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점백은 의사로부터 심각한 경고를 받았다. 내일부터 당장 운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운동화 끈을 묶고 헬스장으로 향했다. 러닝머신에 올라가서 천천히 걸었다. 첫날은 시속 4km로 걷고, 다음날은 시속 5km 속도로 빠른 걸음을 걸었다. 시간도 처음 10분에서 20분으로 점차 늘려갔다.
그렇게 조금씩 속도를 높여서 한 달이 되자 시속 6.5km에서 7km 사이로 슬로조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일 년 정도 거의 매일 새벽 조깅을 하니, 체력도 많이 좋아졌다.
김점백은 이제 완전히 조깅에 맛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렇게 매일 관리하니 아주 좋구먼. 이렇게 좋은 조깅을 그동안 왜 못했을까. 이렇게 운동을 하는 것이 대부분의 경우 좋지만 가끔 오버 페이스로 운동하는 일이 생기곤 했다. 그건 그의 옆에 누군가가 와서 뛸 때에 자연스럽게 생기는 경쟁심이었다.
사실 어릴 적부터 그의 경쟁심은 남달랐다. 학창 시절에는 누가 턱걸이를 20개 했다고 하면 그는 매일 연습해서 30개를 했다. 누군가 밤 11시까지 공부하면 그는 12시까지 공부했다. 그 덕분에 명문대에 입학했다. 사회에 나와서도 누가 좋은 직장에 들어갔다고 하면 자신도 기를 써서 좋은 직장을 구했다. 또 친구 중에 누가 32평 아파트를 샀다고 하면 그는 최소 한 평이라도 그 큰 평수인 33평을 사야 직성이 풀렸다.
“당신은 다 좋은데 그놈의 승부욕 때문에 문제야, 좀 살살해.”
한 번은 고속도로에서 옆 차선에 선 차량과 속도경쟁을 하다가 큰 사고가 날 뻔한 이야기를 들은 그의 아내가 그에게 당부한 말이었다.
“알았어. 하지만, 경쟁이 붙으면 나도 모르게 폭주하게 되는 걸 어떡해.”
점백은 뒤통수를 벅벅 긁적였다.
“당신 저번에도 아침 식사시간 지나서도 계속해서 뛰었잖아.”
“아니, 내 옆에서 계속해서 뛰니까 나도 그냥 뛴 것뿐이야.”
“그 사람은 당신 운동 거의 끝나는 시간에 왔다면서. 안 그래?”
“아니, 정확히는 거의 끝나는 시간이 아니고 10분 정도 남았을 때 온 거야.”
실제로 그랬다. 점백은 보통 아령을 한 10분간 들고 난 뒤에 한 40분에서 50분가량 러닝머신을 뛰는데 그날은 2시간이 거의 지나서 녹초가 되어 집에 온 것이었다. 아내가 왜 이렇게 늦었냐고 물으니, 한 40분 뛰고 나서 이제 한 10분 정도만 더 뛰고 그만 뛰려고 했는데 웬 남자가 자신의 옆 라인에서 뛰는 바람에 경쟁심이 올라왔다는 것이었다.
점백이 운동하면서 본 바에 따르면 그 남자는 대략 40분에서 50분 정도 뛰던 회원이었다. 그날따라 무슨 결심을 했는지 1시간이 넘게 뛰었다. 그 바람에 점백은 아침식사 시간도 놓치고 뛴 것이었다. 결국 옆 라인의 남자가 러닝머신 기계를 내려간 다음에 점백도 내려왔다. 그의 입가엔 미소가 떠올랐다. 오늘도 경쟁에서 이긴 자신이 대견스러웠다. 생각해보니 옆라인의 남자도 자신을 의식한 것이 틀림없었다. 매사가 이런 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이었다. 점백은 평소처럼 거울을 보면서 아령 운동부터 시작했다. 십분 정도 지나서, 그는 러닝머신에 올랐다. 헬스장에는 러닝머신 십여 대 정도가 창가에 줄지어 있었다. 새벽에 러닝머신에 올라서 뛰는 사람은 많아야 자신을 포함해서 한 두 명이었다.
보통의 경우 이렇게 여유로운 러닝머신에서는 서로 몇 대를 사이에 두고 뛰게 마련이다. 그런데 방금 점백의 바로 옆 기계에 누군가 올라섰다. 그리고 익숙한 듯이 전원버튼을 누르고 속도버튼을 눌렀다. 점백은 직감적으로 저번에 자신이 이겼던 남자라는 것을 눈치챘다. 남자가 누른 러닝머신의 속도가 시속 7km로 자신이 지금 뛰고 있는 속도와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 이 녀석도 지고는 못 사는 놈이구나. 점백은 속도를 더 높일까 하다가 마음을 바꾸었다. 좋다. 오늘 네가 이기든지 내가 이기든지 한번 해보자. 점백은 창 밖에 시선을 집중했다. 귀에서는 무선이어폰을 통해서 빠른 비트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최소 2시간은 버틸 자신이 있었다. 이것 봐, 젊은 친구, 이래 봬도 난 1년 넘게 조깅을 하고 있어. 난 한번 한다면 하는 놈이야. 아주 사람을 잘못 봤다고. 점백은 옆 라인의 사내가 하고 많은 러닝머신을 다 놔두고 자신 바로 옆의 러닝머신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맘에 들지 않았다. 한번 해보자는 거지. 좋아, 아주 난 좋다고. 양 손바닥으로 자신의 뺨까지 두세 번 쳤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저번에는 거의 끝나기 10분 정도 전에 경쟁을 시작해서 억울한 감이 있었지만 이번에서 자신도 막 시작한 터라 해볼 만했다. 그래, 한번 진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할 거야. 억울하기도 하겠지. 하지만, 어디 두고 봐. 부딪혀서 안 되는 나무도 있는 법이니까.
달리기를 시작한 지 30분 정도 넘어가자, 이마에서 땀이 솟구쳐 나오기 시작했다. 이것 봐, 난 손수건도 준비했어. 오른쪽 뒷주머니에서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으면서, 점백은 옆의 사내를 살짝 곁눈질했다. 고개를 돌려서 보기엔 자존심이 상했다.
개노무자식 같으니라고, 하고 많은 것이 러닝머신인데 바로 내 옆에서 뛴다고? 그것만으로 자신에게 도전장을 낸 것이라고 그는 확신했다.
1시간 즈음 지나자 그의 발이 점점 무거워졌다. 속도를 좀 줄이고 싶지만 왠지 그렇게 하는 것만으로 이미 경쟁에서 진 것을 인정하는 것 같아서 그는 좀 더 참아보기로 마음먹었다. 나도 힘들지만 상대는 더 힘들 거야. 그렇게 1시간을 더 뛰었다.
점백은 이제 거의 쓰러질 것 같았다. 무엇보다 땀을 많이 쏟아서, 목이 말랐다. 무릎도 조금씩 시큰거렸다. 하지만,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 지는 것은 더 싫었다. 그래서 먼 가로수 너머를 보면서 자꾸 다른 곳에 신경을 두려고 얘썼다.
그때였다. 목 뒤편에서 뭔가 뜨거운 느낌이 확 올라오면서 눈앞에 캄캄해졌다. 어라, 내가 왜 이러지? 하는 순간 옆의 난간을 잡으면서 확 뒤로 넘어졌다. 다행히 러닝머신에 달린 응급스톱기능이 작동하면서 러닝머신이 멈췄다. 러닝머신 뒤에서 비틀거리다가 겨우 옆에서 로봇처럼 뛰고 있는 남자의 뒷모습에 눈길이 갔다.
점백은 경악했다. 그 남자의 등에는 흰색 천에 박음질을 해서 이렇게 쓰여 있었다.
[ 헬스케어 보조를 위한 신형 휴먼 로봇의 러닝 테스트 ]
그 글자를 보고, 한번에 눈에 들어오진 않았다. 하지만, 잠시 생각을 하다가 그게 뭔지 이해했다. 방금 러닝기계의 난간을 잡고 겨우 일어섰던 그는 맥이 풀렸다. 다리가 탁 풀리면서 그대로 그는 양팔을 벌리면서 대자로 뻗었다. 놀란 회원들의 신고로 119 구급대가 급히 도착했다. 들것에 실려가면서 그는 얼마 전 TV 뉴스에서 본 장면이 떠올랐다. 새로 출시된 휴먼 로봇이 마치 인간하고 똑같은 외형을 하고 있다고 했던 공영방송 아나운서의 경악스러운 리액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