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sooltory teller
Sep 04. 2020
그 시절 그때 그 소주(3)
희석식 소주와 프리미엄 증류식 소주
과연 처음처럼이 참이슬을 뛰어넘는 날이 올까요?
당분간 처음처럼이 업계 1위의 자리를 탈환하는 것은
매우 어려워 보입니다.
하지만 불가능한 건 아닙니다.
현재 주류업계 부동의 No.1 진로 또한 한때는 2등이었으니까요.
진로가 2위에서 못 벗어나던 시절,
소주의 최강자는 '삼학양조'의 '삼학소주'였습니다.
'소주가 달다'라는 표현은 허세가 아닙니다.
쌀로 만들어진 소주는 원래 답니다.
적어도 할아버지가 마시던 소주는 분명 달았을 것입니다.
1965년 박정희 정부의 "양곡 관리법"이 시행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무슨 술을 쌀로 만들어? 먹을 쌀도 없는데!"
마치 조선시대에나 있을법한 이야기.
하지만 불과 50년 전 대한민국의 이야기입니다.
1965년 대한민국에서는 쌀로 만드는 술을 금지하는 '양곡 관리법'이 시행되었습니다.
양곡관리법이 시행되기 직전인 1964년 통계에 따르면 당시 전국 소주 생산 공장은 565곳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현재 국내 맥주 양조장이 100개를 겨우 넘는 것을 감안하면 그 수를 대충 가늠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양곡관리법 이후 수많은 양조장은 하루아침에 밀주 생산업소가 되었고 하나씩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하루아침에 불법이 되어버린 전통 소주.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했던가요?
양곡관리법 이후에도 꾸준히 성장한 두 개의 기업이 있었으니 바로 평안남도의 '진천 양조 상회'가 서울로 내려와 만든 '서광주조'와 목포 삼학도에서 이름을 따온 목포의 '삼학양조'입니다.
이 두 양조장이 양곡관리법에도 살아남은 방법은 바로 '희석식 소주'였습니다.
희석식 소주는 목표한 도수까지만 증류시키는 증류식 소주와 다르게 알코올 순도를 90% 이상으로 증류시켜 물을 섞는 방식으로 생산합니다.
따라서 희석식 소주는 맑고 투명하며 무엇보다 쌀이 아닌 다른 곡물을 이용해도 맛에서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쌀이 아닌 저렴한 곡식을 이용할 수 있었으며 같은 양의 곡식으로 더 많은 소주를 생산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희석식 소주는 양곡관리법에도 생산할 수 있었고 싼 가격으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국민 술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희석식 소주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바로 소주 하면 떠오르는 특유의 알코올 향입니다.
그래서 희석식 소주에는 이 특유의 냄새를 감추기 위해 올리고당과 자일리톨, 아스파탐 등 각종 첨가물이 들어갑니다.
이러한 첨가물들로 인해 소주는 증류주가 아닌 증류주에 첨가물을 섞은 혼성주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재료들을 보면 눈치챘겠지만
여전히 소주는 답니다.
술맛이 달다는건.... 아스파탐이 첨가되어 있다는 겁니다...
여하튼 1966년 서광주조는 진로주조로 상호를 변경하며 희석식 소주의 신흥강자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희석식 소주의 절대 강자, 아니 처음 증류식 소주부터 소주의 최강자는 앞서 언급한 삼학양조의 삼학소주였습니다.
지금 두 기업의 매출을 비교할 수는 없지만 1969년 삼학양조가 냈던 세금은 당시 진로주조의 두배였습니다.
하지만 1971년 갑작스러운 검찰 수사와 탈세혐의로 삼학양조는 쇠퇴의 길을 걷게 됩니다.
이 검찰 수사는 삼학양조가 김대중 전 대통령을 도왔다는 의혹에서 시작된 보복수사라는 이야기가 있지만
그 이유가 무엇이든 1973년 삼학소주는 세 마리의 학이라는 브랜드만 남긴 채 사라졌고 그 이후 진로는 업계 1위의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게 진로는 희석식 소주 시장을 장악했습니다.
하지만 진로가 1위를 놓친 소주시장이 있습니다.
양곡관리법이 개정된 후 다시 생산이 시작된 증류식 소주, 프리미엄 소주시장입니다.
현재 프리미엄 소주시장의 1위는 화요입니다.
(2005년 출시된 프리미엄 소주 화요의 이름 역시 크로스포인트에서 지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2등에 머무를 진로가 아닙니다.
아니 사실 진로는 화요보다 먼저 프리미엄 소주시장을 공략해 시장을 장악할 예정이었습니다.
때는 참이슬이 등장하기 전인 1997년.
진로는 오크통에 숙성시킨 증류식 소주를 출시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경영난과 IMF로 인한 얼어붙은 소비에 프리미엄 소주는 세상에 등장할 기회를 잃었습니다.
세상에 등장하지도 못한 비운의 술은 그렇게 10년 동안
오크통에서 강제 숙성당하게 됩니다.
하지만 기다리면 때가 오는 법, 2005년 화요가 프리미엄 소주시장에 문을 두드리며 등장하자 2007년 마침내 진로는 애물단지 오크통에 숨겨두었던 소주를 세상에 내놓습니다.
그 이름하여 '일품진로'
하지만 10년이나 오크통에 숙성된 소주는 희석식 소주에 비해 10배나 비쌌고 소비자가 이리저리 고민해보는 사이, 또 한 번의 금융위기가 찾아옵니다.
그렇게 일품진로는 다시 사라집니다.
그래도 인생은 삼세번,
일품진로는 2013년 다시 시장에 등장합니다.
역시 삼고초려라고 했던가요?
세 번째 프리미엄 소주 도전은 대성공이었습니다.
10년간 오크통에서 속만 썩이던 소주는
이제 없어서 못 파는 소주가 되었습니다.
일품진로는 매년 평균 80프로를 웃도는 성장을 보였고 진로는 부랴부랴 다시 오크통을 채우기 시작했지만 아쉽게도 10년의 세월은 부랴부랴 채울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노는 물이 들어올 때 부지런히 저어야 합니다.
진로는 2018년 숨겨두었던 비장의 무기
'일품진로 18년'을 시장에 내놓습니다.
오크통에서 18년을 숙성한 소주.
조금은 어색하지만 당연히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심지어 국제 주류 품평회인 '몽드셀렉션'에서 '일품진로 18년'은 대상까지 수상하게 됩니다.
그리고 2019년 출시된 '일품진로 19년'과
2020년 출시된 '일품진로 20년'은 각각 9만 8000원과 13만 1000원에 출고되었지만 두배가 넘는 웃돈을 줘도 구할 수 없을 정도로 인기가 많습니다.
이제는 희석식 소주뿐만 아니라 프리미엄 소주전쟁입니다.
프리미엄 소주시장에는 2008년 이미 몽드셀렉션에서 금상을 수상한 최강자 '화요'가 자리 잡고 있고 롯데의 '대장부' 뿐만 아니라 '일품 안동소주', '려', '제왕', '오크젠'등이 경쟁하고 있습니다.
그 이 외에도 수제 맥주 브루어리처럼 소규모 수제 소주 양조장들이 하나씩 생겨나고 있습니다.
심지어 푸른 눈의 미국인까지 '토끼 소주'라는 브랜드를 론칭하며 이 전쟁터로 뛰어들었습니다.
편의점에서 수제 맥주가 아닌 수제 소주들을 볼 수 있는 날이 어서 다가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