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 제목이 끌리는 시집
나의 부인이 옆에 살아있다는 것
010. 제목이 끌리는 시집
시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던가? 검색창에 '시의 종류'라고 입력하면 서사시, 서정시, 극시, 그리고 우리가 국어 시간에 많이 배우곤 했던 시조 정도가 등장한다. 일본에선 '센류'라고 하는 정형시가 있는데, 5.7.5 글자로 이루어진 '하이쿠'라는 형식의 시를 보다 자유로운 내용과 형식으로 만든 장르다. 이 책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은 전국유로실버타운 협회에서 빼어난 센류들을 뽑고 투표해서 엮어낸 책이다. 센류가 보통 가지런히 놓으면 한 줄 정도의 짧은 시이기 때문에 읽는 데에 긴 시간이 소요되진 않았지만, 제목을 보자마자 느꼈던 블랙 코미디의 정서가 실제 노년층의 약간의 자기 파괴적 개그와 엮이면서 풍자적이지만 마냥 웃을 수 없는 내용들로 가득 차 있다.
10번째 책은 '제목이 끌리는 시집'이다. 지난번에는 순천에 여행을 갔다가 독립 서점에서 "사람은 왜 만질 수 없는 날씨를 살게 되나요"라는 책을 골라 구매했다. 시집 속의 화자는 꽤나 우울하고 회의적인 감상들을 시에 여김 없이 풀어냈고 나는 나의 불안을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를 들여다보았다. 달고 맛있는 걸 먹는 것만으로는 해소되지 않던 나의 불안들은 2년 즈음이 지난 지금에도 형태만 조금 달라졌을 뿐이지 내 옆자리에 그대로 있다.
반면 인생을 내 두 배 이상은 살아낸 화자들이 말하는 짧은 글들은 회의나 우울보다는 낙담과 안도에 가깝다. 틀니가 잘 맞물리지 않아도 낄 수 있는 사실에, 주름 사이에 보조개가 끼어 잘 보이지 않더라도 다른 단계로 진입하게 된 부부의 사이 따위에 즐거워하며 킬킬거릴 수 있는 안온한 나날들이 느껴졌다. 강아지보다 나를 조금만 더 사랑해 달라고 애원할 수 있는 나의 부인이 옆에 살아있다는 것, 장례식이 소식통이자 모임 장소가 되어버리는 인생의 어느 단계에 접어들기 전에 그들의 일상을 조금은 경험해 볼 수 있는 시간들이 됐다. 사랑과 반가움을 마음껏 말하고 그 서운함을 삼키면서 밥알 하나하나를 어떻게든 꼭꼭 씹어가는 그들이 사랑을 말하고 외로움을 덜 느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게 됐다.
[100권의 의미]는 책을 100권을 읽으면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그리고 그 책들이 개인의 삶에 어떤 의미를 형성하는지 알아보고자 시작한 프로젝트입니다.
2021~2023년에 걸쳐 100권을 읽은 후 같은 리스트로 두 번째 100권을 시작했어요.
책의 리스트는 아래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