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점백은 아내와 이혼한 지 5년이 되었다. 10살이던 딸 서희는 어느새 15살이 되었다. 지난 5년간 그는 딸을 만나지 못했다. 처음에 만나다가 공사판에서 못을 밟아 파상풍이 번져 입원하면서 돈을 보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발이 퉁퉁 부어서 몇 달 공사판을 나가지 못했다. 처음엔 오기로 버텼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고, 쉽게 돈이 모이질 않았다. 그는 체념하기로 했다.
그 시점에 점백에게 참으로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길에서 흰 옷을 입고 있는 노인이 점백을 불렀다.
“이봐 젊은이, 나 고속버스 터미널을 가야 하는데.”
모른 척 지나치려고 했지만, 점백이 보니 노인의 안색이 좀 이상했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입술을 달싹거리듯이 떨었다. 점백은 본능적으로 노인의 지팡이 쥔 손목을 잡았다. 노인의 몸이 휘청거렸기 때문이었다.
“아니 어르신, 안색이 좀 안 좋으신데요?”
“내가 치매가 있어서 가끔 정신줄을 놓으면 이렇게 모르는 길을 막 오곤 한다네.”
“잠시 여기 좀.”
점백은 마침 옆에 있던 편의점의 의자로 모셔서 앉혀드리곤 얼른 들어가서 생수 한 병을 사가지고 나왔다. 병뚜껑을 따서 건넸다.
“이거 좀 드세요.”
노인은 물을 받자마자 한 모금 들이키고는 깊은숨을 토해내듯이 뱉었다.
“좀 어떠세요?”
“고마우이, 젊은이, 한결 좋아.”
“아니, 고속버스 터미널에는 왜 가려고 하시는 거예요?”
“거기 가서 우리 집에 가려고.”
“집이 어디신데요?”
노인은 인상을 찌푸렸지만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점백은 노인의 목에 걸린 목걸이를 보았다. 양해를 구하고 목걸이 펜던트를 확인했다. 목걸이 펜던트에는 노인의 보호자로 보이는 듯한 전화번호와 집 주소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그런데 집주소는 점백이 사는 동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잠시만요.”
점백은 핸드폰을 방금 전 목걸이에 적힌 전화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이 몇 번 가더니, 어떤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노인을 보호하고 있다고 하니, 한달음에 달려오겠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그는 노인 옆에 앉았다.
“따님이 곧 오신다고 합니다.”
“맞아, 내가 우리 딸네집에 왔었지. 아, 이렇게 깜빡한다니까.”
노인은 손으로 이마를 한번 짚었다. 그리곤, 점백을 빤히 쳐다보았다. 노인의 눈썹도 머리색처럼 하얬다.
“그런데 자네는 왜 회사에 안 갔나?”
“저는 작가입니다.”
점백은 강제 퇴직을 당해서, 팔리지도 않는 글을 쓰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냥 작가지망생일 뿐이었다. 그것도 아직 어디 제대로 응모도 못해본 작가지망생이니 그가 노인에게 작가라고 말한 것은 사실 거짓말이었다.
“돈은 어떻게 벌고 있는데?”
노인의 표정이 사뭇 진지했다. 아마도 점백의 행색이 썩 좋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르신, 실은 돈은 잘 못 벌고 있습니다.”
“돈 안 벌도 되나 보네?”
“아뇨, 돈 벌어야 합니다. 제 전처에게 돈도 보내야 하고요.”
이 말은 하자마자 후회한 말이었다. 살다 보면 때로는 이렇게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러자, 노인이 의자에 앉은 채로 물끄러미 점백을 올려다보았다. 지팡이에 턱을 괴고 뭔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치매노인이라고 본인 스스로 자신의 증상을 말한 노인은 너무도 명확한 눈빛을 하곤 남자를 쏘아보다가 입을 천천히 뗐다.
“흠, 그래? 좋아. 그럼 내가 자네에게 제안을 하나 하지. 자네가 나를 어떻게 볼지 모르지만, 나는 능력이 하나 있다네. 평생 나를 부자로 만들어준 능력이야. 그중에 하나를 자네에게 주지. 어떤가?”
“뭐든 말씀하셔도 저는 돈이 없습니다. 어르신. 말씀만이라도 고맙습니다.”
점백은 치매노인과 농담 따먹기 하고 있고 싶지 않아서, 살짝 고개를 돌리면서 딴전을 피웠다.
“아냐, 전혀 돈 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는다네. 그냥 골라보게나.”
뭐 앞에 아무것도 없는데 뭘 고르라는 것인지, 무슨 말인지 몰라서 노인을 힐끔 봤지만, 그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일 번은 행운이야. 로또에 당첨되는 것이네.”
“네?”
점백은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눈을 크게 뜨고 노인을 쳐다보았으나, 그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이번은 염력이야. 촛불 정도 끌 수 있는 능력이지.”
뭐야? 염력인데, 촛불정도 끌 수 있는 건 또 뭐야. 점백은 피식 비웃음 같은 것이 속에서 나왔다. 하지만 거꾸로 겨우 그 정도의 염력이라는 생각이 들자 노인의 말에 조금씩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삼 번은 예지능력이야. 3초 후를 볼 수 있지.”
아, 뭐야 예지능력이라고 해서 귀가 살짝 뜨였는데, 10초도 아니고 3 초라니. 치매에 걸리면 이렇게 상상력이 풍부해지는 것인가. 그나저나 도대체 얼마나 이 노인의 농담을 받아줘야 하는 건지. 아무튼 중요한 것은 보호자가 오고 있으니, 그때까지는 노인과 대화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뭔가 능력이 좀 다들 애매하네요.”
“원래 능력이 많았는데, 이게 우리 딸한테 다 주고 나니 남은 자투리라네.”
노인이 약간 허탈한 표정을 지으면서 웃는데, 치아의 절반이 없었다. 놀란 표정도 아랑곳없이 그가 점백을 보고 눈 한쪽을 찡긋거렸다.
“빨리 선택해, 딸내미가 오면 이것도 못 줘.”
노인이 눈썹을 올렸다. 그 모습이 마치 점백에게 어떤 결정을 강요하는 듯 보였다.
“그냥 선택하면 주시는 건가요?”
점백은 점점 노인의 말에 흥미가 갔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아무래도 노인이 앓고 있는 병 자체가 노인을 살짝 이상한 상상을 하게 만든 듯이 보였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노인은 생각만큼 중증 환자는 아닌 듯싶었다. 어르신을 잘 공경하면서 살면 복을 받는다고 하지 않던가. 아마 치매 현상이 몸에 나타나면서, 이런 황당무계한 말을 늘어놓은 것이리라.
그때였다. 갑자기 노인의 얼굴에 빛이 환하게 비췄다.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보니 흰색 자동차 한 대가 대낮인데도 헤드라이트 상향등을 켜고, 천천히 골목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자동차는 그 상태로 이쪽을 향해서 마치 신호라도 주듯이 상향등 연신 번쩍거렸다. 클락슨을 울리는 것보다는 낫지만, 굳이 그럴 필요도 없는데. 그러자, 노인이 서둘러 말했다.
“저것 봐, 우리 딸네미 자동차야. 빨리 골라. 늦기전에”
재미 삼아하는 선택이지만 그 짧은 순간에도 점백은 로또가 제일 낫다고 생각했다. 분명히 그는 로또를 선택하려고 했는데, 노인의 재촉에 정신이 없었다. 아니, 사실 어차피 농담으로 해 주는 것인데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치매노인의 농담에 무슨,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예지능력으로 할게요.”
입에서는 점백이 처음 생각한 것과는 사뭇 다른 말이 나왔다. 아차 했지만, 그게 무슨 대수랴. 어차피 지금 넌 치매노인을 상대하고 있는 거야 라는 자조 섞인 생각이 머릿속에서 엉켰다.
“그래, 잘 생각했어.”
노인은 시선을 자동차로 향한 채로 말했다. 사실 점백은 이때까지 노인이 하는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자. 손 줘봐.”
노인이 야윈 손을 내밀었다. 점백이도 얼떨결에 그 손을 잡았다. 손은 차가웠다. 노인이 남자의 손을 꼭 쥐었다. 그 순간 어떤 뜨거움 같은 것이 순간 점백의 손바닥을 지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건 또 뭔가 하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그때 노인이 말했다.
“손 놓아도 돼, 끝났어.”
노인이 먼저 손을 뺐다. 그 사이에 편의점 앞 갓길에 깜빡이를 켜고 노인의 딸이 내려서,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아빠, 괜찮아?”
여자는 걱정스러운 눈을 하고는 점백이와 노인을 번갈아 보았다.
“난 괜찮아. 이 친절한 젊은이 덕분에 말이야.” 노인의 얼굴에 여유로운 미소가 번졌다.
여자의 얼굴이 점백이를 향했다.
“어머, 고마워요. 잠시만요. 뭐라도 하나 사드리고 갈게요.”
"아뇨, 괜찮습니다."
점백이 손사래를 쳤지만, 여자는 편의점으로 뛰어들어갔다. 점백은 노인과 멋쩍은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잠시 후 여자가 음료수 한병을 들고 나타났다.
“이거 좀 드세요.”
그녀가 테이블 위에 음료수를 내려놓았다. 카페라테 캐러멜이었다.
“잘 마시겠습니다.”
점백은 그녀를 힐끔 올려다봤다. 꽤나 미인이었다.
“아빠, 혹시 이 분에게 뭐 준 것 아니지? 아까 보니까 손을 잡는 것 같던데. 아직도 줄게 남았어? 나 좀 달라니까.”
“네 건 최서방 주라고 했잖아. 최서방한테 줬잖니.”
“이거 봐요, 아빠 직계한테 줘야지. 사위한테 줬다가 나 이혼당하거나 하면 그땐 어쩔라고 그려요.”
딸이 노인에게 혀를 날름 내밀었다.
“아무튼 너무 감사합니다. 가끔씩 정신이 없으시면 이렇게 거리를 나돌아 다니고 하네요. 지금은 멀쩡해서 다행이네요.”
여자가 점백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서 감사를 표했다. 그도 고개를 살짝 숙여서 답했다. 여자는 노인의 팔을 부축해서, 천천히 자동차에 태웠다. 차가 떠나기 전에 차창이 내려가고 노인이 손을 들었다. 자동차는 이내 멀어졌다.
세상에는 재밌는 사람들이 많다. 노인도 그런 부류 같았다. 저렇게 살뜰하게 챙기는 딸이 있는 것을 보면 노인의 인생도 괜찮은 인생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일은 내게 곧 잊혔다. 한동안 점백은 공사판을 전전했다. 별다른 일이 없었다.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이상한 일이 한번 있었다. 외부 골조가 마무리되고 내부 인테리어 공사를 진행 중인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그는 외부 조경팀에 배속되었다. 나이 든 잡부들 서너 명과 인근에 잔디를 까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망치 하나가 떨어져서 점백의 바로 옆 잡부의 머리에 맞았다. 점백이 놀라서 소리를 악 질렀다. 그 소리를 듣고 놀란 옆의 인부가 놀라서 걸음을 멈췄다. 그는 양손에 잔디 뗏장을 들고 선 자세였다.
그 순간에 인부의 머리 바로 앞으로 망치가 떨어졌다. 땅 하는 소리가 크게 나면서 망치가 보도블록에 맞고 옆으로 튀었다. 다행히 그 망치에는 아무도 맞지 않았다. 바로 옆의 인부는 놀라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얼마나 놀랐는지 본인이 양다리를 쫙 벌리고 앉아서 노란 오줌이 사타구니 사이에서 뚝뚝 흘러나오는 것도 의식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그 일이 있고 일주일 정도 지나서 비가 왔다. 새벽에 일어나서 혹시나 해서 문자를 뵈니 반장에게서 오늘 공사는 쉰다는 문자가 와 있었다. 안 그래도 몸이 무거웠는데 마침 잘 되었다는 안도감 같은 것이 들었다. 조금 더 잠을 자고 일어나서 아침식사를 했다. 어제 먹다 남은 된장찌개에 밥 김치가 전부였다. 뭔가 전화벨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핸드폰을 들었다. 이혼한 아내였다. 얼른 전화를 들어서 받았더니 이상했다. 전화기가 꺼져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핸드폰은 검정 화면 그대로였다. 뭐지? 하고 생각하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당신 생활비 왜 안 보내? 그렇게 양육비 제대로 안 내면 나도 우리 서희 안 보여줄 테니까 그리 알아.”
전화가 끊어졌다. 점백은 핸드폰을 노려보면서 뭔가의 생각에 사로잡혔다. 얼마전 공사판에서 있었던 일과 지금 핸드폰이 울리던 일이 오버랩되었다. 어라, 이게 뭐지?
점백이는 어두운 방 안에 앉아 있었다. 조금 전의 전화기가 울린 것 같은 느낌에 집중하고 있었다. 정말 노인의 말대로 3초 앞의 미래가 보이는 것인가? 그러고 보니 얼마 전 공사판에서 망치가 떨어졌던 사건이 생각났다. 그리고 방금 전에 있었던 전화기가 울렸다는 착각도. 3초 앞으로 본다니. 참 아이러니하군. 하지만 겨우 이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런 3초라면 피할 수 있는 일인가. 대략 어떤 사고라도 목격하거나 일어난다면 주변에 경고를 하고 피할 수 있는 시간이라도 주어야 할텐데 3초라면 너무 짧은 시간이 아닌가.
3초의 미래를 본다는 것도 놀랍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이걸 능력이라고 할 수는 있는 것인가. 그리고, 이 능력자체가 제어가 되는 것인지도 궁금했다.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일자리인데. 차라리 이럴 줄 알았으면, 노인의 말이 사실이었다면 아 왜 그때 로또당첨을 하게 해 달라고 할 것을. 그는 당장 이번 로또 당첨금을 확인해 보았다. 일인당 10억원이 넘는 금액이었다. 주먹으로 자신의 머리를 쥐어 박았다. 이런 바보녀석 같으니라고.
평생 이런 식이었다. 뭔가 중요한 기회가 그의 인생에 빼꼼하고 고개를 드밀었는데 정작 자신은 기회를 놓친 기분이 들었다. 고래와 고등어, 멸치 중에서 뭘 줄까하고 누가 물었는데 자신은 멸치를 선택한 기분이랄까. 그때 노인의 집 주소가 생각났다. 집 근처의 아파트였는데. 정확한 동 호수까지는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러고보니 자신과 그 노인의 딸과 통화한 전화번호가 있지 않은가. 하지만, 막상 전화를 하려고 보니 또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도대체 뭐라고 하고 전화를 걸 것인가. 일단 다른 경우의 수를 생각해보자.
공사판에 일을 나가서도, 그의 머리속은 온통 그가 선택하지 못한 로또 생각으로 가득찼다. 하루는 일을 마치고 동료들과 삼겹살에 소주를 거나하게 먹었다. 그는 저녁 9시즈음에 용기백배해서 일전에 만났던 노인의 딸 핸드폰 번호를 열어 보다가 실수로 통화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여보세요? 누구신가요?"
"일전의 보았던 남자입니다. 그 어르신을 보호하고 있던. 혹시 어르신은 잘 계신지 궁금해서 전화를 한번 드렸어요. 너무 늦게 전화를 드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요."
"아, 아버지는 어제 돌아가셨어요. 참, 안그래도 고맙다고 말씀하셨어요. 전화 주셔서 감사합니다."
"뭐라고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점백은 전화를 서둘러 끊었다. 그런데 전화벨이 다시 울렸다. 방금 통화한 여자였다.
"아버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그 친구에게 능력을 하나 줬는데, 아마 쓸데까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고요. 잘 찾아보라고 하시더군요. 사실 3초만 가지고도 돈 벌 일이 많다고 하셨어요."
"겨우 3초로 어떻게요?"
"주식 같은 것 하면 될텐데 하시던데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점백의 뇌리에 번개가 꽂히는 것 같은 섬광이 느껴졌다. 마치 무슨 깨달음이 번쩍하고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직장생활을 할때 그는 주식으로 돈을 무진장 까먹은 기억이 있었다. 5천만원이 5백만원이 되었으니, 소위 마이너스의 손이라고 자조섞인 말을 하곤 했다.
그는 컴퓨터를 켜서 증권 거래 홈트레이딩 시스템에 접속했다. 한 종목을 찍어서 현재가격 페이지를 열었다. 그리고, 차트를 열었다. 3초 후에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 한번 집중해 보기로 했다. 자세히 주식을 보니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마치 눈앞에 또 하나의 모니터가 생긴 듯이 차트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니까 점백의 시야 정면에 차트에서 주식이 움직이는 데로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움직이는데, 바로 오른쪽에 그것보다 조금 빠른 타이밍 약 2~3초 같은 느낌으로 뭔가가 선행하듯이 움직였다.
오른쪽 화면에서 붉은색 막대가 올라가면 바로 왼쪽 화면속 차트에서도 붉은색 화면이 나왔다. 점백은 화면상에 나오는 시간을 초단위로 바꾸었다. 1초 단위로 주식의 가격이 오르내리는 장면이 나왔다. 3초면 세 개 막대기에 표시되는 가격 움직임을 알 수 있었다. 충분한 시간은 아니었지만,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그는 S전자를 샀다. 주가가 내리는 막대가 보이면 팔고 올라가는 막대가 보이면 사는 전략을 했다.
몇 번 해 보고 나서 이 방법으로는 돈을 잃지 않을 수는 있어도 따기엔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문제는 사고팔고 할 때 거래세가 빠지기에 매매를 할수록 손해만 누적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곧 방법을 찾아냈다.
거래량이 많이 터지는 종목을 찾아서 차트를 보고 있다가 일이 초 내에 확 매수가 몰리는 종목을 고르기로 했다. 하루 종일 차트를 보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확 이삼 초 내에 확 올라가는 종목이 있었다. 결국 거래세를 남기고도 하루 만에 20만 원을 벌었다. 다음날에는 50만 원을 벌었고, 점점 그는 익숙해져 갔다. 한 달이 지나고 정산을 한번 해 보았다. 지난 한 달간 4백만 원은 추가로 6백만 원을 벌어서 1천만 원이 되었다. 그리고, 기본 자금이 커지자 돈은 점점 더 많이 벌렸다. 결국 그다음 달에는 또 1천만 원을 벌어서 2천만 원이 되었고, 이렇게 1년 정도하고 나자 그의 계좌에는 약 5억이라는 돈이 쌓였다.
그는 일단 1억만 남기고 나머지 4억 원을 다 찾았다. 그것으로 일단 경기도 성남 쪽에 빌라를 하나 샀다. 3억 정도로 주차장이 넉넉한 빌라를 구매하고, 그랜저도 한 대샀다. 성공의 상징이라고 한 CF가 맘에 들었다.
5천만 원을 수표 한장으로 끊어서 봉투에 넣어 잘 챙겼다. 전처에게 전화를 걸었다.
“돈 마련되었어.”
카페에서 아내를 만났다. 돈을 벌면 옷차림에서 차이가 난다. 정장을 입고 들어서자 아내가 눈을 크게 떴다가 다시 시선을 깔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돈타령부터 했다.
“돈은?”
그는 양복 안쪽으로 손을 넣더니, 이내 흰 봉투를 테이블 위에 내려 놓았다.
“여기.”
아내는 봉투를 보자마자 낚아채듯이 집고는, 봉투에서 수표를 빼냈다. 수표를 손에 쥔 아내가 가만히 숫자를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이마 미간에 주름이 살짝 생겼다.
“5천만 원이네? 잔돈 없는데.”
“잔돈 필요 없어.”
“뭐 로또라도 맞은 거야?”
오래간만에 아내가 동그란 눈을 하고 그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비슷한 거야.” 이번에는 그가 아내의 시선을 피했다.
“안 그래도 서희 공부시키느라 정말 힘들었는데, 고맙네.”
“당연히 해야 할 행동인데, 늦어서 미안하네.” 점백은 아내의 표정을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대꾸했다.
그날 이후로 점백은 주말마다 딸 서희를 만날 수 있었다. 중학생이라 오래 얘기는 못하고 주로 가면 패스트푸드 점에서 햄버거를 시켜 먹고, 장래희망에 대한 얘기를 듣고 오는 것이 전부였다.
“미안해, 엄마 아빠가 이혼해서 네가 마음이 많이 힘들었지?”
그가 그 말을 하고 딸에게서 아무런 말이 없어서 눈을 들어 보니, 울음을 삼키느라, 입술을 바들바들 떨면서, 눈에 눈물이 가득 맺혀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그도 마음이 울컥했다. 햄버거를 서둘러서 입에 넣고 우걱우걱 씹었다. 딸아이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빠 나 학원수업 곧 시작해. 먼저 갈게.”
그는 입안 가득 빵을 머금고 있어서 발음이 잘 되질 않았다.
“어, 그래.”
멀어지는 딸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제야 그는 자신의 볼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띵동. 당신의 예지능력이 1초가 늘어났습니다.
+1초의 선물을 드립니다.
알람이 하나 떴다. 그건 반투명창이었다. 한 손에는 이미 먹다가만 햄버거가 들려 있었다. 그는 놀라서 천천히 햄버거를 내려놓았다. 소스가 엉망으로 눌어붙은 손을 들어서 빈 투명창에 대고 눌렀다.
자세히 보니 아래 설명이 있었다.
진정한 눈물은 당신의 예지 능력을 업그레이드해 드립니다.
이후 그는 눈물이 늘었지만, 억지로 흘린 눈물은 시간을 늘려주지 못했다. 현재까지 그가 볼 수 있는 미래는 조금씩 늘어서 현재는 최장 7초앞까지 볼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이 늘어난 것은 그가 딸 서희를 거의 5년 만에 만났을 때 한번 늘었고, 어머님이 돌아가셨을 때, 그리고 친한 친구가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을 때였다. 앞으로 더 늘어나게 될지는 모르지만, 이것으로 조용한 시골구석에서 그는 하루에 딱 100만 원 정도를 벌고 있다. 주식은 하루 딱 1시간 정도만 한다. 그것도 실은 좋은 종목을 찾는 일이 전부다. 7초 후의 일을 안다는 것은 엄청난 능력이다. 여기서 더 나가면 재앙이 닥친다. 모난 정이 돌을 맞는다. 티가 나지 않게 조용히 벌면 평생 아이를 뒷바라지하면서 키다리 아빠처럼 살아갈 수 있다고 그는 커피를 마시면서 회상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