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sooltory teller
Jul 04. 2020
그 술의 이름은?
영화 <너의 이름은>과 <쿠치카미자케>
"이것도 무스비야"
'신카이 마코토'감독의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하면 빼놓을 수 없는 대사입니다.
'무스비'는 일본어로 '매듭'이라는 뜻입니다.
영화에서는 '운명'과 같은 뜻으로 사용되어 남녀 주인공이 시공간을 뛰어넘어 만나게 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영화에서 두 주인공을 연결시켜주는 무스비는 무엇이었을까요?
여주인공 미츠하의 머리에 묶인 붉은 끈이었을까요?
정답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가장 중요한 장면이라고 소개한 장면에 숨어있습니다.
그 장면은 바로 미츠하가 술을 빚는 장면입니다.
미츠하가 빚은 술 '쿠치카미자케'가 두 주인공의 무스비였습니다.
도대체 쿠치카미자케가 어떤 술이길래 타키는 그 술을 마시고 시공간을 뛰어넘어 미츠하를 만날 수 있었을까요?
영화를 보면 꽤나 충격적인 장면이 있습니다.
미츠하가 씹던 쌀을 뱉어 술을 만드는 장면입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만든 술을 일본에서는 쿠치카미자케라고 부릅니다.
국내에서는 1614년 조선의 실학자 이수광이 지은 <지봉유설>에 유사한 방식의 술이 등장합니다.
일본과 같이 국내에서도 아름다운 여성이 씹었던 쌀을 이용했기에 '미인주'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사실 이러한 술이 동아시아만의 전통은 아닙니다.
심지어 북유럽에서는 신화 속에서 비슷한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그 내용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북유럽 신화라 하면 조금 어색할 수 있지만
우리가 영화 <토르, 라그나로크>에서 봤던 토르와 로키, 그리고 오딘이 바로 북유럽의 신들입니다.
오딘은 북유럽의 최고신이자 술을 관장하는 신입니다.
일반적으로 술은 억제가 필요하기에 신화에서도 서열이 낮은 신으로 묘사됩니다.
그리스의 디오니소스가 제우스보다 서열이 낮은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북유럽의 최고신은 술에 취한 신이었습니다.
포도주를 제외한 어떤 것도 먹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북유럽 신화에서
술은 곧 힘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신화에서 이 힘을 뜻하는 술이 빠질 수 없습니다.
우리가 찾는 술은 '크바시르'라는 신과 함께 등장합니다.
크바시르는 가장 현명한 신으로 신들이 뱉은 침을 모은 항아리에서 탄생합니다.
크바시르는 지구 곳곳을 돌며 자신의 지혜를 전달하던 중 그의 지혜를 탐낸 난쟁이들이게 살해를 당합니다.
난쟁이들은 그의 피를 벌꿀과 섞어 크바시르의 지혜가 담긴 술, 오드레리르를 만듭니다.
이 술을 마시는 자는 크바시르의 지혜를 얻고 특히 시를 잘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언제나 지혜를 갈망하던 오딘은 이 술을 훔쳤고 그 술을 통해서 인해 인간은 시적 영감을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위대한 시인들은 오딘의 술을 마셨다는 평가를 듣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 하필 시였을까요?
오딘은 궁디르라는 창을 사용했지만
사실 갈드르라는 주술 노래를 이용하는 마법사였습니다.
그래서 이 오드레리르의 시적 영감은 노래를 사용하는 오딘에게 큰 힘을 주었습니다.
크바시르는 벌꿀주 오드레리르로 더 유명하지만
신들의 침으로 만들어 낸 크바시르는 그 자체로 지혜였고 시였으며 힘이었고 술이었지 않았을까요?
전 세계적으로 이러한 술이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비밀은 바로 효소에 있습니다.
술은 발효 음료입니다.
이러한 술의 발효에 필요한 것은 당입니다.
과일에 존재하는 당은 자연적으로 발효에 적합한 형태로 되어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과실주는 적합한 환경만 갖춰진다면 스스로 만들어진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기에 각종 문헌에서 원숭이들이 과일로 술을 담가먹었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곡식의 경우는 과일과는 조금 다릅니다.
곡식의 당은 전분의 형태로 존재합니다.
따라서 전분을 발효에 적합한 당으로 변화시키는 당화 과정이 필요한데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효소입니다.
현재 이 당화 과정에 필요한 효소는 동양에서는 '누룩', 서양에서는 '맥아'라는 효모를 통해 이용됩니다.
하지만 가장 구하기 쉬운 효소는 바로 인간의 침에 있습니다.
쿠치카미자케는 바로 인간의 침에 있는 효소를 이용해 전분을 당화 시키고 그 당을 발효시켜 만든 술입니다.
얼핏 들으면 포도주보다 저급하다고 생각되지만
사실 효소를 이용해 곡물을 술로 만드는 방법은 인간이 포도주를 만든 지 2000년이 지나서야 발견한 방법입니다.
게다가 인간의 침을 이용했지만 '부패'하지 않고 '발효'를 시켰다는 점에서 쿠치카미자케가 포도주보다 훨씬 과학적인 술임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비록 예전 방식처럼 미인의 침을 이용하지는 않겠지만 여전히 쿠치카미자케는 구할 수 있습니다.
히다시의 와타나베 주조장에서 판매하는 쿠치카미자케 혹시 예전 방식의 미인주가 그립다면 직접 담가보는 것은 어떨까요?
혹시 타키처럼 시공간을 여행해 3년 전의 나를 만나 로또번호라도 건네줄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