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들이는 즐거움
회사선배가 자꾸만 밥을 산다. 오늘도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겠다는 나를 끌고 가 점심이라고 하기엔 거한 식사를 대접했다. 이번엔 기어코 내가 사겠다며 계산대로 향하는 나에게 선배는 핀잔 아닌 핀잔을 주었다.
"그냥 좀 받을 줄도 알아. 내가 좋아서 사는 거야. 그리고 내가 먹고 싶다고 했잖아."
그러면서 지갑을 여는 선배의 얼굴을 보니 서로 내겠다고 티격태격하는 것은 이미 무의미한 듯싶었다. 베풂의 즐거움에 한껏 빠진, 그 생기 넘치는 낯빛에 기가 눌렸다고나 할까... 이번에도 커피를 사는 것으로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야 했다.
이런 상황이 영 어색하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로 얻어먹고 다니는 일이 거의 없었다. 오히려 밥이든 커피든 먼저 잘 사는 편이다. 누군가에게 베풀 수 있다는 것 자체로도 즐거운 일이니까. 그러나 이 선배처럼 베풀면서 즐거워만 했던 것은 아니다. 괜히 남에게 신세 지고 싶지 않은 마음, 그리고 내가 먼저 사면 다음번에 상대가 낼 것이라는 기대가 깔려있었다. 매번 얻어먹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마음의 거리를 두었고, 자연스럽게 돌아가며 지갑을 여는 사람들은 나와 결이 맞다는 생각에 더 소중하게 여겼다.
얼마나 계산적인가. 베푼다고 생각하면서 사실은 남에게 마음의 빚을 지워왔던 것이다. 많은 이들의 호의 또한 빚으로 여기고 받아들이지 못했다. 베풂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니, 주면서도 받으면서도 진정 즐겁지 못했던 것이다.
오늘 선배를 보며 조금 다른 생각을 해보았다. 그가 베풂의 즐거움을 한껏 누릴 수 있도록 감사히, 그리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 또한 미덕이 아닐까? 뻔뻔한 생각일지 모르겠으나 선배에게 베풂의 즐거움을 선사했다고 생각하니, 부담스러운 마음이 가시고 함께 하는 시간이 더 즐거웠다. 아니, 누군가가 나에게 이렇게 마음을 써주는 데 즐겁지 않다면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못난 마음의 빗장을 풀고, 받는 즐거움도 누려보기로 했다.
그리고 베풀 때에는 그저 베풂의 즐거움을 만끽하는데서 끝내는 것으로.
굳이 바라지 않아도, 그렇게 나눈 마음은 돌고 돌며 살을 찌울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