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아씨는 요양원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병실에 들어갔다. 6인실은 만실이라 일단 급한데로 2인실로 잡아 드린 것이 3개월 전인데 엄마는 아직도 2인실을 쓰고 있었다.
맞은 편 침대는 얼마전 공석이라 그녀의 엄마는 혼자 비스듬히 앉아서 TV를 시청하고 중이다. 병실문을 닫고 핸드백을 옆 침대 위에 던지듯이 놓고는 엄마에게 쏘아 붙였다.
“아니, 엄마, 나이가 몇 살인데 그런 주사 맞는다고 그래?”
어제 걸려온 전화로 엄마와 대판 싸운 후였다. 무슨 역노화 주사 한 대에 130만원이라니.
“넌 이 에미가 그냥 늙어 죽었으면 좋겠지?”
엄마는 TV에서 시선을 고정 시킨 채 받아쳤다. 팔짱을 낀 자세로 비장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상가 소유권 다시 내 놔.” 엄마가 다시 말했다.
“뭐?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지금 나한테 준 그 코딱지만한 상가 줬다고 유세하는거야?”
“그래, 유세한다. 왜. 내놔. 내가 그 월세 모아서 주사 맞으려니까.”
엄마의 시선이 서 있는 현아를 향했다. 눈에는 독기가 어려 있었다. 이번에는 현아가 시선을 피했다.
“좋아, 그래 좀 물어봅시다. 그 주사가 그렇게 맞고 싶어요? 그렇게 젊어지고 싶소, 엄마?”
“젊어지겠다는게 아니잖아.”
“그게 아니면 뭔데?”
“안 아프고 싶은거야. 그게 염증을 다 잡아준다고 하니까.”
엄마의 목소리가 조금 전과는 달리 조금씩 차분해지고 있었다.
“그거 매년 맞아야 한다면서? 1년차에만 130만원이고. 그 다음부터는 1,300만원이라고 들었어.”
“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니? 올해 88세야 이제 두 달만 지나면 89세고.”
현아 씨는 짜증이 올라오고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도 벌써 2년이 지나 엄마는 살짝 치매끼도 있다. 누가 이 노친네에게 바람을 불어넣었는지 따져 물을 생각이었다. 아무래도 요양원 원장이 아니면 왕진 온다는 의사가 영업을 한 것일터였다. 안 그래도 새로 시작한 보험일에 정신이 없는데.
“그래, 알았어. 1년후는 그때가서 생각하자고. 난 엄마 상가에서 나오는 월세 100만원으로 팔자 고치고 싶은 마음 없으니까, 그걸 모아서 맞춰줄께. 나 여기 원장실에 좀 다녀올게. 이것저것 좀 물어보고, 이거 엄마 먹으라고 가지고 온거야.”
그녀는 입구쪽 침대에 올려둔 과일바구니를 그제서야 엄마의 머리맡으로 옮겼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바로 2층 원장실로 향했다. 미리 통화를 해 두어서 원장은 기다리고 있었다.
‘똑똑’
“네, 들어오세요.”
입구가 유리문이라 내부가 훤히 보였다. 요양원 원장은 컴퓨터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어서 주의를 환기시키려는 목적으로 일부러 노크한 것이다. 그녀는 앉자마자 바로 본론부터 말했다.
“아니, 어제로 말씀드린 주사 관련해서 누가 말한거에요?”
“허허, 어제 말씀 주셔서 혹시 여기 왕진오시는 의사분이나 간호원에게 들었는지 한번 더 확인해 봤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맞은편 침대에 계셨던 분이 그 주사를 맞고 퇴원하시면서 입에 거품을 물고 말씀하셨다고 하더군요.”
“네? 그 맞은 편 침대에 계셨던 분이요?”
현아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대답을 들어서 잠깐 당황했다. 사리판단이 정확하지 않은 그것도 치매끼가 있는 엄마를 현혹시켜서 효과도 없는 주사를 홍보한 사람을 찾으려고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맞은편의 노인이라니.
“그 분은 어디 병원으로 옮겨 가셨는데요?”
“병원으로 옮겨가다니요?”
“지금 퇴원하셨다고 하셨잖아요. 설마 돌아가셨나요?”
“허허허, 아닙니다. 그 주사를 맞고 한 두달인가 점점 몸이 좋아지셔서 그냥 퇴원하셨어요. 일상으로 복귀하신 거지요.”
“원장님, 그 분이 맞나요? 전에 와서 뵜을때는 뇌출혈인가 와서 거동도 못하고 계셨는데....”
“네, 대소변 받아내고 그랬죠. 저희도 이제 한 1년 정도 버티면 오래버티시겠다 했어요. 그 분이 죽고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죠. 아들인가 미국에서 들어왔어요. 그 분이 그 약 얘기를 했어요. ‘불사의 주사’라고 지금 미국은 덕분에 난리가 났다고 말이죠. 그래서 그 분이 소개를 했어요. 마침 진료가 있던 왕진 의사는 그 약을 못 구해서 그 분이 어머니를 모시고 나가서 그 무슨 큰 병원인가 가서 맞추고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주사를 맞고 괜찮졌다는 말을 하시는 건가요?”
“네, 저희도 너무 놀랐죠. 콧줄도 달고 그랬던 분이 멀쩡히 굳은 몸을 펴시기 시작했어요.”
“그게 가능한가요?”
“사실 전 지금도 멍한 상태입니다. 아직 언론에는 잘 안나오더라고요. 그분 말씀이 제약사에서 일부러 디마케팅을 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디마케팅이라면....”
“일부러 소문이 안나게 하는 기법이라고 하더군요. 저도 몰라서 물었어요. 아직 가격이 비싸고, 공급이 많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초창기 비아그라 얘기를 하던데 확 이해가 되었어요. 찾는 사람은 많은데, 공급이 부족하면 그렇게 한다고 하더군요. 허허허.”
원장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연신 웃으면서 답했다. 그냥 뚱해서 표정 굳힌 것 보다는 백배 낫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아는 자신의 상식으로 이해가 안되는 일들이 벌어지는 세상의 변화가 썩 반갑지는 않았다. 마치 난 걷고 싶은데 강제로 뛰는 느낌이랄까.
“그 이후로 왕진하는 병원에서도 그 약을 구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사기같은데, 아니라고 하고, 엄마는 맞고 싶다고 하고....
핸드폰의 은행 송금 화면을 열어 놓고 130만원이라는 숫자를 한참동안 지켜보았다.
마침내, 송금 버튼을 눌렀다.
“네, 간호사님, 지금 막 송금했고요. 네 잘 부탁드립니다. 다음주 수요일에 맞는다고요. 네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엄마에게 전화를 해 줄까 하다가 그녀는 그냥 두었다. 어차피 알아서 맞을터였다. 그렇게 맞고 싶어 했으니까. 안 아프고 지내다가 가시면 그것으로 만족이다. 더 새롭게 건강하고 그렇지 않아도 좋다. 무슨 금 3돈 가격씩이나 받는지. 주사가 아니라 그정도는 액체 금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1년 전 미국 존스홉킨스 병원 연구동에는 축하 플랭카드가 1층 입구에 크게 걸려 있었다. 거기 사진에 걸린 사람은 전체 연구실을 맡고 있는 에재오 박사였다. 그는 올해 45세로 메디컬사이언스실의 연구실장이었다.
그가 전세계의 역노화 예방 프로그램의 최전선에 서 있다. 이미 타임지에도 그의 활약상이 무려 4페이지에 걸쳐서 나왔다. 그가 개발중인 소위 ‘불사의 주사’는 과거 진시황제가 그렇게도 찾던 바로 그 영약이었다.
허벅지의 대동맥 벽에서 발견된 ‘엔도막’이란 이름의 세포는 기존 세포와 달리 약 100배의 속도로 신체내의 모든 세포들을 정상으로 돌려 놓았다. 그 슈퍼치유 세포의 활동 기간이 기존에는 고작 이틀 정도였지만, 지난 10년간 연구실에서 불철주야로 일한 결과 그와 그의 팀원들 20명은 결국 한계를 넘어섰다.
꿈의 1년.
이제 1년에 주사 한방이면
인간의 몸 속의 모든 병은 사라진다.
100배의 치유세포가 몸 속의 염증을 없애고, 독소를 없애고 다니니, 암도 접근 불가했다.
“2100년, 노벨의학상은 존스홉킨스 병원의 연구실장이신 에재오 박사입니다. “
스웨덴 왕립연구소의 노벨상 담당자가 발표를 했다.
그날 밤, 집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왠일이야? 정 박사가 국제전화를 다주고.”
“닥터 에, 노벨의학상 받은 것 축하네, 아주 부럽네, 자네가 동기중에서 제일 성공한 것 같아. S대 의대교수로 온다고 벌써 소문이 자자하더라.”
“후후, 소문이 벌써 거기까지 난건가? 축하해줘서 고마워. 찬주야, 서울가면 한 잔 하자.”
찬주는 노벨의학상을 받은 에재오 박사가 같은 동기였지만 자랑스러웠다. 참 다른 길을 걸어왔다. 자신은 현업에서 의사로 활약하고 있는데, 재오는 의과학쪽으로 틀어서 의학 연구에 거의 평생을 매진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하는 친구를 종종 응원하곤 했는데 그가 이런 대형 사고를 칠 지 아무도 몰랐다.
세계인의 삶도 엄청 바뀔 거라고 재호는 만나면 역노화 얘기로 시간 가는줄 몰랐다. 그가 개발한 역노화 주사에 대해서는 이미 찬주가 미국 의학 학회에 갈때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서 잘 알고 있었다. 찬주는 지방병원에서 조용한 삶에 만족하고 살고 있다. 다들 병원을 확장하라고 난리지만 그는 그냥 지금의 자급자족하는 삶에 만족하고 있다. 최근에는 노인들이 늘어서 일주일에 한 번은 인근 협약된 요양원에 매주 왕진을 가고 있었다.
출시한 지 두세 달 즈음 지나자, 한국에도 글로벌 제약사가 출시한 ‘불사의 주사’가 출시되었다.
오늘 이곳에서 첫 ‘불사의 주사’를 맞을 사람은 두 명이었다.
진료실에 두번째 환자로 들어온 김복순 여사는 올해 88세다. 딸 하나 있는데 굳이 사위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 J요양원에 들어왔다고 했다. 요양원 앞에는 넓은 저수지도 있어서 전망도 괜찮았다. 2인실을 배정 받았지만 지난번 퇴원한 환자가 나간 뒤로 계속 공실이었다. 다들 6인실을 선호했다. 2인실만 해도 자가 부담금이 확 올라가니까.
오전 9시, 그녀는 자신의 병실에서 호숫가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참 인생 나쁘지 않게 살아왔다. 딸 하나를 잘 키웠고, 손주들은 이제 곧 결혼을 앞 두고 있었다. 손주들 시집 장가 보내고 나면, 그녀의 인생도 슬슬 마무리할 단계였다. 먼저 간 남편은 어떻게 지내는지 먼 하늘의 구름들위에 마치 남편이 크게 손을 흔드는 것 같아서 한참이나 구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멀리서 의사 일행들이 들어오는 구급차가 보였다. 슬슬 진료실로 이동할 생각이었다. 가망이 없는 사람은 진료도 받지 않아서, 한 열 명 정도만 정기적으로 진료를 받는다. 그래도 아직 휠체어를 타지 않고 거동할 수 있는 것만 해도 감사했다. 그녀의 옆에는 지팡이가 햇빛을 받아서 반짝이고 있었다.
지팡이를 짚고 일어나려나 보니 옆구리에서 진동이 울렸다.
핸드폰이 울려서 보니 딸이었다.
“어, 왠일이니?”
“엄마, 오전에 진료있지?”
“어.”
“저번에 엄마가 말한 그 주사 한번 맞아보자고 했어.”
결국 현아 씨는 잠시 후면 알게 된 일을 말해버렸다.
한편, 병원에 도착한 찬주 의료팀은 분주했다. 첫 환자는 혈압약을 처방해 주었다. 처방전을 쓰고, 상담내용을 노트북에 기록했다. 그의 눈에 이곳에 들고 온 2개의 앰플이 보였다. 황금색 액체는 보기에도 신기해 보였다. 그도 실제품을 처음 받아서 사용해 보는 것이다. 저게 뭐라고 주사약 값이 저렇게 비싼지.
약값이 비싸서인지 아직 언론에서는 제대로 떠들지도 않았다. 저게 정말 효능을 보일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가 잠깐 다른 생각을 하는 사이에 진료실에 다음 환자가 지팡이를 짚으면서 천천히 걸어 들어와서 둥근 가죽의자에 앉았다. 모니터의 이름을 보니 김복순씨였다. 환자의 나이는 88세다. 머리는 허옇고, 왼쪽 눈에는 백내장이 진행되었는지 망막이 불투명해 보였다. 얼굴에는 주름과 검버섯이 자글자글 마치 장기간 방치한 오렌지위에 핀 곰팡이처럼 번져 있었다.
찬주는 어제 만난 친구와의 해후 자리에서 과음한 탓에 머리가 띵했다. 타이레놀 생각이 났지만 참았다. 매번 두통약으로 해결해 버릇은 몸의 자생력에 좋지 않다는 신념 덕분이었다.
“오늘 맞으실 주사는 최근에 나온 신약에요. F사 제품이고요, 맞고 나면 졸립고 오늘 하루는 꽤나나 피곤하실겁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맞아보신 분들은 다 회춘하는 느낌이 확실히 든다고 합니다.”
그는 환자를 향해서 억지 미소를 지었다. 아직 진료를 마쳤다는 말도 안했는데 김복순 환자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그녀의 입에서는 ‘끄응’하는 신음소리가 나왔다. 아마도 허리나 무릎의 관절의 고통이 내는 소리를 의식도 못하고 내는 것일터였다.
“주사실로 가서 준비해주세요.”
김 간호사를 향해서 말했다. 주사실에서 어르신의 엎드린 자세로 윗쪽 엉덩이 끝만 살짝 바지를 내린 상태였다. 머리맡에는 은색 알미늄 사각접시 위에 엔도막 주사액이 든 앰플과 작은 주사기가 있었다. 아프지 않게 주사 놓을 위치 근처를 탁탁 치면서 익숙하게 주사를 놓았다. 찰랑거리는 투명한 주사액이 어르신의 몸에 주입되었다. 알코올 솜을 놓고 간호사가 내민 반창고를 바로 붙였다.
“아이고, 궁뎅이 뻐근하여라.”
“어르신, 오늘은 끝났고요. 다음 달에 뵐게요. 여기 좀 문지르고 나가세요. 안 그러시면 멍이 크게 들어요.”
김복순 할머니는 꽃무늬 몸빼 위로 연신 손바닥을 대고 둥글게 비볐다. 그녀의 손등은 내용물이 빠진 비닐처럼 앙상하고 쪼글쪼글했다. 찬주는 부디 새로운 주사액이 시들어가는 그녀의 몸에 생명수가 되어 주길 바랬다. 아직 그도 주사의 기적을 백 프로 신뢰하진 않았다. 저번에 이 곳에서 주사를 맞고 퇴원한 사람은 외부 병원에서 맞고 왔다는 말을 들었다.
“다음은 누구지?” 그의 시선이 간호사를 향했다.
“박사님, 다음 환자분은 주사를 못 맞는다고 합니다.”
간호원이 핸드폰을 보면서 말했다.
“어? 왜요? 이거 비싼 주산데.”
“아, 그게 어제 주무시다가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아, 저런. 그럼 이건 어떻게 하나.”
그의 시선이 엔도막 앰플을 향했다. 엔도막 주사의 가격은 130만원이다. 쉽게 서민들이 맞기엔 부담스런 금액이었다. 더구나 아직 사치품으로 분류가 되어서 의료보험 적용도 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이번에 맞는 환자도 단 두 명이었다. 그런데 한 대는 김복순 환자에게 방금 투여했고, 나머지 한 대는 정작 맞을 사람이 돌아가신 거다. 연세가 어느정도 되시고 지병도 있는 노인분들은 당장 어제까지 잘 계시다가도 다음날 아침에 불귀의 객이 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병원으로 가면 매출 취소 좀 해 주세요.” 그가 간호사에 말했다.
찬주는 오기로 한 환자의 파일을 눌렀다. 이름이 떴다.
“김 간호사님, 이 분의 명복을 비는 마음으로 잠시 묵념 좀 할게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하고 마음속으로 잠시 눈을 감았다. 약 10초간의 묵념이었다. 요양원 왕진을 다니다보니 그만의 어르신에 대한 습관이었다. 이미 가버린 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같은 것이다.
“자, 그럼 다음 요양원으로 또 이동합시다.”
그의 말에 김 간호사가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함께 온 사무장은 입구에 서서 진작에 짐을 다 챙겨놓았다는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오래 일하다보니 손발이 착착 맞았다.
한 달 후
현정씨는 깜빡하고 일주일간 전화 통화를 못했다는 생각이 났다. 경부고속도로를 타자마자 퇴근하는 길이 꽉 막혀 있었다. 차량들의 뒤에서 붉은 브레이크등이 연신 들어오고 있었다. 최소 30분은 이 상태로 갈 터였다. 마침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다. 친정엄마라고 이름 밑으로 물결무늬가 번지면서 따르릉 소리를 냈다.
친정엄마 전화를 할 때는 면회를 오라거나, 몸이 너무 아프다거나 하는 둘 중 하나였다. 그런데 요즘 전화 통화를 할 때마다 엄마는 목소리에 생기가 넘쳤다. 그래서 걱정이 덜 되고 해서 한 동안 통화를 못했었다.
“엄마, 잘 지내고 있어요? 내가 바빠서 전화를 못했네요.”
“현정이냐? 말도마라, 얘. 너 그나저나 언제 병원 한 번 와야겠다.”
“왜요? 무슨 일 있어요? 또 어디아파? “
“아니, 나 퇴원해도 되겠어.”
현정씨는 램프에서 나와서 차량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느라 좌측 깜빡이를 켰는데 벌써 3대째나 바싹 붙어서 들어갈 틈을 주지 않았다. “무슨 퇴원?”이라고 말하면서 약간의 틈이 보인 쪽으로 차량을 밀어넣었다. 뒷차량이 빵하는 소리를 냈지만 모른척하고 차를 넣고 깜빡이를 켰다. 미안하다 미안해. 나도 집에서 기다리는 얘들이 있다. 좀 가자.
“주사말여. 그것 맞고 하루는 시름시름 앓았어. 아 이렇게 죽는구나 했는데 아니 다음날 부터 몸이 가쁜한거여. 암튼 시간내서 함 와서 봐봐.“
“엄마, 몸이 좋다니까 듣기 좋네, 그래. 알았어. 내가 한번 면회갈게요. 수고요.”
하지만 현정은 아직 후속타로 다가올 일에 대해서는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현정씨는 전화기를 보조석쪽으로 던졌다. 아효, 노친네 정말 조금 아프면 아프다고 난리고, 조금 좋으면 좋다고 난리였다. 그래도 오늘 만난 고객은 매너가 좋았다. 역시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고가의 의료보험을 가입하는데도 적극적이었다. 그래, 곡간에서 인심난다고, 내가 살만해야 여유가 있는 법이지. 세명이나 의료보험 가입을 했다. 일단 오늘 받은 계약으로 이번달은 초반임에도 실적에 대한 압박에서 벗어났다.
차량은 차선을 타자 서서히 움직였다. 다들 인공지능 AI 차량으로 편하게 운전하는데, 자신은 아직 차량가격이 비싸서 엄두도 못낸다. 운전석을 보면 그 차량이 인공지능으로 움직이는지 사람이 운전하는지 바로 알 수 있다. 물론 겉만 봐도 안다고 하지만 가끔은 정말 낡은 차량인데 인공지능이 운전하는 경우도 봤다. 소프트웨어를 개조해서 탑재하면 된다고 하는데 차량에는 문외한이라 무슨 말인지 그녀는 잘 몰랐다.
그래도 오토드라이빙 기능 버튼만으로 고속도로에서는 알아서 자동 운전이 되니 그것이면 충분했다. 그녀도 이제 경부고속도로에 완전 안착한 것을 보고 오토 버튼을 눌렀다.
보조석에 놓인 핸드백에 손을 뻗었다. 못 챙겨 먹은 알약 하나를 까서 차 안에 둔 생수와 함께 들이켰다. 그녀의 몸매를 유지해 주는 다이어트약이다. 혈압과 당뇨 그리고 다이어트 성분까지 없애주는 기억의 다이어트 약은 위고신을 바로 대체했다.
차 안에 놓인 룸밀러로 사분의 일 밖에 보이지 않는 얼굴을 이리저리 살폈다. 이제 오십 초반이지만 오늘 고객은 삼십대 후반으로 보인다면서 웃었다. 하긴 몸매가 아직 쓸만했다. 살도 안쪘고, 나올때 나오고 들어갈때 들어가니.
물론 뻔한 농담이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실적도 좋고, 이미 집으로 차량이 향하는 것 만으로 저녁 식사가 준비되고 있을터였다. 단축번호 1번을 눌렀다.
“네, 현정 주인님.”
“어, 나 지금 집 가니까 오늘은 된장찌게에 계란말이 좀 해줘. 나물 반찬은 기존에 있던 것 하고 랜덤으로 서너개.”
“네 알겠습니다.”
6개월 후
토요일 아침이었다.
남편은 어제 회식이 있어서 술 한잔 하고 아직 자는 중이다.
‘띵동’
“누구세요?”
벨을 확인하려고 벽의 LED 화면을 향했다. 어라 누구지?
올 사람이 없는데.
“여기 김현정 씨네 댁이죠?”
젊은 여자의 목소리였다.
요즘에도 ‘도’를 아십니까가 아파트로 돌아다닌다.
“네, 그런데요?”
화면에 비췬 여자는 하얀 블라우스에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있었다.
“저.....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여자가 ‘요’란 끝 말에 굴곡을 주어 장난치듯이 말했다.
목소리가 허스키하고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목소리였다.
뭐야? 이건.....혹시.
현정 씨가 문을 살짝 열었다.
그녀의 눈에 들어온 여자는 재수없게 큰 썬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큰 키에 늘씬한 다리 청치마에 배꼽이 살짝 보이는 흰색 브라우스까지. 여자는 많아야 이십대 후반에서 삼십대 초반 정도로 되어 보였다. 미국에 있는 시누이가 갑자기 온 것인가.
“누구신데....요?”
“저 모르시겠어요?”
여자가 고개를 숙여서 선글라스를 코 아래로 내려서 안경 너머로 현정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미소를 지었다. 현정이 의아한 표정으로 눈을 껌뻑이자 이젠 모자를 벗었다. 여자의 머리칼은 풍성하고 어깨를 살짝 덮은 웨이브진 머리칼은 윤기가 흘렀다.
“모르겠는데요.”
현정의 표정이 굳었다. 남편이 아는 사람인가.
괜히 익숙한 목소리에 문을 열었나.
다음 말에 그녀는 깜짝 놀랐다.
“얘, 넌 어째 이 에미도 몰라보냐?”
그 말투는 딱 자신의 엄마였다.
“.....어.....엄마? 정말 엄마야?”
현정은 눈을 크게 떴다. 그녀의 눈 앞에 여자는 자신보다 어려보였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인지 머리속이 순간 복잡했다. 20대 후반처럼 보이는 여자가 엄마라고?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현정의 눈이 김복순 여자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순식간에 훑었다. 뭐야. 이거. 무슨 로봇 시술이라도 받은건가.
“그래, 비켜봐 좀 들어가게.”
김복순 여사는 멍 때리고 있는 현정을 밀면서 신발을 벗고 성큼성큼 거실로 향했다.
거실 소파에 앉아마자 시원한 물부터 찾았다. 로봇이 물을 가지고 왔다.
크리스탈 유리잔에 든 물을 벌컥벌컥 소리를 내면서 마셨다.
“아, 시원하다. “
그녀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서 주방으로 가서 냉장고문부터 열었다.
그리고 사과를 하나 꺼내서는 흐르는 물에 씻었다.
옆에 로봇이 서 있어서 그냥 시켜도 되는데.
현아는 자신의 친정엄마 와서 이것저것 문을 열어보고 자신의 집인양 막 열어보는 행동 자체가 싫었다.
하지만 굳이 마음을 입 밖으로 꺼내고 싶지도 않았다.
“이...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거실 한 가운데서 서 있던 현정이 놀라면서 외쳤다.
“뭐가 어떻게 돼, 그 ‘불사의 주사’를 맞고는 이렇게 됐지.”
김복순 씨는 챙 넓은 모자를 식탁에 올려 놓고 사과를 집어서 그대로 깨물었다.
‘아작아작’ 입을 다문채로 사과를
‘아삭’하는 소리와 함께 사과에 튼튼한 치아 자국이 남았다.
“기존 이빨도 다 그냥 빠지고 새 이빨이 나더라. 주사 때문에 원래는 1년이라고 하는데, 한 5개월차가 되니까 잇몸까지 튼튼해 져 부렀어.”
그녀가 식탁의자에 앉아서 다리를 꼬았다. 치마가 밀리면서 허연 허벅지가 보였다. 무슨 스타킹도 신지 않고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고는 딸네집을 저렇게 빚받으러 온 채권자 처럼 당당하게 앉아 있었다.
아마 상황을 모르는 사람이 옆에서보면 영락없는 20대 중후반의 여자 같았다. 오히려 방금 집안으로 들어온 김복순 씨보다 놀라서 서 있는 현아씨가 더 언니같아 보이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그나저나 김서방은 어디 갔어?”
“안방에서 자고 있죠. 토요일이니까. 어제 술 먹고 늦게 들어와서 완전 뻗어서 자요.”
그녀의 눈빛이 믿을 수 없는 현실앞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불과 6개월 전까지만 해도 오늘 내일 하시던 양반이 완전히 튼튼하고 매력있는 여자가 되어서 나타났는데 마냥 기뻐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나이든 엄마는 지금 환골탈퇴를 넘어서서 자신보다 더 어려보였다.
탱탱한 허리라인은 잘록하게 들어가고, 웃을 때는 치아도 하얗고 가지런하게 보여서 같은 여자가 보기에 샘이 날 정도였다. 가까이서 자세히 보니 많아야 이십대 후반 정도로 밖에 보이질 않았다.
안방 문이 열렸다. 남편이 츄리닝에 난닝구를 배 중간까지 올리고는 배를 긁적이면서 나왔다.
머리는 온통 까치집이 져 있다.
“어, 장모님 목소리가 들리던데...”
눈도 채 뜨지 못하고 게슴치레한 눈을 비비면서 나타났다.
그리고 시선이 식탁에 미니스커트를 입고 허연 허벅지를 드러내고 떡하니 앉아 있는 여자를 향했다.
가만히 묘령의 여자 모습을 한 장모를 바라보고 있던 그가 눈을 크게 떴다.
그의 눈이 점점 커졌다.
“어..엇, 누...누구세요?”
남편의 눈이 동그래져서 자신의 앞에 선 여자를 자세히 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장모를 내려다보고 서 있는 아내와 시선이 부딛쳤다.
이게 무슨 상황이냐는 듯이.
“뭘 그리 놀라나,사위, 자네 장모 김복순 여사일쎄.”
허스키한 목소리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현정씨의 친정엄마가 사위를 보면서 환한 미소를 지었다. 입술에 붉은 립스틱까지 칠하고 온 엄마의 새로워진 모습은 아무리 봐도 적응이 되질 않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현정은 머리를 짚었다.
불사의 주사, 이것 때문에, 전국적으로 난리가 나게 생겼다.
아니, 전세계적일려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