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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술호근미학 Nov 22. 2024

나는 달리는 것이 재밌다고 선택했다

똑같고 지루한 것에 대한 뇌의 착각

"5시간 가까이 달리는 게 재미있어?"


풀코스 마라톤을 뛰고 온 내게 아버지가 물으셨다. 


"그럼요, 5시간 동안 계속 재밌어요"


달리기를 하다 보면 그게 재밌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다. 그저 아침마다 똑같이 달리는 것을 반복하는 게 재밌을까 물어본다. 어찌 보면 모든 취미가 마찬가지인 것 같다. 배드민턴을 치든, 악기를 다루던 그것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다 똑같은 것을 반복하는, 지루한 행동처럼 보인다. 


하지만, 취미를 직접 행하는 주체는 그것을 '재미'로 한다고 말한다. 재미는 보편적인 것이 아니다. 개인적인 것이다. 그것은 선택에 의한 것이다.


라프 코스터의 재미이론


라프 코스터의 재미이론


미국의 유명한 게임 디자이너인 라프코스터는 자신의 책 '재미이론'에서, 재미는 '학습과정에서의 즐거움'이라고 정의한다. 인간이 새로운 것을 만났을 때, 그것에 대한 패턴을 찾아내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재미를 느낀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게임을 할 때, 처음 만나는 상황에서 인간이 그 상황을 학습하고 게임의 법칙을 알아냈을 때 느끼는 것이다. 


저자는 게임에 단계가 있는 이유가 여기에서라고 말한다. 인간은 패턴을 익히면 다음부터는 그 게임이 지루해지기 시작한다.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게임 개발자들은 그다음 단계의 판을 만든다. 


어쩌면 달리기가 재미없다고 느끼는 것은 같은 패턴을 오랜 시간 반복해야 하는 것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 달리기는 새로움이 없는 지루한 행동일지 모르니까 말이다. 


하지만, 라프코스터의 이론은 시작이 틀렸다. 새로움이 없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철학적으로, 과학적으로 맞지 않는 이야기다. 삶은 시간과 공간으로 이뤄져 있다. 내가 똑같은 게임을 하더라도 1시간 전에 했던 게임과 지금 하고 있는 게임은 다르다. 왜냐하면 1시간 전의 나와, 후의 내가 다르기 때문이다. 


똑같지 않다. 익숙할 뿐이다.


마르틴 하이데거


마르틴 하이데거는 인간 존재를 과거와 현재로만 나를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오지 않았으나 가능성으로 열려 있는 것을 통해 자신을 형성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을 미래에 투사함으로, 항상 새로운 것을 만들어갈 수 있는 존재다.   


(관련기사) https://www.ibs.re.kr/cop/bbs/BBSMSTR_000000000901/selectBoardArticle.do?nttId=14787&pageIndex=2&searchCnd=&searchWrd=


과학적으로도 인간은 항상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존재다. 대부분 인간의 체세포는 25-30일 정도이고, 1년이 지나면 몸에 있는 낡은 세포는 모두 죽어 없어지고 새 세포로 교체된다. 우리는 매일마다 새로워지고 있다. 다만 뇌세포와 기억을 담당하는 시냅스는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이것들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똑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절대로 똑같지 않다. 다만 익숙할 뿐이다. 


그러니 달리기를 하는 것은 똑같은 행위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다. 이전에 내가 가지고 있던 데이터를 기반으로 익숙함을 느끼고, 예상하지만 그것은 '똑같은' 것은 아니며, 나 또한 이전의 나와 체세포 자체가 다른 새로운 사람이다.



감정 vs 기분


감정과 기분은 다른 의미를 가진다. 


감정은 외부로부터 나에게 불가항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내가 이전에 겪었던 경험 때문에 특정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 생기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전의 달리기를 하며 숨이 너무 차고, 부상을 입었던 안 좋은 기억 때문에 달리기를 떠올리면 안 좋은 감정이 드는 것과 같다. 


하지만 기분은 조금 다르다. 우리는 안 좋은 감정이 든 다음에 기분을 '선택'할 수 있다. 비록 이러한 일들이 있었지만 좋게 생각하자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한 점에서 같은 긍정적인 감정이지만 '웃기다'와 '재밌다'는 다른 표현이다. 웃음은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감정이지만, 재밌다는 것은 사건이 일어나는 와중에 또는 끝난 다음 내가 생각하는 기분이다. 재미는 감정이라기보다는 기분에 가깝다. 


나의 부모님은 아침마다 배드민턴을 함께 치신다. 두 분은 배드민턴에 푹 빠져있다. 매일 아침 클럽을 다녀오셔서, 오늘의 게임을 분석한다. 그것을 지켜보는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맨날 똑같이 라켓 휘두르는 게 무슨 재미라고....'


하지만, 배드민턴을 하는 주체인 부모님은 배드민턴에 대한 다른 기분을 가지고 있다. 항상 다른 상황의 게임과 늘어나는 실력 등에 재미를 느낀다. 배드민턴 자체가 재미있는 것이 아니다. 배드민턴이 재밌다고 선택한 것이다.



달리기가 재밌다고 선택했다


나는 달리기가 재밌어서 재밌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달리기는 재밌다고 선택한 것이다. 달리기는 단순한 발구름의 반복이 아니다. 달리기를 하는 동안 나는 매번 새로운 발걸음을 하고, 새로운 숨을 쉬고,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 같은 코스를 달리더라도 계절이 바뀌고, 환경이 바뀌고, 나 자신도 새롭게 바뀌어있다. 이 새로운 환경을 만날 때 나는 또다시 패턴을 생각하고 그 과정에서 그리고 끝나고 난 뒤 재미있었다는 기분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나 달리기를 하지 않는 사람의 눈에는 그저 똑같은 일들의 반복처럼 보인다. 



이것은 비단 달리기 뿐만은 아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 안에서 재미는 선택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다. 오늘의 삶에서 당신에게 힘들고 어려운 감정은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당신의 과거에 형성된 시냅스에게 속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오늘 새로운 상태다. 기분을 선택할 수 있다. 오늘 하루 재밌게 살아보고자 하는 기분을 선택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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