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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민 Sep 28. 2019

<기생충>

어떻게 해도 숙주보다 많이 가질 수 없는 기생충의 생태

<기생충>은 초반에 일견 순진한 물주를 속여 부를 쟁취하는 전형적인 하이스트 영화처럼 보인다. 이 영화의 전반부는 기택 일가가 치밀한 계획을 성공적으로 성취해가는 쾌감을 동력으로 삼는다. 하지만 기택 일가가 전반부 내내 간과하는 사실이 하나 있다. 그들이 아무리 부자를 능숙하게 속이고 돈을 벌어도, 그들은 결국 '기생충'이다. 영화는 결코 그 사실을 모른 척 넘어가지 않는다. 기택의 집에 기생하는 꼽등이, 꼽등이를 죽이기 위해 소독약이 들어오도록 두었더니 외려 소독약에 기침을 하는 기택 일가. 기택이 '집주인이 집에 돌아와 불을 켜면 헐레벌떡 자취를 감추는 바퀴벌레'라는 충숙의 대사. 박 사장의 집을 벌레처럼 기어서 탈출하는 기택과 그의 자녀. 지하실에 있는 남자에게 목숨을 위협받자, 목줄을 단 개처럼 줄을 달고 네발로 지하실을 탈출하는 기우. 기택 일가는 신분 상승을 위해 짐승이 되어야 했던 가족이다.
 
그런데 짐승이 되어서까지 상승을 갈구하던 기택 일가의 노력이 무색하게, 중반부를 기점으로 상승의 쾌감은 끝나고 하강의 처연함이 영화를 채운다. <기생충>이 빈가를 포착하는 숏은 하강 이미지로 가득하다. 기택 일가는 동네 밑바닥 반지하에 산다. 그들은 태생적으로 반지하 냄새에 젖어있다. 사채를 쓰는 바람에 박 사장의 집에 숨어살게 된 남자 역시 지하실에 산다. 게다가 박 사장의 집을 탈출한 기택과 그의 자녀가 집으로 돌아가는 시퀀스에는 노골적인 하강 이미지가 나온다. 그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전부 내리막길이다. 계단을 내려가는 기택 일가는 쏟아지는 비를 맞는다. 기우는 계단을 한참 걷다 착잡한 표정으로 아래를 내려다본다. 그 순간 계단으로 흘러내리는 비가 클로즈업 된다. 밑바닥까지 내려간 기택의 가족은 빗물이 고여 엉망진창이 된 집을 목도한다. 처참하게 어질러진 집을 보며 기택 일가는 다시 한 번 자신들의 자리를 상기하게 된다. <기생충>에는 어째서 이러한 노골적인 상승과 하강 이미지가 필요했던 것일까. 상승과 하강의 연쇄에 노출되는 것은 이를테면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과 같다. 상승을 해본 사람만이 하강의 아찔함을 안다. 기택 일가는 몇십 년간 빈곤한 삶을 살아왔지만, 그들은 '기생충'이 되어 본 후 이전처럼 인생을 인지할 수 없게 되었다. 김지운 감독의 영화 <달콤한 인생>에는 이러한 상승과 하강에 대한 정념이 잘 묘사된 대사가 나온다.
 
어느 깊은 가을밤 잠에서 깨어난 제자가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스승이 기이하게 여겨 제자에게 물었다.
"무서운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슬픈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리 슬피 우느냐?"
제자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일장춘몽을 꾼 기택 일가는 박 사장 일가와 자신들 간의 메울 수 없는 격차를 안다. 처음엔 영어 강사로 일을 하면서 자신의 처지에 대해 고민한 적이 없었던 기우는 빈부격차를 온몸으로 실감한 후 생일 번개에서 다혜에게 "내가 이 자리에 어울린다고 생각해?"라고 묻는다. 계획이 어긋나기 전까지만 해도 다혜와 결혼할 생각까지 하던 기우지만, 이제 그는 자신이 다혜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기우와 다혜 사이에는 사람이 기꺼이 벌레가 될 정도의 격차가 있다.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원동력 중 하나는 오늘보다 내일이 나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다. 희망이 없는 인생은 비극이다. 봉준호 감독은 헛된 희망을 제시하고, 그 희망을 철저히 반박함으로써 비극에 못을 박는다. 예컨대 <기생충>의 결말에는 계획을 세웠다는 기우의 보이스오버와 함께, 기우가 돈을 벌어서 박사장의 집을 사는 플래시 포워드가 나온다. 기우의 편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준 플래시 포워드는 믿기지 않을 만큼 이상적이다. 관객은 결말부를 차지한 희망이 넘치는 씬을 보며 순간 당황한다. 하지만 곧 플래시 포워드가 끝나고, 반지하에서 편지를 쓴 기우가 나온다. 기우를 향해 하강하는 카메라. 배경은 어둡고, 결의에 찬 표정의 기우는 피폐하다. 이전에 기택은 계획을 세워봤자 인생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기에 계획 없이 살게 되었다는 말을 했었다. 역사는 반복된다. 관객들은 기우의 계획이 이루어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무자비한 카메라-
  
이 영화의 카메라는 종종 인물에게 지나칠 정도로 접근한다. 카메라가 인물의 지척에 위치하는 것은 도식적으로는 인물의 감정을 명확하게 포착하기 위한 연출처럼 보인다. 다만, 인물을 지척에서 포착하는 카메라는 <기생충>에서 통상적인 연출 원리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기이한 효과를 구현한다. 이 영화에서 카메라가 인물에게 접근하는 순간은 대부분 인물의 치부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피사체를 응시하는 연출로 인해 등장인물이 숨기고 싶었을 수치심과 통념에 어긋나는 욕망이 스크린에 선명하게 새겨진다. 말하자면, <기생충>에서 카메라는 '선을 넘는다'. 결과적으로 인물의 모순적 언행과 욕망을 적나라하게 포착하는 숏은 불쾌한 정념을 축적한다. 축적된 정념은 부조리한 상황을 더욱 부조리하게 장식한다. 봉준호 감독은 관객의 가슴에 적나라한 비극을 박고 싶어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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