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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 슬플 예정 58

성문 앞 우물가에 서 있는 보리수!

난 어렸을 때, 희한하게 가곡을 좋아했다. 


물론 고등학교 때, 신승훈의 ‘너는 장미보다 아름답진 않지만’으로 시작되는 노래에 발걸음을 멈추고 조용히 속으로 따라 부르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인가? 36번 이재민이라는 짝꿍이 소니의 휴대용 카세트를 들고 와서는 한쪽 이어폰을 내게 주며 ‘들어봐!’했는데, 이승환의 ‘너를 향한 마음’이라는 노래가… 크! 노래도 노래였는데, 그 쪼그만 기계에서 어떻게 노래가 흘러나오는지… 참 탐이 나더라는…

그리고, 빠질 수 없는 3인방! 김건모!

고등학교 때는 ‘슬픈 노래는 듣고 싶지 않아!’ 이 노래였고,, 그 이후로는…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그 얘기로 넌 핑계를 대고 있어’ ‘난 너를 믿었던 만큼 내 친구도 믿었…’ ‘오늘 밤은 이 세상에서 마지막이 될 것처럼 혼신의 힘을 다해서..’ 그러고 보니, 김건모도 히트곡이 어마어마했구나!

그중에서도 ‘아름다운 이별’이라는 노래를 제일 좋아했다.

눈물이 흘러 이별인걸 알았어
 힘없이 돌아서던 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만큼 너도 슬프다는 걸 알아
 하지만 견뎌야 해 추억이 아름답도록
 그 짧았던 만남도 슬픈 우리의 사랑도 이젠 
 눈물로 지워야 할 상처뿐인데 
 내 맘 깊은 곳엔 언제나 너를 남겨둘 거야
 슬픈 사랑은 너 하나로 내겐 충분하니까
 하지만 시간은 추억 속에 
 너를 잊으라며 모두 지워가지만 
 한동안 난 가끔 울 것만 같아
 두 눈을 감고 지난날을 돌아봐
 그 속엔 너와 나의 숨겨둔 사랑이 있어
 언제나 나는 너의 마음속에서 
 느낄 수 있을 거야 추억에 가려진 채로
 긴 이별은 나에게 널 잊으라 하지만 슬픈 
 사랑은 눈물 속의 널 보고 있어
 내 맘 깊은 곳엔 언제나 너를 남겨둘 거야
 슬픈 사랑은 너 하나로 내겐 충분하니까
 하지만 시간은 추억 속에 
 너를 잊으라며 모두 지워가지만 
 한동안 난 가끔 울 것만 같아

왜 그랬지? 누군가를 사랑했던 적도, 누군가에게 버림받았던 적도 없었는데,,, 그냥 노래가 좋았던 것일까? 희한하네..


그리고, 서태지와 아이들, 015B, NEXT!

대학교 신입생 때 영어동아리 동기들과 밤새 술 마시면 어김없이 흘러나오던 그 노래!

윤종신의 ‘교복을 벗고, 처음으로 만났던 너! 그때가 너도 가끔 생각나니? 뭐가 그렇게도 좋았었는지…’ 캬.. 감회 돋는다.

이 명곡을 철없던 시절이라, 노래방에 가면(그 시절엔 노래방, 비디오방, 락카페 등이 한창 유행했다), ‘교복을 벗고 알몸으로 만났던 너!’하며 친구들과 큭큭대곤 했다. 진짜 지금 생각하면 어찌 그리 유치했었는지…

그리고 누구더라! 집에 가는 버스를 기다리면 진짜 거짓말 안 하고 매일 라디오에서 나오던 노래도 있었는데,, ‘마음 울쩍 한 날엔, 거리를 걸어보고, 향기로운 칵테일에 취해도 보고!’

아! 아직도 그때 그 버스 정류장이 생각난다. 화장품 가게에 앞에 있었는데,, 아직도 거기는 버스정류장이려나? 803번 버스! 한 시간에 한 대만 온다던 그 버스! 어떻게 서울인데, 한 시간에 한 번만 운행하는지 이해가 안 되던 그 버스!


생각해보니, 나는 대중음악도 많이 좋아했었나 보다. 

그래도 나는 대중음악을 접하기 시작한 고등학교 전에는, 중학교 선생님(존함이 이 완자, 구자 쓰시던 분) 덕에 가곡을 무척이나 애정 했었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처음에 빠져들었던 곡은 ‘님이 오시는지!’


물망초 꿈꾸는 강가를 돌아 

달 빛 먼 길 님이 오시는지

갈 숲에 이는 바람 님의 발자췰까

흐르는 물소리 님의 노래런가

내 마음 외로워 한 없이 떠돌고

새벽이 오려는지 바람만 차오네


가사가 좋았고, 음색이 좋았고, 노래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좋았다. 꽃들이 살랑이고, 깊은 밤 달 빛이 은은하고, 갈대 밭은 다정하고, 그 길에 외로운 사람 하나! 

안 좋아하면 이상한 노래! 

여전히 중학교에서 이 노래를 음악시간에 가르쳤으면 좋겠다.

시간이 지나도 절대 잊혀지지 않으면 하는 것들이 있는데, 내게는 이 노래가 그렇다.

그 외에도, 

그대의 근심 있는 곳에 나를 불러 손잡게 하라! 그대 있음에,

누구의 주제런가 맑고 고운 금강산! 그리운 금강산,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녘에! 비목,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이 부르는 소리 있어! 보리밭,

이히 리베 디 조 비 두 미히 암 아벤트 운 탁 모르겐! 그대를 사랑해까지….

그러고 보니 독일 가곡이 많이 번안이 돼있네..

멘델스 존의 ‘노래의 날개 위에…’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중, ‘보리수’ 


성문 앞 우물가에 서 있는 보리수!

나는 그 그늘 아래 단 꿈을 보았네!

가지에 희망의 말 새겨 놓고서

기쁘나 슬플 때나 찾아온 나무 밑

오늘 밤도 지났네 그 보리수 곁으로

깜깜한 어둠 속에 눈 감아 보았네!


가사가 생각이 나지 않아, 인터넷을 뒤지다가, 신기한 것을 알게 되었다.

실제로, 배경이 된 곳은 바트 조덴 알렌도르프 Baad Sooden-Allendorf마을이라고… 

맙소사 실제 있는 곳이 배경이었어! 

http://wbs.werra-burgen-steig.de/index.php/bad-sooden-allendorf.html


구글로 뒤졌더니, 저런 마을이라고 한다. 저 곳에 우물과 보리수가 있다고 한다. 

겨울나그네! 

이름만 들어도 얼마나 차가워! 

하긴 슈베르트가 아닌가? 경제적인 어려움, 인정받지 못하는 젊은 예술가(어디서 반 고흐의 느낌이)!

31살에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며 요절한 가곡의 왕이어서 그런가?

제목부터 쓸쓸함이, 외로움이 묻어나 있다.

갈 길 몰라 서성이는, 그렇게 봄을 기다리는 자의 모습이 ‘보리수’에 그대로 녹아있는 듯하다. 음을 들어보라. 서성이는 발자국 소리, 보리수 나뭇잎 소리, 마음에 새겨진 오랜 우울함소리… 

외워서 부르라 해서 불렀던 노래였는데, 그 당시에는 피아노 음에서 전혀 알아채지 못했던 슬픔들이, 애써 토해내는 희망들이 결연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역시 우울증 때문에 내면이 심화되면 이런 게 좋다. 

https://www.youtube.com/watch?v=ltZn2WVLGdo

왠지 흑백의 외국 가수가 부르는 ‘보리수’가 멋질 것 같아서, 찾아본 유튜브!

초반의 보리수 낙엽이 떨어져 여기저기 바닥에 흩날리는 듯한 느낌의 피아노 연주에서부터 깊이 느껴보면 좋겠다. 쓸쓸한 계절의, 쓸쓸한 남자의, 쓸쓸한 마음을….

그래서 죽을 때에도 자신이 존경했던 베토벤의 곁에 묻히고 싶었던 것일까?(슈베르트가 베토벤의 관을 운구했다는 사실을 들은 적이 있다.)


https://www.google.com/search?q=schubert+grave&source=lnms&tbm=isch&sa=X&ved=2ahUKEwiH_szHjfzxAhVReX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에 가면, 공동묘지가 있는데, 위대한 음악가들의 무덤이 한 곳에 저렇게 묻혀있다.

슈베르트가 제일 왼쪽, 모차르트가 가운데, 오른쪽은 베토벤이다. 

2009년엔가 저곳을 가 보았는데, 비엔나에서 두 가지가 좋았다.

저곳을 방문한 기억과 소시지 먹은 기억이다. 

아! 맞다. 비엔나커피도!


그렇게 가곡들에 흠뻑 빠져 밤에 혹시 모르게 찾아 올 공황발작을 경계하고 있었는데, 

음악에 왜 그 용어들 있지 않은가?

라르고니, 안단테니, 알레그로니 하는 것들이 눈에 띄어 저게 정확히 뭘까 뒤져보니,,,

 

- Adagissimo(아다지시모) : 매우 느리게

- Largo(라르고) : 폭넓고 여유롭게

- Adagio(아다지오) : 침착하고 느리게

- Larghetto(라르게토) : 라르고보다 조금 빠르게 

- Adagietto(아다지에토) : 아다지오보다 조금 빠르게

- Andante(안단테) : 모데라토보다 조금 느리게, 나아가듯이

- Andantino(안단티노) : 안단테보다 조금 빠르게

- Moderato(모데라토) : 보통 빠르기로

- Allegretto(알레그레토) : 조금 빠르게

- Allegro(알레그로) : 빠르게, 명량하게

- Vivace(비바체) : 화려하고 빠르게

- Presto(프레스토) : 아주 빠르게

- Allegrissimo(알레그리시모) : 아주 빠르게

- Vivacissimo(비바치시모) : 화려하고 아주 빠르게

- Prestissimo(프레스티시모) : 아주 아주 빠르게


이렇다고 한다… 내가 아는 건,,,

라르고, 아다지오, 안단테, 모데라토, 알레그레토, 비바체?

이 정도!

진짜 어느 정도 연습하고, 익혀야 저들을 맞출 수 있을까? 

화려하고, 빠르게랑 아주 빠르게를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인가?

게다가 화려하고 아주 빠르게? 그 경계를 어찌 구분할 수 있지?

새삼 전문가들의, 성악가들의 위대함에 마음이 저린다.


나는 나의 상태를 어떤 식으로 치유하려 하고 있는 걸까?

비바체는 확실히 아니고,

알레그레토? 알레그로?

나는 원래 괜찮은 사람이야! 잠깐 그런 거니 빨리 원위치로 돌아가야 해!

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을 읽고, 

‘아! 이제 됐다! 괜찮아졌다!’ 했다.

그리고는 하루에 한 알 먹는 약도 끊고, 잘 지내는가 싶었는데, 어젯밤에 여지없이 찾아왔다. 물론 강도는 전에 비해 현저히 낮았다. 시간도 짧았다.

그래도…

누가 그랬다.

‘좋아졌다고 오바하다가는 더 아프다!’라고…(나는 그걸 ‘좋오아!’라고 부른다)

오바하지 말아야겠다.

내게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

모데라토보다는, 라르고나 아다지오로!

내게는 아직 공간이 더 필요하다.

그걸 어젯밤 미처 떠나지 못해, 아쉬워 나를 찾아온 그 ‘발작’이 말해줬다.

‘그래야, 완전하게 나을 수 있다고!’

‘그래야, 다시는 아프지 않을 수 있다고!’


처칠이 그랬다.

‘만약 지옥을 통과하는 중이라면 멈추지 말고 계속 가라!’


침착하고, 느리게,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가야겠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니까!


여름밤!

잠 못 들고, 생각 정리하는 내 모습이,

보리수나무 아래서 황량하게 봄을 기다리는 겨울 나그네와 겹쳐진다. 

마음은 똑같을게다.


삶은 치열하고, 맹렬하고, 강렬하며, 잔인하고, 호되고, 엄하고, 날카로우니까!

그래도 폭넓고 여유롭게 맞설 예정!


#우울증 #공황장애 #불면증 #대상포진 #보리수 #가곡 #라르고 #아다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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