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했던 애인들은 하나같이 내게 향기를 묻혀 두고 떠났다. 스무 살의, 가진 것 없었던 첫 번째 애인은 향수도 쓸 줄 몰라 매일 같은 스킨로션을 쓰는 게 할 수 있는 꾸밈의 전부였는데, 분명 내가 쓰던 로션이 아닌데도 수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코 끝에 그 시원한 잔향이 남아있다. 바람이 불 때 코 끝에 옮겨 묻은 로션 향이 증발해 공기 중으로 사라지는 데 까지 걸리는 그 시간과 속도를 감각적으로 기억한다. 이러한 물리적인 느낌 말고는 그게 정확히 어떤 향 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애인과 헤어지면 관련된 물건들은 다 정리해야 된다는 이상한 신념이 있었던 때라 그가 보냈던 편지며 선물은 헤어질 당시에 모두 버렸는데, 조금은 남겨둘걸 후회가 된다. 그때 그 마음은 진심이었고 주고 간 물건은 잘못이 없으니까.
한참 뒤에 만난 두 번째 애인은 아주 낭만적인 사람이었는데, 그는 내게 편지를 쓸 때 항상 편지지에 자기가 쓰던 향수를 뿌려서 부치곤 했다. 종이봉투 만으로는 편지지에 담긴 향이 사라지는 게 두려웠던 그는 편지 봉투를 밀봉 가능한 비닐에 씌워 보내곤 했다. 밀봉된 비닐 속 편지들은 더 큰 우편 봉투에 모아져 여전히 보관 중이다. 첫 번째 애인의 스킨로션 향은 증발하는 물리적인 느낌만 남은 반면, 두 번째 애인의 향은 화학적인 형태 그대로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꺼내볼 수 있는 자리에 남아있다. 그러나 편지 봉투를 너무 자주 열면 남아있던 향기가 모두 사라질 수 있으니, 영원한 사랑이 환상이듯 그 향기 또한 영원하진 않다. 향기를 더 오래 기억하기 위해서 화학적 형태를 어떻게 물리적인 느낌으로 보존할 수 있을까 고민이 깊다. 그의 편지가 든 비닐봉지를 열었을 때 확 올라오는 향기가 건드리는 것은 비단 후각 뿐이 아니어서 더욱 보존 욕구를 자극한다. 그의 코트 안에 얼굴을 파 묻었을 때 얼굴에 닿는 옷의 촉감, 차가운 겨울 공기층과 구분되는 체온 등을 불러일으키는데, 이건 화학적 형태가 물리적 기억을 더듬는 거라 어찌 되었든 화학적 형태를 보존하는 것이 먼저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남자는 나와의 마지막 날, 꽃집을 들어갈 때 풍기는 향기의 향초를 선물하고 떠났다. 방 안을 향기로 가득 채우는 향초가 나와 같은 공간에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나 괴롭다는 것을 그가 떠나고 나서야 알았다. 의도적으로 향초를 다른 공간에 두었다가, 향이 주는 괴로움도 추억으로 보존하고자 나의 공간으로 다시 들여왔다. 고체 향초의 향은 얼마나 오래갈까. 액체 향수를 입은 애정 가득한 편지지 만큼이나 이별을 하는 순간까지도 자기의 향기를 내게 두고 가는 필사적인 그의 모습과 남은 향기를 더 오래 보존하기 위해 필사적인 고민을 하는 내 모습이 뒤늦게 겹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