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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퍼맘 May 18. 2024

내면의 비평가 이름지어주기

내 안에 나와 함께 사는 비평가, 내면의 비평가, 에게 이름과 캐릭터를 지어본다. 


야, 너는 이래서 안돼. 그봐, 내 말이 맞잖아, 그냥 편하게 살지 뭘. 누가 너한테 관심을 두니. 유명인이나 책도 내고 하는 거지. 너한테 그럴 자격이 있기는 하니? 그냥 조용히 아무것도 하지 말고 살아. 포기해. 넌 안돼. 


이딴 식으로밖에 말을 못 하는 Mr. 비평가 (왠지 남자 이름을 붙여주고 싶음)이니, 내가 싫어하는 사람 이름을 붙여야겠다. 회사 다닐때 내가 싫어했던 사람, 주는 거 없이 미운 사람, 나를 비난하고 나에게 불이익을 주고 내 뒷담화를 했던 사람이름. 많지. 많고 말고. 그 중 하나 이름을 따보자.


처음엔 이렇게 접근을 했다. 아무도 모를 나혼자 부를 그 이름에 왜 며칠씩 고민하냐 하면 앞으로 30년은 내가 부를 이름이기 때문이라 그렇다. 누구의 이름보다 더 많이 부를 이름이니.


그래서 신중히 찾아봤는데 이상하다. 싫은 사람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니, 이름은 알지, 그런데 이상하게 그 사람이 더 이상 싫지도 밉지도 좋지도 않다. 맛이 있지도 맛이 없지도 않은 무언지 모르겠는 동남아 음식마냥. 동남아 음식이 맛이 맹탕이기 어려운데, 이상했다. 그러니까 불과 작년 가을까지도, 계절이 두 번 바뀌기 전까지도, 무지무지 싫어했던 그 인간이 오늘 나에게는 아무 맛도 없는 맹탕, 아무 의미도 없는 투명인간즈음인 것이다. 아님 죽었던가. 내 마음 속 그 사람은 이미 죽어서 재가 되어 한강이나 제주도 협재앞 바다나 그런데 흩뿌려졌기 때문에 내가 미워할 대상일 수는 없다.


퇴사 6개월만에 나는 타인에 대한 미움에서 해방된 것이다.


또 신이 난다. 누군가가 미울 때. 난 이미 진 사람이다. 역으로, 아무도 밉지 않은 순간, 나는 맨 몸으로 이긴 사람이 된 것이다. 매달 20일 다시 채워지는 월급 몇 백을 위해 내가 매 순간 지는 사람으로 살았다니. 물론 그 월급 몇 백은 지는 사람으로 사는 댓가이며, 다시 돌아가도 이기는 대신 월급 몇 백을 택하겠지만.


그래, 그래서 Mr. 비평가 이름을 뭐라고 짓나.


하동이, 어떨까 한다. 하동이는 제주도 하동리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 G에 사는 14살짜리 개 이름이다. 하동이는 첫 날 자신에게 다가가는 나를 보고 컹컹 짖었다. 그리고 냄새 한 번 맡더니 휙 돌아선 후 그 다음날은 짓지 않았다. 하동이 얼굴이 기억난다. 아무 악의도 없는 얼굴. 그저 간식을 줄까하여 몇 초간 기대했던 얼굴. 하동이. 이름도 푸근하다. 잠깐 짖다가 휙 돌아서서 딴 짓하는 하동이. 내 안의 내면의 비평가의 캐릭터가 그러하다. 별 뜻 없이 한마디 하다가 이내 휙 돌아서서 딴 짓을 하다가, 다음 번에 또 다시 간섭할 것이 뻔한 캐릭터. 비평을 하긴 하되 난 널 꼭 무너뜨리겠어, 이런 악의같은 건 원래부터 없었던 캐릭터.


하동이로 하자. 하동아, 앞으로 30년 잘 부탁한다. 잘 지내보자. 너무 힘차게 컹컹대지 말고, 넌 니 할 일 하고 휙 돌아서 딴 짓하렴. 난 널 무시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 하며 매일을 충실히 살아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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