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럽하우스
voice only sns - 클럽 하우스에서 지난밤 모르는 사람들과 약 4시간 정도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주 재밌었던 양질의 대화.
살면서 몇 번의 연애를 하고 실패를 거듭하며 과연 사랑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사랑을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해 참된 연구자의 자세로 사랑을 연구하고 분석하고 파헤치고 뜯어보고 공부하고 읽고 쓰던 요즘이었다.
최근에 꽂혀있던 키워드는, 사랑을 계산하는 일에 대한 것이었다. 좋아하는 오아영 선생님의 페이스북 글에 소개된 주제다. 보통 ‘계산적’이란 워딩은 앞뒤를 재고 따져 경제적 이익을 우선시한다는 말. 사랑 주제에서 특히 부정적으로 쓰인다. 넌 계산적이야 라는 말은 곧 너는 너의 이익만 따져 너 좋을 대로만 한다는 식으로.
서로가 서로의 이해관계를 충족시켜주는 비즈니스적 사랑은 여러 사랑의 한 형태로서 분명 존재한다. 흔히 조건을 따진다고 하지. 내가 원하는 기준, 네가 원하는 기준이 우연히 잘 맞아떨어질 때. 가장 겉에 지니고 있어 굳이 그 블라인드 창 안을 보려 하지 않아도 살짝 대 보기만 하면 두 창의 돌기가 잘 맞물리는지 알 수 있는, 그런 피상적인 기준이다. M&a 같은 결혼이 여기에 속하지 않을까 싶지만, 이러한 결혼을 하는 사람들을 비하할 의도는 없다. 결혼은 비즈니스라고 생각하는 두 사람이 만나 만족스러운 M&A에 성공하면 그에 따른 경제적 효용을 사랑으로 여기며 잘 살아갈 수 있지 않겠어.
사실 사랑은 무엇이든 잘 포장해버리기도 한다. 폭력적인 남편이 아내를 때리는 것 가지고 “사랑하니까”라며 둘러대고, 고위 공직자가 어린 여성 비서를 성희롱 해 놓고 “사랑해서”라고도 하니까. 각자의 이해관계를 충족하며 최적화된 컨디션으로 두 사람의 인생이 맞물리는 M&A 결혼 정도를 사랑으로 포장하는 것쯤이야 어렵지 않은 일이다.
계산적 사랑은 비즈니스적 계산이랑은 완전히 다른 의미가 있다. 더 잘 사랑하기 위해 자본주의적 잣대를 가져다 대는 것. 네가 원하는 것,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대화하며 확인하고 상대방의 기대를 충족시켜주는 일. 상대방이 원하는 것 이상을 주기 위해 상대방이 원하는 바가 어느 정도인지를 늘 궁금해하는 마음.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자본주의 사회라, 보통은 그 원하는 것들 - 돈, 시간, 선물 등 - 자본주의적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더 잘 사랑하려는 데에 이러한 이해관계의 잣대를 차용하게 되는 거다.
상대방이 원하는 것은 곧 변하기 마련이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을 느끼게 끔 하려면 원하는 바를 확인해 그만큼을 충족시키는 것은 당연하고 그보다 더 해주려고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네가 원하는 바를 끊임없이 질문하고 내가 넘겨짚은 너의 이해관계 레벨이 맞는지 실험하고 결과를 확인하려는 자세가 유일하다.
기본적으로 애인을 대할 때 염두하는 또 다른 자세 중 하나는, 나는 절대로 나 사랑한다는 상대방을 죽을 때까지 다 알 수 없다는 마인드다. 평생을 나와 함께 살아온 나도 나 자신을 잘 모르겠는데, 그보다 훨씬 짧은 우주적 시간을 겪은 상대방을 함부로 안다고 말할 수가 없는 거다. 죽을 때까지 알 수 없다의 자세는, 함부로 판단하려는 충동을 잘 저지한다. 이 남자는 이래서 이렇게 행동할 거야.라고 생각하기 전에, 이 말이나 행동이 나오기까지 지나온 그 신경선의 시발점에 있는 그 마음, 의도는 무엇일까. 아무런 인과 없이 탄생한 그 작은 에너지는 무엇을 촉매로 생겨난 것일까 생각하게 된다.
상대 입에서 나온 말의 마음 출처까지 따라가는 길은 실로 외로운 여정이다. 마음 출처의 불씨를 찾아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자리는 저 멀리 사라져 있다. 내게 전해진 말이 나로 하여금 어떠한 기쁨 슬픔 행복 분노 등 감정을 일으키기도 전에 속으로 생각하는 거다. 내면의 감정들아 모두 멈춰. 지금 나에게 전해진 저 말로 내가 분노를 느끼는 것이 맞니? 의도는 선한데 말하는 방식 때문에 내가 분노를 느끼려는 걸 수도 있잖아? 그런데 의도는 선한 것이 맞아? 왜 그런 의도로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걸까? 그런 말을 하는 상대방은 지금 어떤 상황에 있는 걸까? 등등.. 트래킹이 이어질수록, 상대방의 마음 불씨를 향해 가까이 가려하면 갈수록 내 마음속 불씨는 힘을 잃어간다. 찾아와 주는 이 없어 외롭다. 점점 차가워져 어느새 사라진다.
사랑은, 그냥 느껴
친구가 나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승희야, 너는 왜 사랑을 머리로 하려 하니. 그러지 말고 그냥 사랑을 느껴봐. 생각을 좀 멈춰... 생각을, 생각을 어떻게 멈출 수가 있지. 생각이 되는 걸 어떡해. 얘가 나한테 왜 이런 말을 하는지부터 생각하는 게 오랜 습관이 되었는데. 그래서 나는 자주 공감 능력이 뛰어나다는 말을 듣지만, 내가 하던 일은 상대방의 감정을 함께 느낀다는 향유적 의미의 공감이 아니었다. 오히려 미지의 세계에 있는 너의 마음 불씨를 쫓아가려 애쓰며 필연적으로 걸어가야 하는 과정이라고 하는 게 더 맞겠다.
마음으로 하던 사랑, 머리로 하던 사랑 모두 실패하고 나니 그렇다면 다음으로 생각나는 방법은, ‘모른 척 하기’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생각이 되어도, 생각을 안 한 척해보는 거다 사랑해서 소유하고 싶다면 소유하고 싶지 않은 척. 바라는 것들이 하나둘씩 생겨날 때, 바라지 않는 척. 복잡해지려 하는 것들이 보이면 안 보이는 척하는 거. 대신, 내가 모르는 척하고 있다는 사실은 늘 인지하는 거지. 그래서 ‘척’하는 거야. 진짜 모르는 게 아니니까.
내 마음 불씨는 ‘모르는 척’ 포장지에 씌워놓고 소중히 잘 보관해둔 상태에서, 상대방 마음으로 가는 길을 눈을 반쯤 감고 안 보이는 척해보는 거지. 이 과정을 내가 날 속이는 거라 할 수도 있지만, 감히 ‘제 스스로 다스린다’는 표현을 써도 되려나.
온도가 맞는 사람을 만나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어느 분께서 사랑은 마음의 온도가 맞는 사람 둘이 만나 복잡한 생각할 필요 없이 마음으로, 서로의 온도를 느끼는 거라고 하셨다. 나와 온도가 맞는 사람이라. 마음의 온도..
한 편 나는 자주 피아노 음악을 즐기는 사람이라, 한껏 고양된 상태에서 즉흥 연주를 할 때면 예술적 기질이 발휘되곤 한다. 최근엔 비즈니스 필드를 양껏 기웃거리며 난 외고도 나왔으니 실은 문과가 더 체질인 것은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저 말을 들으니 내 안에서 잠자코 있던 이과생 내면 아이가 톡 튀어나와서 또 생각을 하는 거다.
나와 온도가 맞는 사람을 만나라고. 그런데 열역학 0법칙 알지. 온도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해. 결국 다 같은 온도가 되어 평형이 될 거야. 나와 온도가 맞든 아니든, 살 맞대고 있으면 결국 다 같은 온도가 돼. 다만 내 온도보다 더 높은 사람을 만나느냐 낮은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나중에 같아지는 온도는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 나보다 높은 온도의 사람을 만나면 평형이 되는 온도도 원래의 나보단 높을 테고, 나보다 낮은 온도의 사람을 만나면 내 열이 이동하며 원하는 상대방을 데울 수도 있을 거야.
결국 두 온도는 같아진다는 게 자연법칙이니, 그럼 나와 온도가 맞는 사람을 만나라는 말은 틀린 것 아닐까. 정 그런 사이언티픽 한 단어를 쓰고 싶다면, 적절한 비열을 가진 사람을 만나라는 말이 더 맞지 않을까. 너무 비열이 작아 갑자기 확 뜨거워졌다가 차갑게 식는 사랑 말고. 그렇다고 너무 비열이 커서 나만 속 터지게 하는 사랑 말고. 봄가을처럼 따뜻함과 선선함 사이를 오가는 그런 사랑 있잖아. 아니면 아예, 온도가 없는 빛이어서, 서로 밝게 비춰주기만 해도 따스한 사랑이 연출되는, 그런 바이브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
이런 게 이과생들의 사랑이냐고? 조심해. 여기 공대 출신이 얼마나 많다고! ㅋㅋㅋ
#클럽하우스 #사랑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