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빈치 - 월터 아이작슨
레오나르도 다빈치
경이로운 세상에 대한 호기심 충전하기
002. 1번 책과 유사한 책
손이 잘 가지 않던 책을 끝내고 나면 다음 책은 뭐든지 간에 흥미로운 책이 읽고 싶어진다. 그래도 멀리하던 분야를 맛을 봤으니, 한 번만 더 도전해 보자는 마음으로 인물 전기 서적들을 뒤적거렸다. 처음에 골랐던 책은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의 주인공인 실존 인물 앨런 튜링에 대한 책이었다. 하지만 이게 웬걸, 어느 정도 처음부터 시작하느냐면 그의 조상이 어쩌다가 그 땅에 이주했는지부터 시작한다. 똑똑한 앨런 튜링이 어떻게 그 똑똑함을 맘껏 휘두르고 다녔는지 알고 싶었는데, 거기까지 가려면 많은 페이지들을 거쳐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잠시 접어두고 다른 책을 찾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인물 전기, 한참 전에 사망한 이 인물의 2019년 출판물은 뭐가 다를까 생각하며 읽기 시작했더니 같은 저자였다. 일론 머스크의 생애를 잘 자르고 붙여서 내가 그 사람을 이해시켰던 그 작가. 윌터 아이작슨이 있었다.
/항상 4장을 채우는 윌터의 책
두 권째 읽으면서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책은 무진장 두껍다는 거다. 이북으로 읽으면서 틈틈이 근면하게 읽었는데도 며칠 안에 산뜻하게 끝낼 수 있는 분량이 못된다. 주변 인물, 기존에 존재하던 자료들, 자신이 직접 보고 온 광경과 당대 사람들의 반응들. 그가 수집할 수 있는 정보란 정보들을 모두 모아서 한곳에 모아뒀으며 친히 덧붙여주는 해석과 사족까지 넣다 보니까 책이 끝이 나지 않는다. 메모하면서 책을 읽는 습관이 있는 스스로가 싫어질 만큼 인상적인 문장도 많았다. 손은 좀 너덜너덜하지만.
어제 뉴욕에 있는 현대 미술관을 방문해서 구불구불한 지점토로 만들어 은색 옷을 입힌 것 같은 조형물을 봤다. 이게 뭘까, 왜 내가 알고 있던 것들을 이렇게 구부려 놨을까. 이 은색 메탈 소재는 뭘까 궁금해서 들여다본 설명에는 익숙한 이름이 있더라. 살바도르 달리. 아, 이런 메탈을 구부려서 조형물을 만들어 본 사람이라서 구불구불한 시계를 캔버스 위에 그려 넣을 생각을 했구나. 작가들은 다양한 소재들을 궁금해하고 이것저것 뚝딱뚝딱 만들어 가면서 성장하나 보다. 다빈치가 모나리자의 미소를 만들기 위해 영안실에서 피부 조직과 안면 근육을 연구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가 천재인 건 익히 알고 있었다. 파리에 살고 있을 때에는 루브르 가는 걸 별로 좋아하진 않았다. 언제나 사람이 넘치고, 모나리자 앞은 북적북적한 사람들이 휴대전화를 쥐고 어디에 사용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 사진을 찍어대기 바빴다. 사람들은 왜 미술관에 와서 그림을 볼까 생각하면서도 나도 똑같은 짓을 반복했다. 지금 파리에 간다면 잔뜩 앞으로의 미래를 위한 자료들을 모으려고 할 텐데. 아무튼 모나리자가 대단한 작품인 것도 알고 미소가 은은하다던가 각도에 따라 다르다던가 하는 얘기도 알았지만 얼마나. 얼마큼?에 대한 감각은 없었다. 2주간에 걸친 독서 끝에 내린 결론은 하나.
그는 타고나길 자신의 호기심을 열정 있게 탐구할 줄 아는 천재로 태어났다. 지능이나 창의력 같은 우리가 규정하려고 하는 천재성을 드러내는 항목들이 존재하긴 한다만, 아직도 무엇이 압도적으로 빼어난 것인가?를 명확히 규명하긴 어렵다. 하지만 호기심을 쫓고 그 탐구를 망설이지 않으며 진취적으로 다음 단계를 향해 나아가는 것은 천재의 영역이다. 노력을 들이지 않고 얻어낼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이 살면서 계속해서 배우게 되는 진실한 문장이다. 이 정도 되는 천재조차 이만큼이나 치열히 노력하며 살았음을 다시 배우게 됐고 완성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미련이나 자책도 덜 수 있었다.
우러러보던 대상이라고 해서 마냥 모든 상황에 담담하게 정답에 가까운 행동만을 하며 살아오진 않았다. 때로는 복잡한 상황으로부터 줄행랑을 쳐서라도 하고자 하는 것들을 만들어 나갈 수도 있지. 다빈치는 손에 꼽는 걸작을 만든 만큼 미완성 작품도 많았다. 그리고 적당한 마무리를 지어 손을 떠나보내게 두기보단 16년에 걸쳐 모나리자를 들고 다니더라도 끝을 보는 인물. 그의 집요함과 때로는 무심한 여유로움이 공존하는 생애를 오랜 시간에 걸쳐 읽어내고 나니 꽤나 희망적인 내일을 그려보게 됐다. 다빈치 같은 사람이 되자는 의지가 아니라, "다빈치도 저랬는데"라는 안도감. 대단한 사람이 되려고 매 순간 대단하지 못했던 나를 질책할 필요는 없었다.
[100권의 의미]는 책을 100권을 읽으면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그리고 그 책들이 개인의 삶에 어떤 의미를 형성하는지 알아보고자 시작한 프로젝트입니다.
2021~2023년에 걸쳐 100권을 읽은 후 같은 리스트로 두 번째 100권을 시작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