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만나는 트라우마 심리학 - 김준기
응원과 바람을 담아 전하는 지식
읽어 보고 싶었던 '과학' 책
영화는 정말 많이 봤다. 손가락으로는 셀 수 없을 만큼, 마음속에 남은 캐릭터만으로도 작은 마을 하나를 건설해 스토리를 이어갈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도 아픈 기억을 겪은 후 다시금 삶을 지탱하는 캐릭터들의 이야기에 '과학'이라는 단어를 붙여본 적은 없었다.
여덟 번째 책은 '과학'에 관련된 책이다. 지난번에는 <미생물 전쟁>이라는 책의 제목부터 과학 냄새가 풀풀 나는 책을 읽었었다. 과학은 조금 의식해서 읽지 않으면 손이 안 가는 분야다. 늘 누군가는 나보다도 더 잘 알 거라고 생각했고, 변화의 수혜자이지 주체는 아니라는 생각이 컸다. 언제까지고 외면할 수도 없고 폭 좁은 독서를 하는 것은 멋져보이지 않아서 일부러 과학을 넣었다. 물론, 심리학도 과학인가요?라고 검색도 했고 "예 그렇습니다."라는 답변을 읽은 후 책을 읽기 시작했다. 대충 이런 답변을 인터넷에서 보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과학을 잘 아는 사람들이 그것을 ‘잘 설명’하는 사람은 아니다. 어떤 분야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전문성을 취득한 사람은 타인에게 해당 분야를 설명할 때 오히려 잘 못하곤 한다. 특히 내가 겪은 빼어난 과학자들은 자신이 이해하는 것을 더 쉬운 말로 풀어서 설명하는 데에 젬병이셨다. 예전에 내가 던진 “쇠똥구리도 근육이 있나요?”라는 질문에 어떤 곤충학자 분은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하지...”라며 오히려 멈칫했던 장면이 생각났다. 물론 쇠똥구리는 근육이 있다.
자신이 잘 아는 분야를 아예 모르는 사람에게 쉽게 설명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까 과학이 나같은 수혜자의 삶 안으로 인지적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영화 같은 매개가 필요하다. 영화와 같은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는 콘텐츠들은 그때 좋은 예시가 된다. 이 영화에서 말이야. 하면서 우리가 한 시간 반 가량의 러닝타임 동안 이해하고 공명했던 삶을 가져오기 때문에 더 많은 부연설명이 필요가 없어진다. 마법 같은 순간들이다.
심리학, 그중에서도 트라우마를 기반으로 한 이야기를 하면서 심각해지거나 무거워지기 않기가 힘든데 챕터마다 다루는 영화를 달리 하고, 영화들에 너무 깊게 들어간다기보단 한 발자국 떨어져서 현상 그대로의 심리학을 이야기하는 책이라 가볍게 읽으면서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이미 감상한 영화와 처음 보는 영화들이 함께였지만 어떤 영화인지 이 삶은 어떠한지를 개괄적으로 설명해 주더라.
이 책은 그런 순간들로 가득하다. 트라우마를 다룬 영화들을 통해 심리학을 살핀다. 무겁지 않게, 그러나 얕지도 않게. 챕터마다 한 편의 영화를 다루면서도 그 감정선에 과몰입하지 않는다. 한 발짝 떨어져서 ‘이 사람의 이 반응은 왜 이런가요?’라고 묻는 듯한 톤. 그래서 더 깊은 공감이 일어난다. 이미 본 영화도 있었고, 처음 접한 영화도 있었지만, 모두 삶의 한 장면처럼 읽혀졌다.
책과 영화 속의 인물들은 크고 작은 사건을 겪는다. 영화는 대개 그 사건으로부터 시작해서 한 개인이 어떻게 그것들을 다루고 있는지를 담는다. 관객이 느끼는 답답함, 공감, 긴장감, 그리고 슬픔과 같은 감정들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증폭되면서 주제 의식을 던진다.
그리고 우리는 그 사건의 진앙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을 지켜본다. 중요한 건, 그들이 가해자가 아니라는 것. 그저 견디고, 버티고, 회복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다. 이 책은 그들의 증상을 분석하거나 진단하기보다, 그 곁에 다정히 앉아 함께 있어주는 책이다. 각기 나름의 방법으로 삶을 견디고 치유하고 있는 이들에 대한 응원과 안온함에 대한 바람이 책의 곳곳에 묻어 있다. 다정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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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100권의 의미'라는 프로젝트의 여덟 번째 기록입니다.]
2021~2023년에 걸쳐 같은 리스트로 100권을 읽은 후, 두 번째 100권을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