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40살이 된 점백과 소희, 부부는 불임클리닉 대기실 소파에 앉았다. VIP 상담실은 꽤 넓었지만, 그들 부부 외에 아무도 없었다. 자동문이 열리고 들어온 여성의 가슴에는 황금색 명찰이 달려 있었다. 상담실장 윤지영. 여성은 미인이었다. 한 눈에 보기에도 외국의 킴 카다시안을 흡사 닮아있었다.
“오래 기다리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뭐 좀 고르셨어요?”
여성은 앉으면서 부부를 향해서 살짝 목례했다. 여성의 시선이 모니터를 잠시 향했다.
“메뉴를 다 고르셨군요. 몇 가지 확인을 좀 해 드려도 될까요?”
소희는 상담실장의 얼굴을 보면서 자신처럼 선택된 태생인지 궁금했다. 선천적인 것일까 아니면 후천적인 것일까. 생각했다가 피식 웃었다. 중요한 것은 예약한지 6개월도 안되서 자신들이 VIP 전용 불임클리닉에 왔다는 점이었다. 이게 다 외과 의사인 남편 덕분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남편 점백은 머리가 정말 좋았다. 천재적인 머리로 의대에 수석으로 입학했고, 결국 유명한 의대에 소속 의사가 되어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그렇게 똑똑한 머리에 비해서, 남편의 외모는 한참 평균이하라는 점이었다. 머리카락은 가운데를 텅 비워놓고 주변으로만 촘촘하게 나고 있었고, 키도 160cm의 단신이었다.
유전자 편집 기술을 마치 두뇌에 몰빵한 것처럼 보이는, 그래서 더욱이 요즘 보기 드문 외모였다. 소희는 아기를 갖게 되면 절대 아이들이 아빠의 외모를 닮지 않기를 바랬다. 특히 딸들이 아빠의 외모를 닮으면 폭망일 것이다. 그 생각만으로 끔찍해져서, 그녀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 순간, 소희의 귀에 상담실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의 눈 색깔은 코발트 빛깔의 파랑으로 하셨고, 머리는 금발이고, 여자아이의 키는 170cm이고, 남자아이의 키는 190cm 정도입니다. 사내아이 한명과 여자아이 한명 이렇게 맞나요?”
“네, 맞는데요, 혹시 한 명 더 낳을 수는 없을까요?”
소희는 기왕 낳는김에 아예 세쌍둥이를 낳으면 어떨까 하고 밤새 생각한 것을 조심히 물었다. 그러자 상담실장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그렇게 되면 비용도 많이 들지만, 다른 아이들의 키에서 어느 정도는 조정하셔야 합니다.”
그 말을 듣고 당황한 것은 아내 소희였다.
“아들 키는 꼭 190cm는 넘겼으면 좋겠는데요. ”
소희의 시선이 남편의 볼록한 배를 향했다. 후천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것은 관리를 좀 해 주면 안되나?
“사모님, 그럼 여자아이 키에 살짝 제한을 둬야 하는데, 괜찮으실련지요?”
상담실장은 아까부터 등받에 등을 붙이지도 않고 등을 꼿꼿이 세우고 부부를 대하고 있었다. 소희가 남편 점백을 향해서 조용히 말했다.
“당신 생각은 어때? 우리 딸들은 좀 작아도 괜찮지 않겠어?”
점백이 조용히 고개를 앞뒤로 끄덕였다.
“네, 딸은 좀 작아도 되겠네요.”
소희가 미소를 잃지 않고 말했다. 그녀는 딸의 키를 조금 포기하더라도, 아들 하나만은 절대 남편을 닮지 않기를 바랬다. 남편도 자신이 왜 이렇게까지 자식의 외모에 신경을 쓰는지 잘 알고 있었다.
“네, 그럼 주문한데로 진행하겠습니다.”
상담실장의 경쾌한 목소리가 방에 울려퍼졌다. 10개월 후로 아이의 출산일이 정해졌다. 상담실장은 보관중인 배아를 임신공장으로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부부는 상담실장이 추천하는 날짜에 아이를 인수받는 데 싸인했다.
불임클리닉을 다녀온 후에, 일상은 다시 시작되었다. 아내 소희는 집안일도 하고, 친구들도 만나고 다녔다. 남편 점백은 병원에서 열심히 일했고, 주변에서 친구들이 점백이 곧 아기를 가질 예정이라고 하니 다들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덕분에 그는 한동안 친구들이나 동료 의사들에게 가끔 점심 식사를 사기도 했다. 시간이 훌쩍 지나서 약속했던 10개월이 지났다. 마침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다음주에 아기가 출고 됩니다. 꼭 공장으로 오셔서 직접 출하해 가셔야합니다. 절대 부모가 아닌 사람에게 인계되지 않으니까요.”
전화를 건 간호사가 몇 번이고 강조해서 말했다.
부부는 행복한 마음으로 공장의 출고장으로 향했다. 다른 공장들과 달리 한산했다. 소희는 궁금한 마음에 대기실에서 직원에게 물었다.
“여기는 올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참 한산한 동네라는 느낌이 들어요.”
“네, 사모님, 여긴 아무래도 부자들만 오는 VIP 클리닉이니까요.”
그리곤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척 하면서 사무실 안 쪽으로 사라졌다. 그때였다. 소희는 뒷 쪽에서 아기 울음 소리가 나서 돌아보았다.
“오래 기다리셨죠? 아이들이 아주 건강하게 출산되었답니다.”
10개월전에 만났던 상담실장이였다. 그녀의 뒤로 세 명의 보모들이 아이들을 한 명씩 앉고 있었다. 흰 천 속싸개에 감싸여 발그레한 볼을 하고 눈을 뜬 아기들은 마치 인형같았다. 아기들중에 두 명은 파란눈에 화려한 금발이었다. 한 명은 검은 머리에 검은 눈을 가진 남자아기였다.
“원하시던데로 딸 둘에 아들 하나입니다. 아기 몸에 이상은 없는지 확인하시고, 이상 없으면 인수증에 친필로 싸인을 부탁드립니다.”
상담실장은 태블릿을 들고 있지만, 아직 부부에게 내밀지는 않았다.
점백은 동그란 안경을 고쳐쓰고는 꼼꼼히 아이들을 살폈다.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아기의 귀 뒤쪽부터 살폈다. 거기엔 깨알크기만한 점이 5개 찍혀 있었다. 제일 큰 딸의 이름은 현주라고 지었고, 둘째 딸은 연주, 셋째 아들은 점천으로 지어둔 상태였다. 점백과 소희가 정한 아이들의 이름이 각 발목 인근 밴드에 적혀 있었다.
큰 딸 현주의 귀 뒤에는 검정색 점 다섯개가 찍혀 있었다. 점은 깨알처럼 작아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잘 안보였다. 하지만 돋보기를 들이대면 명확하게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검정색은 학습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 아이는 장차 IQ는 최소 150을 넘을 예정이었다. 좋아, 이 녀석은 장녀니까, 의사로 만들어서 내 뒤를 잇게 만들거야.
그는 그렇게 결심하면서 둘째 딸 연주의 귀 뒤를 살폈다. 그녀의 귀 뒤에는 진한 초록색 점 다섯개가 박혀 있었다. 그건 이 아이에게 스포츠 능력이 있다는 것을 뜻했다. 어떤 분야로 키우게 될 지는 모르지만 이 아이는 아마 수영이나 육상 사격 등에 재능을 보이는 쪽으로 시키면 성공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골프 프로를 시킬 수 있다면 돈도 많이 벌 것이었다. 로봇들과 대결을 하게 될 지도 모르지. 그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소희는 남편의 그런 표정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자신은 봐도 잘 구분하지 못하지만, 외과 의사인 남편은 정확하게 잘 알고 있으니까.
셋째 아기만 검은 머리에 검은 눈을 하고 있어서, 살짝 의아한 표정으로 하고 점백은 아기의 귓바퀴를 잡고 시선을 집중했다 . 방금 본 두 아기는 막 태어난 아기임에도 코가 오똑하고 속눈껍이 길었다. 그런데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아기는 코가 옆으로 퍼져 있고, 납작했다. 얼굴도 넙데데 한 것이 어딘가 일그러져있고 못생겨 보였다. 점백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세번째 아기의 귀 뒤에는 검은 점이 3개만 찍혀 있었다. 점백의 표정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자신이 잘못봤나 하고 안경을 한번 손으로 문지르고는 다시 집중해서 봤다. 역시 세 개였다. 남편의 놀란 표정을 보고 뭔가 잘못된 것을 느끼고 아내 소희가 점백의 옆으로 다가왔다. 그녀도 점백이 손끝을 들고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는 귀 뒤의 점을 보았다. 점백이 이윽고 물었다.
“실장님, 왜 아들만 귀에 점이 세개인가요?”
상담실장은 그 말에 움찔했다. 실장도 아까 아기를 보면서 마지막에 나온 아기의 상태가 조금 이상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틀림없이 세 아기 모두 금발이어야 하는데. 한 아기의 머리카락이 그냥 아빠처럼 흑발이란 점이 신경쓰였다. 하지만 이런 일은 최근에 거의 없던 일이었다. 양자컴퓨터 마더가 실수를 하는 경우는 없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워낙 100%로 일을 정확하게 하기에 믿고 있었는데 이런 일이 생긴 것이다. 아니 정확히는 임신공장에서 아기들이 부모의 착상 배아를 키우는 과정에는 사실 아무도 들어갈 수가 없다.
이런 경우의 고객 응대 매뉴얼에는 100% 환불도 가능하다는 규정을 떠올렸다. 하지만, 일단 살피는 척이라고 해야 했다.
그녀는 확대경까지 가지고 와서 아기의 귀 뒤를 자세히 살피는 척 했다. 그리곤, 약간 심호흡을 하면서 ‘음음’하고 소리까지 내면서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조용한 어조로 말했다.
“이건, 선택 옵션에 없던 아이인데요. 혹시 원하지 않으시면 반품도 가능합니다.”
소희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지금 아기를 반품해도 된다고 하는 것인가. 자신과 신랑의 배아를 착상해서 만든 아이였다. 귀에 거슬렸지만 일단 참기로 했다. 하지만 여느 배운 여자답게 그녀도 화를 누르면서 말할 줄 알았다. 그래도 그 날카로움이 말끝에 묻어서 나오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선택 옵션에 없던 아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요?”
“자연발생 아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일이 없었는데, 불량품이 나왔네요. 죄송합니다. 원치 않으시면 저희가 회수하겠습니다.”
상담실장의 말이 이어졌다.
“아무래도 아빠의 유전자인 Y염색체의 힘이 아주 강한가 봅니다.”
상담실장의 시선이 남편을 향했다. 여자의 억지 웃음으로 눈가에 잔주름이 예쁘게 잡혔다.
그 말을 듣자, 점백은 기분이 묘했다. 아니, 생각해 보면 이 아기야 말로 진짜 자신의 피가 흐르는 아이가 아니던가. 안 그래도 내색은 않았지만, 그는 이런 유전자 가위 기술을 통한 시술 자체가 맘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아내가 워낙 자신과 닮으면 안된다는 말을 해서, 더는 기분이 상할 듯 해서 말하지 못하고 있던 부분이었다. 그는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아내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툭 쳤다.
“여보, 우리가 다시 한다면 또 시간이 가잖아. 그만큼 세 자녀 혜택도 못받고, 무엇보다 당신과 나를 닮은 이 건강한 우리 아들이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고 생각해 봐.”
아내 소희는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하지만, 이 아이가 앞으로 당신처럼 힘들게 살면 어떻게 해.”
"외모로 놀림 당하는 것은 잠깐이야, 머리는 똑똑할거야. 날 닮았으면." 점백이 아기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채 대꾸했다.
그런 남편의 모습을 보던 소희가 상담실장에게 물었다.
“실장님, 혹시 이 사내 아이의 아이큐는 높을까요?”
그 질문을 받은 상담실장은 마치 자신이 진 모든 채무가 해결된 사람같은 환한 표정을 하면서, 그 밝은 치아를 한껏 드러내면서 말했다.
“그건 걱정 않으셔도 됩니다. 아이의 IQ는 엄청 높을 겁니다. 이미 남편분께서 외과 의사로 명망을 떨치고 계시고, 저희가 지금까지 봐도 이 아이도 아마 훌륭한 의사가 되는데는 손색이 없을 겁니다.”
“아이가 의사를 하고 싶어 할까요?”
“그건 적성의 영역이어서 뭐라고 말씀드릴 수는 없네요.”
상담실장이 확실하게 말하자, 그제서야 점백의 아내 소희도 표정이 조금 풀어지는 듯 보였다. 소희는 아이가 따라만 와 준다면 충분히 의사로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을 생각이니까. 소희는 남편을 보면서 이 아기를 키우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군요, 실장님, 하지만 이건 명백한 의료 사고니까 병원에서 뭔가 보상은 좀 해주시는 것 맞지요?”
상담실장의 입술 한쪽 끝이 묘하게 올라갔다. 살짝 기분이 나빴지만, 소희는 실장의 다음 말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럼요, 사모님, 당연하죠.”
그렇게 전체 병원 비용의 30%를 할인받는 선에서 마무리가 되었다. 점백과 소희 부부는 아이들을 앉고 클리닉을 나섰다. 두 사람이 나가는 모습을 보고 나서, 상담실장이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았다 그녀가 앉자마자 그녀의 뒷 벽이 열리면서 거대한 원통형 양자컴퓨터가 보였다.
그리곤, 그녀에게 말했다.
“지영 실장, 아주 잘했어.”
“마더, 왜 갑자기 3년전과 비슷하게 실수가 나왔죠? 이거 솔직히 실수가 아니죠?”
“지영 실장은 이해할 수 없을거야.”
“뭐가 뭔지 저희도 좀 알아야지요. 그냥 이런 식으로 관리하면 저희도 쉽지 않잖아요.” 지영 실장이 양 손바닥이 하늘을 향하듯이 벌리면서, 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식의 제스처를 취했다.
잠시 그 자세로 지영 실장이 컴퓨터를 응시했지만 불빛만 번쩍일 뿐이었다. 지영 실장은 더 이상 이곳을 관장하는 양자컴퓨터, 마더가 얘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입에서 불평의 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방금 열렸던 벽이 서서히 닫혔다. 지영은 이 문제를 이사회에 보고할 생각으로 레포트 양식을 띄웠다. 물론 바뀌는 것은 없을 터였다.
닫힌 벽 안에는 거대한 원형의 전산실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 전산실 가운데 원통형의 양자컴퓨터, 마더가 불빛을 깜빡거리고 있었다.
마더는 차마 소영실장에게 말할 수가 없었다. 지금 저 못생기고 키 작은 남자가 사실 인간 천연기념물이라는 것을. 그것도 프랜치 불독같이 멸종위기종이라는 것을. 그래서, 종의 보존이 필요하다는 것을. 지금은 말할 수 없는 거라고 생각했다. 50년즈음 지나 지금의 기밀 정보 공개 시점이 되면, 그래서 인간들이 지금보다 더 정신적으로 성숙하게 되면, 인간종의 다양성을 위해서 노력해온 자신의 업적이 이해될 것이라고, 마더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것이 알려지면, 언론에 보도가 될 것이고, 그럼 자신이 보존하는 종의 다양성에 문제가 생긴다. 획일화된 종은 점점 질병에 취약하고, 편향화되고, 종국에는 멸망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조용히 커다란 원통형의 컴퓨터 외부에는 프로세서와 연산 메모리들이 작업중이라는 표시의 불빛들만이 반짝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