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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술호근미학 Dec 11. 2022

미술관 가서 아는 척하니까 좀 있어 보이더라

예술 공부는 왜 했더라...

예술과 미학에 대한 채널을 운영하면서 은근히 채널 구독자와 좋아요 숫자에 대해 신경을 쓰게 된다. 혹자는 공부는 자기만족을 하려고 하는 것인데 왜 그런 숫자에 연연하냐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사실 나는 예술 공부는 인정받고 싶어서 했던 게 맞다.


| 내세울 게 없었음에도 지적이어서 내가 좋다고 했다


그러니까 22살 때쯤이었던 거 같다. 독서토론 수업에서 만난 나보다 1살 어린 여자애와 사귄 적이 있다. 사실 나는 키가 크거나 엄청 잘생긴 외모는 아니다. 돈이 엄청 많은 것도 아니다. 당시 수업에서 나는 이상의 『날개』라는 소설을 해석하고 발표한 적이 있는데, 여자친구는 그 모습이 멋있어 보여서 나에게 관심이 갔다고 했다. 나는 외모나 재력으로는 크게 내세울 게 없었지만 '지적이었기 때문에' 여자친구가 나를 좋아했다.



이러한 이유를 알고 나니, 지적인 모습들을 더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내가 가진 특별한 매력이니까. 지적이라는 것은 '여자 친구는 미처 몰랐던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증명하는 것이다. 여자 친구는 지적 호기심이 가득한 문학소녀였다. 그래서 어쩌면 나보다 책을 더 많이 읽었을지도 모른다. 여자 친구가 아직 모르는 것, 그것이 무엇일까를 찾아봤을 때, 축구, 군대, 예술이 떠올랐다. 당연히 나는 예술을 택했다.


나는 도서관으로 가서 예술에 대한 입문서를 찾아봤다. 그리고 여자 친구에게 미술관으로 전시회를 같이 보러 가자고 했다. 그리고 그 전시회에서 나는 내가 읽었던 모든 지식을 여자 친구에게 모두 쏟아냈다. 여자 친구는 눈을 반짝이며 네기 너무 멋있다고 말해줬다. 그때 나는 뭔가라도 된 거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 지적 허영심이 내가 예술을 공부하게 된 첫 번째 이유였다. 


| 다양한 작품들을 접하니 눈이 넓어졌다


그러한 경험 이유로, 나는 마음에 드는 이성이 있으면 미술관에 같이 간다. 미술관에 가기 전에 전시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하고 배운 것을 쏟아낸다. 미술관은 나의 지적인 매력을 드러낼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물론 예술에 대한 지식 말고는 내세울 게 없어서 그런지 모두 다 잘 되진 않았다. 그렇게 미술관들을 많이 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러 예술가들의 다양한 작품들을 공부하게 됐다. 


재미있는 점은 시대와 작가 개인에 따라 작품이 표현하는 가치가 모두 다 다르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가치들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 어떤 가치들은 이미 내가 알고 있는 친숙한 것들이었지만, 어떤 가치들은 내가 경이롭다고 느낄 정도로 새로운 가치들이었다.





그동안 나는 대한민국, 경기도 고양시, 한국인, 남자, 기독교라는 몇몇의 프레임 안에 속해 있었다. 그래서 그 프레임 안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그 안에서만 스스로를 규정했다. 하지만 예술을 접하면서 이것들이 깨졌다. 규정된 프레임이 아닌 다른 세계들도 존재했고, 그 세계에서도 높은 수준의 가치를 주장했다. 나늑 그것들을 공부하며 과거에 속해있던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프레임을 벗어나면서부터 나는 이전보다 더 큰 꿈을 꿀 수 있었고, 더 나아질 수 있었고, 더 괜찮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이런 경험을 하게 되니, 꼭 이성을 만날 때가 아니더라도 미술관을 자주 찾고 공부하게 됐다. 새로운 예술 작품들을 만날 때마다 나의 눈은 점점 더 넓어졌고, 내 삶은 더 나아졌다. 


| 결론은 또 아는 척


그렇게 넓어진 나의 시야와 철학은 내 삶으로 드러났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예술을 통해 확장된 나의 사고와 철학이 튀어나왔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어떤 예술을 보고 나서...'로 시작하면 사람들은 내 스토리에 귀 기울였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은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며 칭찬했다. 지적이라고 칭찬받았을 때, 인정받았다는 만족감과 쾌감은 꼭 여자 친구에게서가 아니라도 기분이 좋았다. 


온라인으로 예술과 미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마찬가지다. 예술과 미학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들, 느낀 것들을 나누었을 때 사람들은 좋아요, 댓글, 구독 등을 통해 나를 인정해줬다. 그것들을 받을 때의 쾌감은 일상에서 받는 칭찬의 느낌과 같았다. (그러니 좋아요 구독 눌러줘라)



정리해보자면 내가 예술을 공부하게 된 것은 지적으로 보이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그렇게 공부를 하다 보니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지고 나의 삶이 더 나아졌다. 다른 사람들과 나아진 나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그들은 나를 지적이라고 칭찬해줬다. 그러니까 결국 나는 누군가에게 지적이라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 의해 예술을 공부한 것이고, 그것을 위해 이 채널을 운영 중인 듯하다. 


그럼 이게 나쁜 것인가? 예술을 공부하는 것은 단순히 자기만족을 위해 공부해야 하는가? 나는 다음 글에 레비 스트라우스의 말을 빌려 이것을 한 번 정당화해보겠다. 다음 글이 궁금하다면 구독해서 소식을 받아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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