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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커리어 Feb 06. 2021

항상, 깨어있어라.

‘항상, 깨어있으라’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또한 불교에서도 해탈을 위한 중요한 수행 방법으로 이해하고 있다. 여기서 종교적인 해석과 의미를 말하고자 함이 아님을 사전에 밝혀둔다. 사실, 아는 지식이 부족하여 말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이 말을 되뇌다 보면 현실 속에 파묻혀 있는 나를 잠시 밖으로 끌어내어 반성하게 만든다. 나는 이 경구를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객관적으로 관조(觀照)해 올바른 판단을 한다’로 나름 정의한다.

   

왜 깨어 있어야 하는가? 도둑들이 들어와 자신의 귀중한 물건을 훔쳐가는 것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도둑들은 나의 용기와 자신감을 훔쳐가고, 그 대신 시기와 고통 그리고 두려움을 남겨두고 간다는 것이다. 그 결과  미래 가능성을 선택하고 판단하는 자유를 빼앗기고, 의타적인 노예로 살아가게 만든다. 세상이라는 원형 경기장 속에서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불합리한 규칙과 두려움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언젠가 죽는 힘없는 종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어떻게 깨어 있어야 하는가?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객관적인 관찰자 입장에서 인지하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알아차림’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그러나 바쁜 현실을 살다 보면 그 속에 파묻혀 계속 자신을 바라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몸과 마음의 균형이 무너질 것 같은 느낌이 오면 일단 하던 일과 생각을 멈추고 넓은 장소로 나온다. 그리고 하늘을 쳐다보거나, 좀 걸으면서 왜 그런 느낌이 드는지 스스로 질문하고 긍정적인 답을 찾으려 한다.     


지금 하고 있는 생각과 느낌은 정말 가치가 있고 중요한가? 왜 내가 화를 나고 짜증을 내야 하는 명확한 이유가 있는가? 바둑이나 장기를 직접 두는 사람은 몰입을 하다 보면 바른 수를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옆에서 구경하는 사람은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승패에 대한 이해관계가 없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욕심이나 이해득실을 따지지 말고, 특히, 자신을 과대 포장하자 않고 냉정하게 쳐다보면 사실관계가 명확해져 바른 판단을 할 수 있다.  

   

살다 보면 손해도 볼 수 있고 이익을 볼 수도 있다. 또한 자존심도 상하고 자신의 무능력한 모습에 실망할 수도 있다. 남이 나를 무시한다고 섭섭한가?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는다고 괘씸한가? 또한 주위에 잘 나가고 돈 잘 버는 사람에게 시기심이 생기는가? 시간이 지나면 결국에는 나는 나고, 너는 너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냥, 자신의 길을 열심히 가면 되고, 그 결과에 대해 기꺼이 책임을 지면 된다. 독립된 주체가 되지 않으면 항상 타인을 의식하게 된다. 


어찌 보면 냉정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깨어 있다는 것은 자신과 연결되어 있는 것을 끊어버리고 진정한 자신만 보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지식과 육체를 끊임없이 키우고 단련하는 것이다.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면 주위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멀어져 가고, 자신감이라는 힘이 중심을 잡을 때 원심력에 의해 모든 것을 끌어당길 수 있다. ‘오직, 나 자신만이 내가 얼마나 노력하고 열심히 일하는지 지켜볼 뿐이다’라고 누가 말했는데 이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 ReCare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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