 것은 결국 큰돈이 들어올 때를 위한 것이다. 준비한 사업이 성공해서, 아니면 어쩌다 로또라도 맞아 수중에 큰돈이 들어왔을 때 흔들림 없이 그 돈을 유지하는 기초 체력. 지금 나는 그것을 준비하는 중인 것이다.


-


드라마가 엎어지고 결국 다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근황을 전하려 오랜만에 나의 부자 친구에게 연락을 드렸다.

원장님 저는 요대부호가 되려고 양말을 꼬매 신고 애끼며 살고 있습니다. 드라마가 안 되더라도 무튼 대부호가 되어 꼭 금의환향하겠습니다. 하니  


나의 부자 친구는 크게 웃으시며 가로되

그래 민이가 이제 곧 부자 되겠다고 하셨다.


'그래가지고 언제 부자 되겠냐' ' 청승 맞다'는 비웃음이 아니라 처음으로 들은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자들은 안다. 부자들이 달리 부자가 된 게 아니다.

힘들게 모은 돈이 오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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