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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좀 주세요.

점백은 6개월째 월급을 못 받고 있다.

by 캐아재

매사에 모든 것에 호기심이 많은 점백은 6개월째 월급을 못 받고 있었다.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노동청에도 얘기를 했지만 나이 든 사장은 눈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고민을 하던 그의 눈 앞에 신문 사이에 끼워진 전단지 하나가 보였다.


[ 기상천외하고 평화로운 방법으로 떼인 돈 받아 드립니다. ]


가만히 그걸 보고 있는데, 그의 눈길을 끄는 아주 신박한 전단지였다. 의뢰는 하지 않더라도 통화나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해당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밀린 월급을 6개월째 못 받고 있다고 하고 상황을 잘 설명했다. 전화 말미에 점백은 수수료가 얼마인지 물었다.


“아뇨, 수수료는 전혀 필요가 없습니다. 차비나 실비가 들어가게 되면 말씀드립니다. 그런데 한 10만 원 내외일 겁니다.”


점백은 수수료를 많이 받는 사깃꾼은 최소한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일주일이나 지났을까. 저녁에 집에 와서 식사를 하고 있는데 핸드폰의 진동소리가 윙윙 울렸다. 그렇게 전화를 피하던 사장이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다급한 사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잘못했네, 자네 계좌로 바로 3천만 원을 보내겠네.”


전화를 끊고 나자 실제 3천만 원이라는 거금이 점백의 통장으로 들어왔다. 황당한 상황이 벌어진 느낌이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참 이해가 안 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돈을 보내지 않고 버티던 사장이 왜 그렇게 갑자기 돈을 보냈을까?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질 않아서 점백은 편의점에 들러서 비타 500을 한 박스 사 들고, 어느 날 회사로 찾아갔다. 사장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차 한잔 얻어먹으러 왔습니다.”


사장실에는 전에 못 보던 부적 같은 것이 사무실 문지방 위에 붙어 있었다. 노란색 한지 같은 재질에 붉은색 잉크로 적은 부적이었다.


“무슨 다른 볼일이 있어서 온 것은 아니지?”


점백은 사장이 커피잔을 들면서 손끝이 떨리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사장에게서 놀라운 얘기를 들었다. 절대 어디 가서 이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는 다짐을 받고서 그는 얘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물부터 좀 마셔야겠네.”


사장은 앞에 놓인 생수병의 마개를 따고는 벌컥거리면서 물을 마시곤 놀라운 말을 시작했다.


내가 자네에게 돈을 주지 않고 버틴 건 아냐. 당장 회사가 힘드니까 나도 줘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거래처에서 돈이 들어오면 보낼 생각이었지. 지난주에 잠을 자는데 말이야. 꿈에 누가 나타난 거야. 처음엔 나도 무시했지. 그런데, 그 사람이 나를 데리고 어디론가 가더군. 꿈에서 나는 공중으로 엄청나게 올라갔어. 마치 내가 드론이 된 기분이었어. 그 사람은 나한테 밑을 내려보다고 하더군. 그래서 내려봤지. 그냥 건물의 옥상들이 보였어. 각 건물은 높이도 제각각 이더군. 녹색으로 된 옥상 공간에는 공조기를 올려놓은 집들도 있고, 화단을 꾸며 놓은 집도 있었지. 나는 언제쯤 내려주나 하는 마음이었어.


내 마음대로 내려갈 수 없다는 생각만 있었거든. 그렇게 얼마나 공중에 있는데 사람들에게서 이상한 것들이 흘러 다니는 모습이 보이더군. 어떤 사람의 몸에서 나온 작은 것들이 누군가에게 흘러가는 그런 모습이었어. 하지만 이런 것은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었어. 뭔가 가느다란 실이 연결된 모습인데 그 실은 절대 끊어지지 않는 실처럼 보였지. 어떤 사람이 노숙자에게 고함을 치는 모습이 보였어. 그러더니 내가 어느 순간 그들 가까이 서 있었지. 어라 언제 다시 내가 내려왔지. 하는 생각이 든 건 찰나였어. 그것보다 궁금한 것은 노숙자의 몸에서 뭔가 가느다란 실이 방금 한참 쌍욕을 하고 간 사람의 등에 붙은 장면이었지. 방금 본모습은 아주 충격적이었어.


노숙자의 몸에서 나온 어떤 작고 검은 덩어리 같은 것들이 그 실을 따라서 멀어지고 있는 남자에게도 옮겨가는 모습이었거든.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아서 한참 그것들을 보고 있었어. 대각선 맞은편 편의점의 문에서 딸랑거리는 출입문 종이 울리는 소리가 났어. 거기서 한 예쁜 소녀가 나타나서 양손에 햄버거와 음료수를 들고 와서는 노숙자에게 주고 가더군. 그런데 이미 둘 사이에는 선이 연결되어 있었어. 이번에 나온 선은 선의 색 자체가 금색이야. 이번에도 노숙자에게서 그 소녀의 등으로 연결된 선이 있는데 그 선으로 뭔가 밝고 빛나는 작은 것들이 옮겨가고 있더라고. 그러고 보니 노숙자에게서 나온 선들은 엄청나게 많았어. 이 즈음에서 나의 궁금증은 하늘을 찔렀다네. 그래서 물어봤지.


“저 선들은 다 뭡니까?”


“자네가 보는 것과 같다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실 같은 것이지.”


그 사람의 말에 의하면, 인간은 모든 인연이 이어지는데, 누군가에게 악행을 행하면 피해를 받은 사람의 불행의 씨앗들이 악행을 행한 사람에게 옮겨진다는 거야. 웃기는 말이지? 검은 형체는 나에게 다음 주에 벌어질 일을 보여주더군. 자네가 시너를 구해서, 몸에 불을 붙이고 우리 공장에 와서 분신자살을 하는 모습이었다네. 그 일로 인해서 나는 모든 기자재들이 불타서 망하게 된다네. 화재보험을 가입하지만 경찰에서는 내가 방화한 일로 오인받아서 나는 방화범이자 보험사기로 죄가 추가되기도 하는 거야. 내가 현장에 없고, 내가 지시한 일도 아닌데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 내가 항변했지. 하지만, 공조롭게 모든 일이 그렇게 돌아가고자 한다면 그럴 수 있다고 하더군. 물론 나중에는 나의 무죄가 밝혀지지만 그건 내가 이룬 모든 것들이 사라진 다음이라고 했어. 내게 보여준 이미지들은 충분히 나를 설득했지. 그리고, 나는 자네에게 닥칠 불행의 일이 우리 집에서 내리는 징조도 보았어. 아주 무섭더군.

사장은 말을 마치고 나서 씁쓸한 표정으로 점백을 바라보았다.


“그간 맘 고생 시켜서 미안하네.”


“아닙니다. 사장님. 그동안 신세 많이 졌습니다.”


사장의 배웅을 받으면서 점백은 집에 왔다. 낡은 원룸 한 구석에 포장도 뜯지 않은 박스들이 널려 있었다. 여름을 지나면서 황갈색 골판지 재질의 박스 아래쪽 귀퉁이가 물러져 터졌다. 그 사이로 붉은색 플라스틱 신나통들이 힐끔 보였다. 점백은 저것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때였다. 전화기가 울렸다. 점백이 전화를 받자 상대 남자가 말했다. 그가 물어보는 것은 잘 처리가 되었느냐는 것이었고, 점백은 너무 감사한 마음에 전화기를 들고 보이지 않는 상대를 향해서 머리를 조아렸다.


“계좌번호를 하나 보낼게요. 실비 10만 원만 보내주십시오.”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점백은 바로 해결사 남자에게 돈을 보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궁금한 것들이 너무 많았다. 아니, 이런 일은 100만 원을 달라고 해도 줬을 것이다. 최소 자신도 그 정도는 충분히 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상대가 원하는 것은 꼴랑 10만 원이다. 물론 10만 원이 적은 돈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3천만 원이라는 거금을 돌려받게 해 주면서 어떻게 겨우 10만 원의 보수만을 원할까? 아니, 왜 하필이면 딱 10만 원일까? 원래 궁금한 일은 잘 참지 못하는 그였다. 그는 핸드폰으로 온 문자를 보았다.


[ 10만 원 입금 잘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겨우 이렇게 이것만 받고 만다고? 점백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3천만 원이라는 거금이 기존에 모아놓은 은행통장에 얹어지자 기분이 너무 좋았다. 다음 일자리도 찾았다. 좋은 일들이 겹쳐지고 있었다.


그는 참다못해 술을 한잔 마시고 집에 온 날 문자를 보냈다. 내일 전화를 좀 드려도 되겠냐고. 그리고 다음날 점심시간 즈음에 전화를 걸었다.


“도대체 어떻게 한 겁니까? 너무 궁금하네요.”


잠깐 침묵이 흘렀다.


“정말 궁금하시면 사무실로 한 번 오세요.”


전화를 끊고 점백은 날을 잡아서 해당 사무실로 향했다. 넓은 사무실 가운데 책상 하나 소파하나 가 달랑 있었다. 10월 중순이 넘어서 날씨가 15도 내외인데, 안에는 그 어떤 난방기구도 없어서 살짝 냉랭하고 습한 기운이 흘렀다. 점백의 생각을 읽었는지 해결사 남자가 말했다.


“좀 꿉꿉하지요?”


해결사 남자는 키가 작은 편이고 통통하게 배가 나온 중년의 남자였다. 적어도 양복정도는 입고 있을 줄 알았는데 남자는 마치 자신의 집 안방에 있는 듯이 편안한 복장이었다. 운동복 바지에 목이 늘어난 카라가 없는 원통형 티셔츠 그 위에 긴 팔 운동복이었다. 바지 운동복과 상의 운동복의 색감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뭐라도 좀 드시겠어요?”


말을 그렇게 하면서 그는 점백에게 작은 명함 하나를 건넸다.


[ 최면사 박기석 ]


명함은 조악하고 품질이 별로였다.


“도대체 어떻게 하신 겁니까?”


“뭐가 불만이죠?”


“아니, 어떻게 그놈의 고약한 사장이 제가 그렇게 달라고 애걸복걸할 때는 안 주더니, 전화 한 통으로 이렇게 간단히 해결해 주셔서 너무 놀랐습니다. 그리고, 왜 10만 원을 달라고 하시는지도 궁금해서요. 100만 원을 달라고 해도 저는 드렸을 텐데요.”

“저는 제가 일한 만큼 받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게 다예요.”


“일한 만큼이라고 하시면 그것보다 더 달라고 해도 저는 드렸을 텐데요.”


“아, 저는 그 친구에게 정확히 친구는 아니죠. 손님분의 전 사장이죠. 그 사장에게 제가 행한 일에 대해서만 돈을 받고 싶었습니다.”


“지금 박 선생님께서는 10만 원어치만 일을 했다는 뜻인가요?”


“그렇죠. 더 할 것도 없습니다.”


“좋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도대체 그럼 공짜로 하시지 왜 100만 원도 아니고 10만 원을 받으려고 하시는 겁니까?”


“오해 마세요. 그건 제 교통비를 포함한 저의 인건비입니다. “


“직접 가서 만나신 건가요?”


“제가 일전에 손님분의 사장님의 동선에 대해서 물어본 것 기억하시나요?”


점백이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집 근처에서 기다렸다가 마주쳤습니다. 그의 엘리베이터 안이죠. 그때 나는 그에게 최면을 걸었어요. 그건 아주 간단했답니다. 이제 답이 되었죠?”


“아...”


점백은 서둘러 버스를 타고 집으로 왔다. 그는 방구석에 놓인 시나 더미를 보았다. 살짝 소름이 돋았다. 이미 자신의 상황을 안다는 것은.


그날 저녁 동네에 있는 페인트 가게 주인은 동네주민 한 사람으로부터 신나 몇 통을 받고 기분이 묘했다. 유성페인트 녹일 때 쓰시라고 하면서, 필요 없는 것을 함부로 버릴 수도 없어서 기부하고 간다고 말하는 남자의 표정이 평화로워 보인다는 생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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