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하고나니 아내가 필요한 일이 많았다. 아직 아이들이 어렸다. 아들 둘은 나이가 겨우 10살과 8살에 불과했다. 나는 3년째 아이들을 혼자서 키우고 있었다. 결혼의 ‘결’자만 들어도 지겨웠다. 하루는 둘도 없는 중학교 동창이 놀러왔다. 거실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을 보면서 혀를 찼다.
“요즘 계약 결혼이라는 것도 있어. 네가 결혼이 지긋지긋하다고 하니까 내가 마지못해서 추천하는거야. 아이들에게는 엄마가 꼭 필요한 나이야. 가장 손이 많이 가는 때잖아. 혹시 모르잖아 좋은 인연을 만나게 될지.”
하는 수 없이 친구의 조언을 듣기로 했다. 나는 지역커뮤니티 사이트에 공고를 냈다.
<< 계약직 아내를 구합니다. 저는 나이 38살의 남자입니다. 직업은 현직 의사입니다. >>
여러군데에서 메시지를 받았다. 그 중에 한 여성의 프로필이 맘에 들었다. 문자가 왔다.
[ 면접을 보시고 맘에 드시면, 장기 계약도 가능한가요? ]
[ 네, 그럼요. ]
여자는 미인은 아니었지만, 단아한 옷차림과 웃을 때 미소가 맘에 들었다. 더구나 솔직한 성품을 지녔다.
“급여는 어떻게 되는지요?”
“급여는 두가지 중에서 선택이 가능합니다. 월 400만원이나 제 연봉의 삼분의 일중에서요.”
“연봉은 얼마정도 받으시는지요?”
“지금 2억 정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매월 받는 것이니 조금의 차이가 날수도 있지요. 1,600만원에서 세금빼고 나면 아마...”
그렇게 여자는 내 연봉의 삼분의 1일을 매달 받는 것으로 계약했다. 이후, 여자는 우리집에서 눌러 살았다. 아이들은 금방 여자에게 정을 붙였다. 이 여자가 온 이후로 나의 삶은 정말 편안해졌다. 나는 어느듯 그녀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버드나무 류를 사용한다고 했다. 류성희가 그녀의 이름이었다.
“경석 씨, 식사하세요.”
퇴근 후에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식탁 위에 근사한 김치찌개에 계란말이가 차려져 있었다.
“얘들은요?”
“시간이 몇 시인데요. 벌써 먹고 각자 방에서 책을 보고 있답니다.”
나는 그녀가 이끄는데로 아이들 방에 갔다. 정말 아이들은 얌전히 책상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이런 현모양처가 있을까, 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여자가 어디에 숨어 있다가 이제 나타났을까.
휴가시즌에는 같이 속초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부부이니까, 당연히 부부관계도 했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매달 월급이 나가지만, 여자는 아낌없이 자신의 급여에서 아이들 간식도 사고, 선물도 하곤 했다.
나는 그런 성희 씨에게 내 마음을 알리고 싶어졌다. 하지만, 마음을 먹는 것과 실행하는 것은 늘 차이가 존재한다.
그런 어느날, 옷방을 정리하다가, 나는 그녀가 이사를 들어올 때 풀지 않은 캐리어 하나를 발견했다. 캐리어를 3개 가지고 왔는데 그중에 제일 작은 것이었다. 그 서류뭉치를 펼치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그건 낡은 전단지 형태의 종이였다. 컴퓨터로 출력한 듯한 종이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 계약직 남편을 구합니다. 저는 나이 36살의 여성입니다. 아이는 없습니다. 현재 운영하는 카페와 빵집 두 곳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급여 조건도 쓰여 있었다.
<< 월 500만원 또는 가게 수익의 절반 >>
나는 한동안 서류를 보면서, 멍하니 서 있었다. 알고보니, 우리는 서로 같은 이유로 고용한 것이었다. 그제야 기억이 났다. 면접자리에서 그녀가 지었던 미묘한 미소를 말이다.
나는 멍하니 그녀의 서류를 손에 쥐고 있었다. 세상에 계약직 남편 구인공고라니. 기가 막혔다.
그 순간, 방문이 열리고 그녀가 방으로 들어왔다. 내 손에 드린 서류를 본 그녀의 표정이 일순간 굳었다. 그리곤 서서히 미소를 지었다.
“들켜 버렸네요.”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순간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러자, 그녀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사실 저도 이혼하고 한동안 혼자라는 것이 너무 힘들었답니다. 누군가와 같이 밥먹고 웃고 떠들고 싶었어요. 이 공고를 올리고는 경석 씨의 공고를 봤어요. 이건 일부러 안 버린거에요. 언젠가는 말하고 싶었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