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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착한소식 Jan 30. 2022

5화, '화'를 주는 아빠, '감정 걸음마' 어른

아빠가 육아를 만났을 때 보이는 16가지 이야기

 아까처럼 길게 말을 해야 하는데 목이 메어 이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거북이는 간을 용왕에게 바치기 위해 토끼를 데려왔다.

  "육지에 저의 간을 두고 왔어요." 

하지만 토끼의 재치에 당하게 된다. 육지로 다시 토끼를 데려 나온 거북이는 마냥 토끼를 기다린다. 하지만 토끼는 돌아오지 않는다. 기다림 끝에 거북이는 아주 큰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 오늘 내가 기다림 끝에 아이와 함께 배운 보석 같은 눈물 이야기를 추억해본다.


 회사에서 칼퇴근을 위해서는 시간이 생명이다. 연차가 쌓일수록 요령이 늘어간다. 이 모든 게 칼퇴근을 위한 생존본능이다.

 육아 퇴근을 보장받기 위해서도 가장 빠르게 효율적으로 해야 한다. 하지만 나만 빠르게 움직인다고 되는 것이 아닌 게 함정이다. 아이는 어른보다 절대적으로 느릴 수밖에 없다. 식사시간 아이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려 줘야 한다. 아이가 잘못을 했을 때도 훈육과 동시에 울음을 그칠 때까지 기다려 줘야 한다. 연예시절 연인을 기다렸던 몇 시간을 기다린 적이 있다. 그에 비하면 시간은 짧지만 육아의 기다림은 이상하게 길게 느껴진다. 육아세상에서 또 어떤 기다림이 있을까? 


 나는 육아휴직을 하고 두 딸을 돌보는 40대 아빠이다. 밥을 늦게 먹는 아이에게 각 잡고 훈육을 한 적이 있다. 그때는 몰랐다. 그 뒷감당을 고스란히 내가 하게 될 줄은 말이다. 보통 이런 말을 주로 한다.

 "제자리에 앉아서 먹어야지", "스~~ 읍", "밥 먹을 때 집중"

 결국 밥 먹을 때 아이의 감정을 상하게 하면 잠자는 시간까지 밀리게 되어 오히려 나에게 돌아온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이득 될게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하려다가 되려 육아 퇴근이 늦어진다. 여기는 회사가 아니다. 그리고 신기하게 연차가 쌓여갈수록 더 힘들어진다. 


 오후 4시, 아이들 하원 시간이 다가온다. 집안은 청소가 다 되어있다. 계란과 김, 돈가스로 저녁거리가 준비되어있다. 어린이집에 도착해보니 하원하려는 부모님들로 붐빈다. 1층에서 인터폰으로  호실을 누르고 아이 이름을 말하고 기다리면 10분 안에 선생님과 함께 내려온다. 운이 좋게도 두 딸 모두 한 어린이집에 다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옆에 놀이터가 있다. 그곳은 모든 아이들이 모이는 곳이다. 30분이라도 안 놀고 가면 안 되는 아이들이다. 한참을 놀고 슬슬 집에 갈 시간이 다가온다. 바로 가자고 하면 안 듣는다는 걸 경험으로 알기에 미리 언질을 준다. 


"이제 5분 뒤에 갈 거야 알아둬" 

아이는 대답이 없다. 평소라면 '응'정도는 해줄 텐데 오늘은 더 놀고 싶은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분 뒤에 말을 건다. 더 놀고 싶은지 아이는 입이 대빨나왔다. 하지만 지금 집에 안 가면 밥시간이 늦고 잠자는 시간도 밀린다. 나는 단호하게 말하고 두 딸을 집으로 대려 온다. 집으로 가는 길 내내 아이가 투정을 부린다. 평소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와 동시에 평소보다 더 많은 안 좋은 감정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왔는데 첫째가 뭔가 불만이 있는 모양이다. 나는 아이에게 말한다. 

"손 씻고! 옷 벗은 거 제자리에 두고!"라고 말한다.

 하지만 아이는 오자마자 장난감을 만진다. 아이에게 요구하는 나의 톤이 점점 올라간다. 마지막에는 급기야 위협적 톤으로 바뀐다. 나도 처음부터 위협적이지는 않았다고 핑계를 대어 본다. 처음에는 책에서 배운 대로 친절하고 단호하게 말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나도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사람인 나도 감정이 서서히 올라온 것이다. 그렇게 나는 욱하고야 말았다. 뭐 자주 있는 일이다.


 "어어엉... 어어엉. 으아앙" 

아이는 아빠의 무서운 소리에 참았던 울음을 터뜨린다.  생각해보니 아이에게 너무 크게 명령조로 말한 것 같다. 이 와중에 그 옆에서 둘째는 해맑다. 나는 순간 후회를 해본다. 울게까지 할 일은 아니었다고 말이다. 평소보다 울음이 좀쌔다는것을 느꼈다. 놀이터에서 더 많이 놀지 못한 이자까지 합쳐서 우는 느낌이다. 마음이 약해져 간다. 아이를 달래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가간다. 부드러운 어조로 말을 해야지 다짐하고 바로 앞까지 간다.


아이와 눈높이를 맞춘 나를 살짝 올려보며 아이가 먼저 말을 건넨다.

"아빠는 왜 나한테 무섭게 말해! 왜 모든 걸 아빠 마음대로 해!"

억울하다는 듯이 울음과 함께 아이는 말한다. 

나도 최대한 다정한 목소리로 아이에게 하고 싶은 말을 우선한다. 

"네가 해야 할걸 안 하니까 아빠가 큰소리를 내는 거야"

"우리 집에는 규칙이란 게 있어 그걸 안 지키면 아빠는 화를 낼 수밖에 없어"


아이는 내 말을 듣자마자 바로 또 울면서 이야기를 한다.

"왜 아빠가 규칙을 정하는데!"


 순간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규칙을 누가 정해야 한다는 말이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내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아이의 마음에 좀 더 다가가기 위해 말을 건다.

"아빠가 어떻게 하면 화를 참을 수 있을까? 헌이가 어떤 행동을 하면 화가 나. 그래서 가끔 헌이한테 화를 내는 것 같아. 어떻게 하면 아빠가 화를 안 낼 수 있을까? "


그 말을 듣고 아이는 몇 번 흐느끼더니 자신의 생각을 말해준다.

"그냥 나는 힘으로 화를 참는 단 말이야. 난 엄마 아빠가 어... 나한테 흑.... 어... 흑..."

울음이 너무나와 자신의 말을 먹기에 한번 쉬고 다시 말을 이어간다.

"난 왜 힘을 쓰고 참는 거냐면... 엄마 아빠도 힘들을 까 봐. 내가 화를 참는 거 거드은... 흐윽

근데... 엄마 아빠는 왜 화를 참지 않고오... 마음속으로 왜 나한테 화를 자꾸 내냐고... 오

나는 안 내려고 어... 흐흑 으응... 마음을 참는 데에.. 으응 흐흑 흐흑 우어 엉"


복받쳐올라 말을 이어가기 어려운지 다시 한번 쉬었다가 말한다.

"엄마 아빠만 안 참고 나만 참잖아, 자꾸 나한테 화를 넘겨가지고, 내가 자꾸 화가 나가지고, 자꾸 속상한 거 아니야! 아빠만 마음이 편해지고, 엄마만 마음이 편해지잖아. 나는 마음이 되게 불편한 데에"


이 말을 듣고 있자니 어디 하나 틀린 말이 없었다. 나도 순간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래그래.."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목이 메어 이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다시 아이가 말한다.

"똑같은 마음으로 살아야지 이러면 어!~ 

한 명은 화가 나고 한 명은 좋으면...

같이 살기가 쉽지가 않아서...

같이 살기도 불편하고...

같이 놀기도 불편하단 말이야아~!"


아이의 짧은 말들이 내 가슴을 후벼 팠다.  어린아이의 말에 아주 많은 감정들이 담겨있음을 느꼈다. 울음과 함께 나에게 고해성사처럼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었다. 나는 아이를 안아주고 그렇게 한동안 함께 흐느꼈다. 이 와중에 둘째는 아직도 옆에서 서성이며 해맑다.


나의 감정이 진정되었고 마지막으로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빠가 앞으로 화를 참아볼게. 알았지? 헌이가 하는 말을 아빠가 좀 알 것 같아. 이렇게 이야기해주니까. 아빠가 화가 날것 같아도 한번 참아볼게 알았지? 노력해볼게 아빠가 해볼게..." 

라고 말하며 뒷말은 또 울컥 할듯하여 말을 아꼈다.



 처음에는 나도 화가 나서 혼을 내다가 이건 아니다 싶었다.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말할 때까지 기다려 보기로 마음을 먹은 거다. 그래서 나는 오늘 기다림 끝에 아이의 본심을 알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젠 더 이상 아이에게 화를 건네주지 않는다. 나는 아이에게서 그 누구에게도 배울 수 없는 감정의 기다림을 배우게 되었다. 아이 덕분에 감정 걸음마였던 내가 어른의 감정으로 세상을 걷게 된 날이다.


 내가 아이와의 대화를 생생하게 기억하는 이유가 있다. 옆에서 해맑게 서성이던 둘째의 장난감에 우리 부녀의 대화가 고스란히 녹음되었기 때문이다. 그 녹음파일을 소중하게 보관 중이다. 들을 때마다 나의 눈가가 붉어진다. 고맙다 첫째도, 둘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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