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 다분한 정치적 의도가 만드는 노력의 결실

012. 책장의 첫 번째에 있던 책 -눈에 보이지 않는 지도책

by DAISY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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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지 않는 지도책

Cheshire, James, Uberti, Oliver윌북


독서를 많이 하려고 노력할 때마다 드는 생각은, 생각보다 이 취미가 막 저렴하진 않다는 거다. 책 한 권을 구매하는 행위 자체에 쓰이는 돈은 다른 어떤 취미보단 저렴할 수 있더라도 그 책을 보관할 곳이 마땅치가 않다.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나도 모르게 포기하게 된 것이 있다면 제대로 된 책장을 갖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에는 방 한 벽면이 전부 책장인 게 싫어서 책을 다 갖다 버려야 한다고 주장할 만큼이었는데도. 책이라는 건 결국 물리적 실체가 존재하는 물건이고 이를 소장한다는 것조차 내게 부동산 가치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방 한 벽을 전부 책으로 채울 수 있는 책장과 공간을 갖는 데에 성공한 부모님 세대가 위대해 보였다.



열두 번째 책은 '책장에 첫 번째로 꽂혀 있는 책'이었다. 그때는 한창 졸업영화를 찍고 난 시기였어서 내가 주인공으로 설정했던 인물의 구성에 참고하기 위해서 구매했던 책들이 있었다. 브랜드 디자인 같은 걸 해 본 적도 없으면서 왜 주인공 직업을 그렇게 설정했을까? 멋있어 보여서가 아니었을까? 이 책을 구매해서 나의 공간 안에 들이기까지 내가 했던 생각들을 되새겨 보는 재미가 있었다. 놀랍게도 '첫 번째 꽂힌' 책인데도 읽어 본 적 없었다는 점이 더 재미있기도 했고.



하지만 책장이 없는 삶을 살다 보니 이런 선택지가 오니 곤란해졌다. 도서관에 가야 하나? 어떤 형태로든 책장이면 된다면, 오랫동안 이용해 오던 이북 플랫폼에 내가 만들어 둔 책장을 열람해 봤다. 언제 넣어 둔지도 모르는 이 책이 있었고 읽는 내내 '도대체 내가 이걸 왜 담았을까?' 궁금해했다. 이유야 고사하고, 언젠가의 내가 결심해 내 공간 안에 들어오게 된 이 책을 마주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좋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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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지도책이지만, 우리가 그간 알고 있던 지도와는 다르게 생긴 지도들이 가득하다. 어떤 데이터들은 데이터의 형태로 있다 보면 그 데이터를 읽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의미가 있는 데이터가 된다. 후가공을 거치지 않은 채의 데이터를 관심사가 다른 일반적인 대중이 접하고 해석하기까지 걸리는 시간들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그래서 지도, 즉 데이터를 후가공해 시각화한 것들을 통해 보다 간편하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을 갖게 되는 거다. 이 책 <눈에 보이지 않는 지도책>은 그런 세상을 읽는 방법, 데이터 지리학을 통해 정리한 방대한 데이터들이 정리되어 있는 책이다.


책을 통해 접할 수 있는 키워드들은 다음과 같다. 홀로코스트, 성명학, 소득과 긍정, 잔혹행위, 인공지능. 사람이 자신의 관점을 담아서 가공해 지리와 엮은 것들은 그간 도로를 뚜벅뚜벅 걷고 자동차 위에서 씽씽 달리던 나의 세상에선 알 수 없던 것들이 가득이었다. "오랫동안 지도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형성하는 물건이었다."라는 문장이 진실로 느껴질 수 있게 관점을 잔뜩 학습하면서 책을 덮었다.


세상에는 이 지도책에 담기지 않았음에도, 가공되길 기다리는 데이터들이 많을 테다. 지도란 건 정지해 있는 영토에 대한 정보 값에 불과하다는 관점이 아니라, 이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들을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로 노력해 가공한 새로운 형태의 지도들을 더 많이 보고 싶다.









[100권의 의미]는 책 100권을 읽으면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그리고 그 책들이 개인의 삶에 어떤 의미를 형성하는지 알아보고자 시작한 프로젝트입니다.

2021~2023년에 걸쳐 100권을 읽은 후 같은 리스트로 두 번째 100권을 시작했어요.

책의 리스트는 아래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100권의 의미 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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