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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by 캐아재

재판정은 엄숙했다. 판사 세 명이 들어서서 한단 높은 의자에 앉고나자 푸른 죄수복을 입은 점백도 눈치를 보면서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바로 재판이 시작되었다.


“사건번호 X20250819 피고 김점백의 재판을 진행하겠습니다. 검사는 기소 죄목을 말씀해 주세요.”


판사가 마이크에 대고 입을 열었다.


점백의 맞은 편에 앉은 검사가 양복은 입은 채로 눈 앞에 모니터를 보면서 말했다.


“피고는 2002년에 지하철역에서 한 사람을 죽였습니다. 당시에는 지하철에 스크린도어가 아직 설치되기 전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경찰에는 잡히진 않았습니다. 인정합니까?”


“네.” 점백은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당시 CCTV를 보시겠습니다.”


검사의 말에 재판장 가운데 큰 화면에 영상이 바로 떴다.


지하철 승강장에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앞에서 두번째가 김점백이었다. 전철이 승강장으로 진입할때 남자가 앞에 있는 여자를 미는 장면이 보였다. 하지만 화질이 조악하고, 손을 쓴 것이 아니고 엉덩이로 미는 장면이어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지금 전철이 막 지하철 승강장으로 진입할 때 앞에 서 있는 여자를 확 미는 장면입니다. 지금 보신 화면은 당시 CCTV 장면이고요, 다음은 저희가 준비한 장면입니다.”


다시 틀어진 장면에서는 선명한 화질로 확실히 여자 뒤에 서 있는 점백이 지하철이 들어오는 타이밍에 몸을 써서 여자를 미는 장면이 나왔다. 심지어 몸을 CCTV반대방향으로 틀면서 반동을 줘서 엉덩이와 상체로 스핀까지 먹여가면서 미는 장면이 포착되었다.


검사는 기소된 피고의 몇가지 범죄를 읊었다. 오늘따라 형사재판을 받는 피고인들이 줄지어 있었다. 점심시간이 다가와서 최 주심판사는 어떤 정찬을 먹게 될지 생각만해도 기분이 좋았다. 이곳으로 옮겨온 다음부터 점심은 거의 부페식으로 그가 원하는 음식은 뭐든지 특식으로 제공된다. 오늘은 짜장면에 탕수육이 먹고 싶었다. 오후 재판이 없으니 소주도 한잔 할 생각이었다. 생각만 해도 입에 침이 고였다. 하지만 지금은 재판에 집중해야 했다.


판사가 마이크에 입을 댔다.


“변호사는 뭐 할말 있나요?”


여 변호사는 점백이 살아온 삶에 대해서 말했다.


“피고 김점백은 어려서 부친을 여의고 혼자서 병든 어머니와 어린 여동생을 건사해야 했습니다. 여동생을 대학 보내겠다고 한푼 두푼 저축을 해 왔습니다. 그 돈을 하루아침에 분양사기를 당했습니다. 돈을 돌려달라고 계속해서 얘기를 했지만 업체는 모른 채로 일관해 왔습니다. 바로 그 업체의 팀장이 지금 지하철에 있는 피해자입니다. 따라 다닌 것도 아니고 그냥 시청역에서 우연히 만났습니다. 화질이 안 좋아서 잘 보이진 않지만 지금 피고인 김점백은 뒤에 서서 머리를 쥐어짜면서 괴로와하고 있습니다. 분양사기를 당했습니다. 전재산을 잃었습니다. X매정 팀장은 아주 유명한 그 보이스피싱 팀장인 여자이죠. 그래서...”


검사가 바로 손을 들면서 말을 자르고 들어왔다.


“변호인은 지금 사적제재가 정당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인가요? 존경하는 재판장님, 피고의 변호인은 지금 본질을 호도하고 있습니다. 제재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X매정 피해자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은 정당치 않다고 봅니다. ” 검사가 마이크에 대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정합니다. 어떤 이유라도 살인은 정당하지 않습니다.”


판사가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피고쪽 변호사님? 계속하세요.”


“네, 재판장님, 감사합니다. 저는 이 사건 이전에 피고에게 아무런 사회적인 문제가 없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매주 교회를 다니고, 직장생활을 잘해 왔습니다. 특별히 봉사활동을 대놓고 하진 않았지만, 헌혈도 한 두번하고 이웃돕기 행사가 있으면 작은 돈일지라도 성금을 내기도 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식사를 마치고, 성실히 직장생활을 하고 주말에는 친구들을 만나거나 등산을 하고 아주 건전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이번 한 번의 실수를 문제로 그의 모든 삶이 부정되는 결과를 가진다면 누가 이렇게 무미건조하고 힘든 삶을 고집하겠습니까?”


판사가 판사봉을 들었다.


“네, 피고 측의 최종 변론까지 잘 들었습니다. 잠시 휴정하고 오후 2시 10분에 속개하겠습니다.”


변호인이 점백에게 종이컵에 담긴 물을 가져다 주었다. 판사들이 다시 들어와서 오후 판결 재판이 진행되었다.


“사건번호 X20250819 피고 김점백의 주요 범죄에 대해서 판결을 내리겠습니다. 그의 살인은 극악무도한 짓이었지만, 아울러 피해자가 일으킨 보이스피싱으로 인해서 김점백의 가정과 그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 것도 인정해야 합니다. 살인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본 법정은 이후 피고 김점백의 삶이 거의 인격살인을 당한 것처럼 힘들어졌음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우발적인 살인이 일어났습니다. 이번 살인은 피해자가 원론적인 사기가 없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판단됩니다. 따라서 선고합니다. 본 법정은 피고인 김점백에게 환생을 결정합니다. 환생을 결정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일단 피고인은 평소 매우 성실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본 법정은 판단을 내릴수가 없습니다. 물리적으로 죄의 무게가 1킬로그램인데 그가 한 선행이 또한 800그램 정도 무게입니다.따라서 지금 저울 차이가 약 200그램 정도가 나는데 이것으로 그를 ‘영원한 어둠’으로 보내기엔 부족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삶을 대하는 그의 태도를 보기 위해서 환생을 결정합니다.”


판사가 판결봉을 들어서 세 번 내려쳤다.


땅.

땅.

땅.


“다음은 재심 청구를 한 원고 X매정에 대한 재판이 있겠습니다.”


판사가 마이크에 대고 얘기하자 초췌한 모습으로 화상자국으로 가득한 한 여자가 재판정에 들어섰다. 머리는 마치 기름에 튀긴듯이 거대한 뽀글이 파마식으로 부풀어 있었다. 얼굴에는 거뭇거뭇한 숯검댕도 묻어 있었다. 원래 그녀가 있는 곳의 화력으로는 버틸수 없는 머리카락이었지만 끔찍한 것을 싫어하는 신의 은총으로 생긴 일이었다.


“귀하는 X매정이 맞습니까?”


판사가 물었다.


“네.”


여자는 대기실에서 스피커를 통해서 자신을 밀어 죽인 점백의 재판을 우연히 들었다. 지하철 승강장에서 자신을 민 사람도 저렇게 신의 은혜를 받아서 환생하는 데, 자신도 꼭 재심을 받아서 환생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다시 태어난다면 정말 착하고 성실하게 살 것이라고 다짐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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