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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ISYEON Mar 15. 2024

[100권의 의미] 005. 프랑스 요리의 기술

잘 되라고 하는 말



잘 되라고 하는 말

005. 공부하던 영역의, 공부와 관계 없는 책






프랑스 요리의 기술 

저자 줄리아 차일드,시몬 베크,루이제트 베르톨

2021.07.12.













공부가 하기 싫은 이유 중에 가장 큰 것은, 이걸 하면 그 끝에 도달할 것들에 대해서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수능 공부를 하다 보면 수능을 보게 되겠지. 외국어 공부를 하다 보면 외국어 능력 시험을 보거나 그 외국어를 사용할 상황에 처할 테다. 자의적으로나 타의적으로나. 대학을 간다던가 그 나라 사람과 친구가 된다거나 하는 이상주의적인 생각들은 공부를 하는 반복적이고 끝이 보이지 않는 과정에서 잘 상기되지 않는 부분들이다. 


이제는 어디 가서 프랑스어 공부한 지 얼마 안 됐다는 말을 못 한다. 2018년에 프랑스에 가기 전, 반짝 열심히 한 것을 기준으로 감으면 거의 5년 넘도록 공부해왔기 때문이다. 파리에서 교환학생도 했다. 그런데, 프랑스인과 만나서 회화를 할 생각을 하면 등에 식은땀이 줄줄 나고 최대한 피하고 싶다. 물론 어려웠던 건 거짓이 아니지만 어려운 만큼 열심히 하지 않았던 스스로의 존재를 되새기고 반성하고 싶지 않다. 공부가 이렇게 사람을 비겁하게 만든다.


지난 100권을 읽을 당시에는 한국사 능력 검정 시험을 본다고 정신이 조금 팔려 있었다. 그래서 검정 시험과는 조금 무관한 한국사 책을 읽었더니 아니라고 세뇌하려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그냥 공부의 연장이었다. 그럼 하나도 시험에 도움 안 될 책을 읽어 보자. 마치 대학을 입학하는 수험 생활 시절에 영화만 주야장천 봤던 영화과 학생 지망생이었던 나처럼. '프랑스'라는 키워드로 검색해서 나온 책 중에 가장 뜬금없어 보이는 책을 고르려고 노력했고 다양한 사상가와 철학자들의 유혹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안착했다. <프랑스 요리의 기술>, 프랑스에서 요리를 배운 후에 그 기술들을 미국의 환경에 적응시키려고 노력했던 저자들이 악전고투해온 결과들의 집결체다. 





여러 국가를 돌면서 요리를 작게나마 시도해 본 결과, 나라마다 재료가 다르고 재료에서 풍기는 맛도 매우 다르다는 것은 알았다. 예를 들면 미국 고구마에서는 엄한 맛이 난다. 달달하고 보들보들해서 한 개를 먹으면 질리는 줄도 몰랐던 나의 고구마가 여기서는 호박에 가까운 질퍽한 맛이 난다. 그렇게 달지도 않고. 땅도, 키우고자 하는 사람도 다르니 조리하는 방식도 달라져야 마땅할 거다. 이 책에서 그 방식만을 연구하면서 다정히 자신들이 연구한 것들을 기꺼이 공유하는 저자들의 태도가 좋았다.


레시피 북이라는 건, 결국 읽는 사람이 성공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작성되는 책이다. 자기 계발서를 읽다 보면 내가 자신을 채찍질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부끄러워지고 그들이 건네는 일침에 초라해지곤 했다. 하지만 레시피 북은 재료를 어떻게 어루만지고 다루다 보면 된다고, 그리고 이런 것들이 없다면 다른 것도 괜찮다며 어르고 달래준다. 실패하기도 한다고, 망친 음식을 겪어 봐야 또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각기 다른 성격의 재료들이 도구 위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 이렇게 오래 들여봤겠구나. 그리고 그것들을 맛보고 음미하면서 그들이 하고 있는 행위들에 대해 더 자세히 이해하게 됐겠구나. 레시피는 한 줄 한 줄이 어떻게 하라는 지시문에 가까운데도 가만 들여다보고 있자면 평화롭고 다정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읽는 사람도 그 같은 과정을 거쳐 맛있고 행복한 식사를 하길 바라는 마음이 함께 해서일까. 퍽 다정하고 어떤 조언보다도 잘 되라고 하는 말들인 것이 느껴진다. 물론 이 책을 읽고 요리를 시도하진 않았다. 그 점이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






[100권의 의미]는 책을 100권을 읽으면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그리고 그 책들이 개인의 삶에 어떤 의미를 형성하는지 알아보고자 시작한 프로젝트입니다.

2021~2023년에 걸쳐 100권을 읽은 후 같은 리스트로 두 번째 100권을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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