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정신을 차려보니 어딘가에 감금되었다.
방 입구가 철문으로 외부에서 잠갔다는 것을 빼고는
시설이 좋은 것이 호텔방 같았다.
침대 바로 옆에 전화벨이 울려서 전화를 받았다.
“지금부터 문제를 낼 테니 풀면 여기서 풀려날 수 있다.”
침대 바로 앞에 큰 대형 모니터에 문제가 나타났다.
“디커플링은 무슨 뜻인가?”
“아.... 모르겠는데요.”
“흠, 탈락.”
“정답은 동조화 현상의 반대말이다. 커플링의 반대말로 어떤 경기 흐름과 반대로 움직여서 독립적으로 움직인다는 뜻이지. 다시 읽어.”
남자가 주변을 돌아보니 전화기 바로 옆에 있던 책은 전화번호부 책이 아니고 아주 두꺼운 시사상식 책이었다. 탈출하려고 폰을 찾았지만 자신의 핸드폰도 없다.
전화기를 들어서 단축키를 눌렀지만 전혀 반응이 없이 ‘웅’하는 신호대기음만 들렸다.
자신의 복장을 보니 운동복 아래위다.
무슨 기숙학원 단체복장 같았다.
어제 기억을 더듬어보니, 어디 취업준비 학원에 간 것이 기억났다.
한 달 내에 무조건 취업 준비를 완벽히 시켜준다는 곳이었다.
아...
주사를 맞은 것까지 생각이 났다.
그래, 내가 동의를 했었지.
침대벽에 기대어 앉아서 책을 읽다가 지루해져서 TV라도 볼까 하는 마음에 리모컨을 찾았지만 리모컨도 없었다. 철문 쪽으로 다가가서 소리쳤다.
“여기요.”
하지만 아무런 대꾸도, 반응도 없었다.
식사는 두꺼운 철문 아래를 통해서
정확히 오전 7시와
12시, 그리고 저녁 6시에 나왔다.
정해진 시간에는 맨손체조를 시켰다.
매 시간마다, 다시 모니터가 켜졌다.
질문이 하나 또 나왔다.
“ESG 경영의 뜻은?”
“몰라. 그것도. 나 내보내줘. 야이, 쉐키들아.”
남자가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처음에는 반항을 했지만, 핸드폰도 없고 인터넷도 안 되는 상황이다.
만약 자신이 공부를 안 하면 할 일도 없었다. 처음 3일은 내리 잠만 잤다.
반항도 해 보았다.
하지만, 뇌는 항상 자극적인 것을 찾는다.
3일 즈음 아무런 정보도 들어가지 않자, 이제 사내에게 시사상식책은 가장 재미있는 것이 되었다.
게임도 없고, 인터넷도 없고, 하다못해 하소연을 할 친구도 없었다.
그저 자신의 방에 있는 침대와 책상과 그 위에 놓인 시사상식책이 전부였다.
굳이 더 있다면 4색 볼펜하나와 딱딱한 나무의자가 전부다.
그나마 자신에게 말을 걸어주는 것은 문제에 대한 질문을 하는 저 모니터 속의 사람이었다.
AI인지도 몰랐다.
남자는 커피를 한잔 마실 수 있는지 물었다. 커피가 너무 마시고 싶었다.
"한 문제라도 맞추면 드릴게요."
학원 쪽 담당도 공부를 시키는 것이 목적이지, 감금이 목적이 아니기에 이런 식으로 딜을 걸었다.
남자는 커피 한잔을 마시기 위해 한 문제라도 맞혀야 했다.
결국 매일 공부했다. 잠을 자는 시간 6시간 정도는 빼고 18시간을 시사상식 책을 파고들었다.
18시간 동안 하루 20페이지는 그냥 달달 외울 수 있었다.
처음에는 이해를 하면서 읽었다. 천천히 이해를 하려고 노력하니 어려운 글자들도 행간에서 맥락이 잡혔다.
틈틈이 맨손체조를 했고, 그가 신경 쓰고 봐야 할 것은 시사상식 책 1권밖에 없었다.
읽고 또 읽었다. 다른 신경 쓸 것이 없으니, 그냥 읽어지고 외워졌다.
그렇게 한 달 즈음 지나자 남자는 약 400페이지 정도 되는 시사상식 책을 다 외웠다.
그것도 그냥이 아닌 달달달 외우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드라마나 영화의 대사도 아니었고, 그냥 맥락을 내 것으로 이해해서 답을 내면 되는 내용인지라, 점점 거침없이 답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매 시간 물어오는 질문은 다시 외운 것을 복습하는 보너스 효과도 가져다주었다. 기계인지 사람인지 100% 확실하지는 않지만 문제를 내는 여자는 항상 사내가 버벅거리는 문제를 집중적으로 물어왔다. 저번에 틀린 부분을 제일 먼저 물어본다. 당연히 달달 외어야 했고, 하다 보니 익숙해졌다.
매시간 정각에 물어보고 틀리면 답하니 당연한 결과였다. 문제는 오전 10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약 12시간 동안 매 시간마다 물어온다. 매시간마다 틀리면 거기서 질문은 스톱되고 맞으면 계속해서 50문제까지 질문이 쏟아진다.
“오후 3시 정각입니다. 문제 나갑니다. ESG 경영의 뜻은 무엇인가요?” 다시 물어왔다.
남자가 빠른 목소리로 대답했다.
“환경보호(Environment)의 E, 사회공헌( Social)의 S, 지배구조(Governance)의 G의 영어 알파벳 앞 글자들을 합쳐서 만든 약어로, 기업들의 친환경 경영, 사회적인 책임과 투명한 지배구조 같은 것을 일컫는 말로 과거에는 기업들의 수익적인 측면으로만 본 것을 떠나 이제는 이러한 비 재무적인 성과들도 보면서 투자의사결정을 내리겠다는 2004년 UN 보고서에서 제일 먼저 나온 말입니다.”
“흠, 오케이, 정답입니다.”
남자는 결국 이렇게 연속으로 49문제를 다 맞췄다.
“정답”
“정답”
“정답”
“자 이제 마지막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맞히면 저 문을 통해서 나갈 수 있습니다."
“50번째 문제입니다. 셀피노믹스란 무엇인가요?”
“팬더믹 이후 언제 어디서든지 콘텐츠 유통 시장이 열리면서 개인의 영향력을 통해서 수익 창출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제 콘텐츠 아이디어나 경쟁력만 있으면 개인들도 마치 셀카를 찍듯이 돈을 버는 것을 말하죠.”
‘삐. 삐. 삐.’
소리가 들렸다. 기계가 정답을 체크하는 중이었다.
이윽고 스피커에서 소리가 들렸다.
“정답”
“축하드립니다. 드디어 수료를 축하합니다.”
‘덜컹’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남자는 천천히 문을 걸어서 나왔다.
기나긴 복도에 철문이 한 100개는 되는 듯싶었다.
지나가면서 철문 사이로 보니 사람들이 침대나 책상에 앉아서 시사책을 달달 외우고 있었다.
입구에 다다르자 사이를 복도 사이마다 마치 교도소처럼 쇠창살 문이 또 딸각하고 열렸다.
그렇게 엘리베이터에 다다랐다.
지상 1층 버튼을 눌렀다.
입구에 가니 로봇이 탈의실로 안내를 했다. 옷을 갈아입고 나니 신분증과 지갑 자동차 키와 핸드폰도 받았다.
핸드폰을 받자마자 알람이 울렸다.
‘띵동’
[ 학원비 300만 원이 결제되었습니다. ]
남자는 나오면서 화가 났다.
이런 식으로 진작에 공부를 했으면, 자신도 스스로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학원 상담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정말 다 외우시계 해 드려요. 그게 아니면 학원비는 받지 않습니다. 선택은 고객님의 몫이에요.”
“이 주사는 기억력을 증진시켜 주는 주사예요. 평생 한 번만 맞으시면 됩니다.”
그리고 정말 한 달 후 남자는 취업이 되었다.
시사상식 시험에서 만점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합격통지를 받고 기쁜 그의 눈에 거리를 나 뒹구는 익숙한 전단지가 보였다.
< 기숙학원으로도 안되시는 분들을 위한 신종 취업감금학원. 무조건 취업을 보장합니다. 100% 후불제. >
< 정말 저도 처음엔 안 믿었죠. 지금은 너무 만족합니다. - 대기업 취업 K군 ->
< 더 일찍 만나면 좋았을 텐데요. 행복해요 - 공기업 취업 C 양 ->
< 왜 이제 나온 거예요. 내 사랑 돌리도. - N차 재수로 입사한 취준생 L 양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