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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ltory teller Jun 17. 2020

영원히 썩지 않는 물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과 <럼>

혹시 볼 때마다 동심이 떠오르는 영화가 있나요?

꿈과 희망의 나라와는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저에게는 바로 <캐리비안의 해적> 그런 영화입니다.


조니댑 아직 젊어 보이지만

캐리비안의 해적은 2003년 영화로

개봉한 지 무려 18년이나 지났습니다.

이제는 고전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캐리비안의 해적에서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것은

 시절 좋아했던 영화이기도 하지만

사실 캐리비안의 해적이 피터팬과 닮았기 때문입니다.


네버랜드를 카리브해로, 전 세계를 바다로 비교해 봅시다.

대항해 시대에서 언제까지나 카리브해의 해적으로 남고 싶은 잭 스페로우 선장의 모습은 외부세계와 차단된 채 네버랜드에 남고 싶어 하는 피터팬과 비슷합니다.


피터팬에 죽지 않는 후크선장이 있다면 캐리비안의 해적에는 죽지 않는 바르보사와 데비 존스가 있습니다.

이들은 다소 판타지적인 측면으로 잭선장이 현실을 부정한 채 판타지적 세상에서 갇혀있다는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그럼 잭 스페로우의 모습은 어떤가요?

 스페로우는 선장임에도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선원도 배도 여자도 위기가 닥치면 모두 버린 채 혼자 도망치기 일쑤고 어느샌가 돌아와 해적 놀이를 시작합니다.

이런 모습이 캐리비안의 해적의 일정한 플롯이지만 하고 싶은 것만 하려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하지만 캐리비안의 해적과 피터팬 다른 점이 있습니다.


혹시 18년 전 영화의 첫 장면, 첫 대사를 기억하시나요?

영화는 해적의 노래를 부르는 여자아이가 등장하면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노래는 이렇게 시작하죠


"마시게 친구들이여"


이것이 잭 스페로우와 피터팬의 다른 점입니다.

잭과 친구들은 매일 럼을 마십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매일 럼을 마십니다.

그가 얼마나 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는 엘리자베스와 섬에 갇히는 장면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잭은 섬에 갇히자 탈출할 생각은커녕 무언가를 찾기 시작합니다.

그가 찾는 것은 바로 럼입니다.


밤새 을 마시고 일어난 다음날 잭은 남은 을 모두 태우고 있는 엘리자베스를 발견곤 이렇게 말합니다.


섬에 갇힌 것보다 이 모두 타버린 지금이 가장 끔찍하다고.


2편인 망자의 함도 럼으로 시작합니다.

일등 항해사 깁스가 럼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며 등장하죠.


"망자의 함에 열다섯 놈갇혔네

럼주   하세

악마 밥이 되기 전에

실컷 취해보세

럼주   하세"


도대체 럼주가 뭐길래 해적들은 럼주를 그렇게 마신 걸까요?


럼주는 사탕수수 이용해 만든 술입니다.

사실 처음 사탕수수를 이용해 술을 만든 것은 인도와 중국이지만 증류주로 만들어진 것은 카리브해의 바베이도스섬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7세기 바베이도스섬의 문헌에 따르면

럼이 얼마나 독하고 지옥 같고 끔찍한 술이었는지 악마도 죽인다는 뜻으로 '킬 데빌'이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럼의 어원도 소동과 난동을 뜻하는 'Rumbullion'이라고 하니 럼이 대충 어떤 술인지 감이 옵니다.


지옥같이 독하고 끔찍한 데다가 마시면 난동을 부리는 술이라니 19세기 중반까지 웬만한 술집에서 럼을 팔지 않았던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름과 별명만 들어도 이 술은 해적과 정말 잘 어울립니다.


하지만 럼은 해적들 뿐만 아니라 해군들도 매일 마셨습니다.

해군들이 매일 술을 마신 이유는 바로 럼이 몇 개월이 지나도록 썩지 않는 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식수가 귀한 바다에서 은 물을 대신했습니다.


물이 썩지 않도록 물에 럼을 섞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괴혈병을 예방하기 위해 레몬과 라임을 넣기도 했는데 이게 바로 칵테일 '그로그'입니다.

'그로기 상태'는 바로 이 칵테일을 마시고 정신을 못 차리는 상태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럼은 해적의 술로 불리지만 해군들도 매일 마신 술인 만큼

영국 해군과 관련된 일화도 많습니다.

그중 하나가 영국 하면 생각나는 해군 넬슨 제독입니다.

영국은 넬슨 제독이 트라팔가 해전에서 전사하자 그 시체를 썩지 않게 하기 위해 럼 통에 넣어뒀습니다.

하지만  본국으로 이송하던 중 선원들이 술통에 구멍을 내 술을 빼먹어 본국에 도착해보니 술이 하나도 없었다고 합니다.

이 일을 계기로 럼은 '넬슨 제독의 피'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럼을 배급받는 영국 해군. 영국은 1970년까지 200여년간 럼을 배급했다.

비록 넬슨 제독은 죽어서 럼에 묻혔지만 사실 영국의 지휘관들은 보다는 위스키와 와인을 겼습니다.

다만 해적과 해군들에게 럼이 사랑받았던 이유는

역시나 가격이었습니다.


조금 자세히 설명하자면 사실 럼은 사탕수수에서 설탕을 추출해내고 남은 찌꺼기를 증류한 술입니다.

지금야 당밀로 불리는 그 찌꺼기가 비타민과 칼슘, 마그네슘이 풍부해 영양식품으로 쓰인다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노예가 풍부한 아프리카,

사탕수수를 재배하는 남아메카,

증류소가 있는 북아메리카

사이에 위치한 카리브해는 유난히 싼 가격의 럼을 구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카리브해는 유난히 싼 럼을 구할 수 있었지만

1980년대부터 국내에서도 유난히 싼 럼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롯데에서 출시한 캪틴큐가 바로  주인공입니다.

비록 양주에 부과되는 세금을 피하기 위해 럼을 20%도 섞지 않아 증류주가 아닌 기타 재제주로 분류됐지만 그 시절 비싼 양주 대신 쉽게 구할 수 있는 럼이었습니다.


캪틴큐는 다음날 숙취가 없는 술로도 유명했습니다.

마시면 다다음날 일어기 때문이죠.

그만큼 저급 술이었지만 캪틴큐는 킬데빌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어느 럼보다 럼스러웠던 술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캪틴큐는 2015년 생산을 중단했습니다.

값싸고 독한 맛으로 술로 이용되기보다는 불법양주를 제조하는데 많이 이용되 불명예를 안았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캪틴큐가 있었다면 굳이 사진 않았겠지만

막상 없어지니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비록 예전처럼 독하고 끔찍한 럼을 구할 수는 없지만

잔뜩 취하고 싶은 날엔 럼 한병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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