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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착한소식 Jan 26. 2022

4화, 알사탕의 마법이 풀린 아이

아빠가 육아를 만났을 때 보이는 16가지 이야기

문이 열리고 할아버지의 오른손에 검정봉다리가 들려있다.

"와! 아이스크림이다"

들뜬목소리로 할아버지에게 달려가는 첫째다. 둘째도 연이어 달려간다. 나는 빛의 속도로 중간에 끼어들어 아이스크림을 가로채며 말한다.


"얘들아 아이스크림은 밥 먹고 먹어야지"

 아이들의 한숨소리가 크게 들린다. '좀 줘도 되지 않느냐'는 아버님의 소리도 함께 들려온다. 하지만 지금 이걸 먹으면 식사시간이 30분에서 1시간으로 연장된다는 걸 알고 있다.


 토끼는 거북이와의 경주에서 잠깐의 잠 때문에 우승하지 못한다. 토끼는 몰라서 우승하지 못하지만 나는 알고 있는데 지고 싶지는 않다. 싫은 소리를 좀 듣더라도 우승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백희나의 '알사탕'을 재미있게 본 적이 있다.  마법의 알사탕을 통해서 동동이는 늙은 개의 마음을 읽는다. 쉴 새 없이 잔소리를 퍼붓는 아빠의 속마음을 알게 된다. 하늘나라의 보고 싶은 할머니의 반가운 소식도 들을 수 있다. 우리 집에도 이런 알사탕이 있었다.  동동이의 알사탕과 다른 점은 먹으면 안 들리는 마법의 사탕이다.


 첫째가 4살 때의 일이다. 전쟁과도 같은 아침을 마친다. 몸집보다 큰 어린이집 가방을 메고 등원을 한다. 아이의 입이 삐죽티어나온다. 가기 싫은 티가 입가뿐만 아니라 온몸에서 나온다. 가방 안에는 든 것도 없는데 엄청 무거워진다. 나는 고심 끝에 아빠의 잔꾀를 내어본다.

 집에서 출발할 때 알사탕을 하나 주기로 한다. 이걸로 모든 게 해결되었다. 기뻤다. 하지만 알사탕이 목적지보다 빨리 녹아버릴 때가 있다. 실패다. 그럴 때면 어린이집 앞에서 비워진 입안의 공허함을 알고 다시금 가기 싫다는 투정을 부린다. 환장한다. 그래서 머리를 다시 써본다.


 "지금 사탕을 주지만 어린이집 가기 전에 먹기로 약속"

 손에 꼭 쥔 알사탕은 아이의 마음을 달래준다. 그렇다 성공적이다. 출발 전 먹이는 게 아니라 도착 바로 직전 먹이는 방법을 썼다. 아빠의 잔꾀는 끝이 없다. 그리고 거의 도착할 즈음 아빠인 나는 선심 쓰듯 알사탕을 아이의 입속으로 넣어준다. 성공이다. 하지만 어느 날 방심을 했다.  


"드드득 드드득"

아이가 사탕을 와그작와그작 깨물어먹는다. 실패다. 다시 공허함을 느끼는 아이다. 또 가방이 무거워진다. 어떤 날은 들어가기 싫다고 30분간 어린이 집 밖에서 실랑이를 벌이기도 한다. 오며 가며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우리를 보는 것만 같다. 마음속에는 어떻게라도 아이가 어린이집을 들어가면 좋겠다는 생각뿐이다.


 바쁜 육아전쟁을 아침저녁으로 치르면 본질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이 없다. 여긴 어디고 나는 누구인지 흔들린다. 멘털을 잡기에도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군대라면 탈영하고 싶은 맘이 들지만 현실은 아니다. 이등병 두 명이 있다. 하지만 갈굴 수도 없다. 오로지 사랑으로만 대해야 한다. 말지지리도 안듯는 관심사병병들이다. 알사탕이라는 작전을 써서 전략을 짜보지만 와드득 와드득 아이의 입안에서 부서지고 말았다.  


 이때까지도 내가 살고자 바빠서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 못 했다. 하지만 알사탕의 비밀을 머지않아 알게 되는 계기가 있었다. 나는 아이들이 밥을 안 먹는 게 싫었다. 그래서 밥 먹기 전에 간식을 점점 줄여나갔다.

 에이스 비스킷을 한통씩 먹던걸 한 봉지로 바꾸었다. 한 봉지씩 먹던걸 한 조각으로 바꾸었다. 한 조각씩 먹던걸 반 조각으로 바꾸었다. 아이들이 싫어할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아이들은 먹을 수 있다는 것에 행복해했다. 멘토스도 한알이 칼로 잘라서 반알로 바뀌었다.

 그 당시 나의 가족들은 그런 내 모습에 치를 떨었다. 잔인 하 다했다. 하지만 간식의 양과 밥 먹이는 시간의 양은 정비례했다. 그래서 나는 줄이는 걸 포기할 수 없었다. 그렇게 아이들의 간식이 실오라기만큼 줄어갈 즈음이었다.  


 등원할 때 주던 알사탕을 안 주기로 해보았다. 처음에는 저항이 거셌다. 하지만 안 주었던 날 아이가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어린이집에서 부끄러워 쉬를 참았다고 말해주었다. 어제저녁에 아빠가 책을 두권읽어주면 기뻤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동생만 이뻐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빴다고 이야기했다. 아빠가 잔소리할 때 목소리 크게 하면 마음이 아프고 무섭다고 이야기했다. 아빠가 화를 자신에게 건네주는 게 싫다고 이야기했다.


??? 화를 건네주다니


내가 지금 잘못들은 건가? 이게 5살 아이가 할 표현인가? 아빠가 화를 내고 그 화를 자신에게 전달해주는 게 싫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그동안 알사탕을 먹고 자신이 할 수 있었던 이야기를 달달함에 숨겨왔던 것이다. 당연하다 맛있는 걸 느끼느라 행복한데 부모와 이야기할 시간이 어디 있나? 재미있는 TV를 보느라 속마음을 털어놓을 시간이 어디 있느냔 말이다. 난 그것도 모르고 아이가 할 수 있는 마법의 언어를 알사탕으로 막고 있었던 거다.

 그로부터 서너 달 시간이 많이 흘렀다. 지금은 우리 딸 등원을 너무나도 잘한다. 나와하는 대화시간도 길어졌다. 마법이 사라지자 아이는 나에게 보다 많은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오늘도 역시나 할아버지의 오른손에는 봉다리가 들려있다.

"와 ~! 아이스크림이다. "라고 말하며 달려가는 첫째와 둘째다.

나는 말리지 않는다. 그렇게 할아버지와 손녀들이 강강술래 춤추도록 나비 둔다.


 할아버지는 아니, 나의 아버지는 저렇게라도 안 하면 자신에게 달려오지 않을 손녀들을 한번 안고 싶었나 보다. 사실 그동안 내가 알사탕을 먹고 있었나 보다. 본질을 보려고 노력하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 본글은 육아방식 추천이 아닙니다. 육아방식 적용의 몫은 본인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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