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남자의 성공이야기
점백은 너무 가난했다. 그래서 매일 새벽같이 골방에 엎드려서 기도를 했다. 제발 부자가 되게 해 달라고 소망하고 또 소망했다. 어느 날 그에게 뿔 달린 신사가 나타났다.
“좋아, 내가 들어주지. 도대체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가 없어.”
“누구신가요?”
“말해봐야 넌 이해도 못할 거야. 그건 중요하지도 않고. 얼마면 되겠나?”
“흠.... 한 1억 즈음요.”
“허허, 꿈도 크군. 큰 금액은 아니지만 공짜로 줄 수는 없고 대신 자네도 뭔가를 내놓아야지?”
“영혼 같은 것이라면 꿈도 꾸지 마세요. 이미 소문이 다 났으니까요.”
“그래, 이제 인간들도 똑똑해져서 더 이상 영혼거래는 힘들다고 봐야지. 대신 영혼을 원하시는 않을 테니 자네도 뭔가 내놓아야 거래가 성립된다네. 공짜 점심은 없으니까.”
“핸드폰 같은 것도 받나요?”
“핸드폰도 받아 줄 수 있지, 뭐 한 10만 원? 동등하게 성립이 되려면 신체 중에 일부를 내놓아야 해.”
“신체의 일부를 팔고 나면 몸을 제대로 못쓰잖아요.”
“그렇지, 정확히는 내 것이니까.”
“만약 제가 왼팔을 팔면, 바로 잘라갈 건가요?”
“흠, 그래야지. 돈 주고 산 것이니까.” 신사가 시니컬하게 답했다.
점백은 신사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뭔가 틈이 있을 것 같았다. 이렇게 잘 얘기를 한 다는 것은 일단 우리들에게 친화적인 것이다. 그건 잘 활용만 할 수 있다면 하나의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시 되살 수가 있나요?” 그가 다시 물었다.
“한번 내놓은 것은 되살 수는 없지. 여기가 무슨 전당포인줄 아는가?”
“떼면 아프게 떼실 건가요?”
“전혀, 흔적도 없이 뗄 수가 있다네.”
“그럼 거의 세계 최고 수준의 의사이신데요.”
“우리 쪽 능력은 인간들이 생각하는 상상 이상이니까.”
“그럼, 팔기 전에 어떤 식으로 상처 없이 가능한지 테스트 좀 해 봐도 될까요?”
“뭐, 얼마든지.”
“이마에 흉터가 있는데 한번 없어 봐주실래요?”
점백이가 어릴 적 다친 이마의 상처를 들이밀었다.
신사의 손이 남자의 이마 쪽을 톡 하고 만지고 지나갔다. 그리고는 말했다.
“거울을 보게나.”
점백이 거울을 보니 깜쪽같이 흉터가 사라져 있었다.
“와 신기하네요.”
“허허, 뭐든 가능하다니까. 겨우 이딴 일로.”
“그럼 코를 조금 높여봐 주실래요?”
“얼마큼?”
“흠.... 탤런트 장동건만큼이나 뭐 비슷하게요.”
신사의 손이 코를 살짝 건드렸다.
정말 통증이 하나도 없이 코가 높아졌다.
거울을 보니 코가 오뚝해지면서 인상이 더 뚜렷해 보였다.
“와, 정말 대단한데요? 그런데, 아직 절개는 테스트를 안 해봐서 잘 모르겠네요.”
“해 봐 뭐든지.”
코가 확 갑자기 올라오면서 미간 쪽이 좀 이상해진 느낌이 들었다.
“눈을 한 번 쌍꺼풀로 만들어 볼 수 있나요?”
“허허, 이런 건 일도 아니라니까.”
신사의 손바닥이 눈을 덮었다.
그러자, 양쪽 눈에 선명한 쌍꺼풀이 생겼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이렇게 해 놓고 그쪽 분 사라지면 다시 원상복구 되고 뭐 이런 사기 아닌가요?”
“허허, 이 사람이 속고만 살아왔나. 걱정 말게나. 자네 생명 다할 때까지는 이대로 유지가 될 터이니. 이제 내 실력을 알았으면 이제 테스트는 그만하고 어느 부위를 팔지 말해보게나. 전혀 아프지 않게 떼 갈 테니까.”
“흠, 살을 절개하고 붙이는 것은 알겠어요. 하지만 코는 연골을 뭐 높이는 거고요. 하지만, 어깨뼈나 팔꿈치 뼈를 잘라내는 것은 차원이 다른 부분이죠. 정말 실력이 되는지 보려면 제 키를 한번 키워보세요. 그럼 저도 실력을 인정하죠.”
“허허, 그래, 지금 키가 170인데 한 180 정도면 되겠는가?”
“5센티만 더 쓰세요.”
“좋아. 테스트로 아주 뽕을 뽑는구먼, 어디 보자.”
신사는 손바닥을 펼쳐서 점백이 등에 붙이고는 주문을 외웠다.
“아야....”
등에서 나는 뜨거운 통증에 점백이가 화들짝 놀라서 한걸음을 앞으로 디뎠다.
“아이씨, 아이, 아파. 안 아프다면서요 !!”
점백의 목소리에서 짜증 섞인 목소리가 크게 튀어나왔다.
“허허, 이거 미안하이, 워낙 키를 갑자기 15센티나 높이니 자네의 등뼈들이 놀랐나 봐. 이건 약간 복잡해서 뼈도 좀 키우고 관절도 사이를 넓혀야 하거든, 아마 그 과정이 갑자기 일어나니 몸에서 놀랐을 거야. 오늘 하루는 좀 뻐근해도 하루 자고 나면 완전히 낫는다고. 가만히 있지 말고 몸을 좀 움직여 보게나, 스트레칭도 좀 하고 말일세.”
점백은 아까 살짝 올려보던 신사가 이제는 거의 동등한 수평적인 눈높이에서 보인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이제 계약을 할 단계였다. 테스트를 잘 마쳤으니, 아무것도 팔지 않겠다고 말한다면 아마도 이 신사는 모든 것을 원상복구 시켜버릴지도 모른다. 상대가 스스로 포기하게 하고 떠나게 만들어야 한다.
“좋아요, 실력이 좋으시네요. 믿고 거래해도 되겠어요.”
“그래, 잘 생각했어. 어디를 팔 생각인가?”
“흠.... 아무래도 외부신체는 눈에 보여서 좀 그러니 내부 장기를 팔고 싶은데요. 그것도 괜찮겠지요?”
“내부도 괜찮지. 콩팥도 좋고, 심장을 아예 일정기간 정하고 담보 맡기는 것도 된다네.”
“아뇨, 저는 맹장을 팔고 싶어요?”
“맹장?”
“왜 안 되나요?”
“흠...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신사가 눈을 가늘게 뜨고는 고개를 아래위로 천천히 움직였다. 그 모습은 마치 점백의 몸을 무슨 MRI나 CT를 기계처럼 관통해서 보는 듯했다. 그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맹장을 보니, 저건 상태가 안 좋아서 어차피 떼야하는 상태까지 왔다. 앞으로 길면 6개월 후면 저 맹장이 부어서 터질 예정인 듯 보였다. 물론 자신이 그 시점까지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맹장으로 계약할게요.”
신사의 표정을 보다가 점백은 얼른 계약 의사를 밝혔다. 뭔가 표정이 좋지 않은 걸 보니 맹장염이나 그전 단계인 듯싶었다.
신사의 손이 점백의 배에 닿았다. 이내 손에 곯은 맹장이 나왔다. 금세 냉동처리를 한 것인지 신사의 손바닥에 올라온 맹장은 꽁꽁 얼어 있었다.
“또 없나?”
“네, 일단은요.”
“약속대로 1억 원을 보내지.”
“어떻게 보내는데요?”
신사가 사라졌다. 점백이 그 주에 즉석복권을 사러 가는데 주인이 2천 원짜리 2장을 뜯어 주었다. 즉석에서 긁었는데 1등에 당첨이 되었다. 당첨금이 1억짜리 복권이었다.
맹장을 떼고 받은 1억은 나쁘지 않았다.
통장에 돈이 있고, 외모도 환골탈퇴했다. 가을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와서 나무에 겨우 매달려 있는 바싹 마른 누런 낙엽들을 비내리듯이 길가에 흩뿌려주었다.
기분이 좋은 정오였다.
점백이가 종로의 가로수 아래를 느긋한 마음으로걷고 있는데, 누군가 다가와서 명함을 주었다.
“외모가 훤칠 하신 것이 일반인 같지 않네요. 과거 장동건 씨를 연상케 합니다. 배우 한 번 해 보실 생각 없으신가요?”
그렇게 점백이는 연예계 데뷔를 했다. 시원시원한 선이 굵은 연기를 했고, 신사도 멋지게 속여먹은 특유의 능구렁이 같은 연기로 그해 신인상 후보에 올랐다. 연말 시상대는 실시간으로 전국으로 방영되는 자리였다. 무대가 한참 꾸려지고 있는 곳 제일 구석에 사람들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두 명의 신사가 서 있었다.
두 명의 뿔 달린 신사는 시상식이 벌어지는 모습을 팔짱을 끼고 보고 있었다. “넌 내가 그렇게 말했는데도, 또 당한 거야.” 한 명의 신사가 다른 신사에게 말했다.
“반장님, 저는 매뉴얼대로 했는데요. 일단 보여는 줘야 하니까요.”
“다시 말하지만, 여긴 매운 한국인들이라고. 절대 정신줄 놓으면 안돼. 에이, 참 너같은 멍청이들 때문에 인간과의 거래 매뉴얼 또 업데이트 해야겠다. 가자 철수. ”
둘은 사라졌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