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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 슬플 예정 74

종교개혁을 기억하는 이유

나는 희한하게 철학이나, 역사, 문학, 예술, 음악, 오페라에 관심이 있었다. 아니 흥미를 느꼈던 듯하다. 특히 문학, 사학, 철학!

이름하여 문사철!

아마 역사를 좋아했는데, 역사 안에 문학과 철학이 함께 어우러져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가끔 등장하는 철학과 음악의 연관된 이야기도 흥미진진하다. 니체와 바그너가 아주 가까웠었다는 사실을 아는가? 물론 10년 정도 서로의 열렬한 팬이었다가, 서로 앙숙이 되기는 했지만…. 역시 너무 가까워지면 안 돼! 적절하게 거리를 둬야 한다. 정규분포상의 95%는 너무 가까워지면 결국 멀어지게 된다. 나머지 5%, 아웃라이어들만 아주 가까운 거리를 끝까지 유지한다. 


여하가 문사철은 돈이 안 들었다. 그냥 책을 읽기만 하면 됐다. 가난한 자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취미였다. 게다가 내성적이었던 나로서는 은근히 그런 시간들이 좋았다. 역사 속에서 존재하는 음악 천재, 철학 천재, 문학 천재들과의 만남은 조용한 짜릿함이었을 뿐 아니라, 고통의 현실을 잊게 해주는 진통제이기도 했다. 


여러 가지 역사들 중에, 나는 특히 루터의 종교개혁 이야기가 아직도 기억에 선명해서, 누구를 붙잡고 일장 연설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치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로 2박 3일을 PPT 없이 할 수 있는 것처럼!


십자군 전쟁이 끝나고 난 후, 로마 교황의 권위가 몰락하고, 교회의 부패는 심해져갔다. 성 베드로 대성당을 재건을 위해 독일에서 면죄부 판매가 이뤄지자 성서학자 마르틴 루터가 반발한다. 95개 조 반박문을 통해 ‘면죄부를 사면 죄를 사해준다는 게 말이 되느냐? 성서는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다. 교황이 그런 거다. 교황도 하나님이 보기에는 그냥 사람이다!’. 이에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보름스에서 루터를 재판하게 되고, 루터는 결국 교황에 의해 파문당하게 된다.

그러나, 루터를 따르던 사람들이 교회를 만드는데, 이게 ‘프로테스탄트’이다. 저항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등장하는 사람 ‘장 칼뱅’, 스위스, 구원 예정설!

‘면죄부를 산다고 구원되는 게 아니다. 선택된 사람들만이 구원된다! 그러니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

칼뱅파는 잉글랜드에서 청교도로, 프랑스에서 위그노교로, 스코틀랜드에서는 장로교로 퍼져나간다.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책 앞부분에 이런 내용들이 나온다. 난 거기서 개신교와 청교도, 위그노교, 장로교의 기원을 정리할 수 있었다. 

이런 개신교들의 확장으로 구교 카톨릭은 예수회를 만들어 더욱 엄격하게 대처해 나가고, 이는 신교와 구교 간의 전쟁을 촉발하게 된다. 프랑스 위그노 전쟁, 독일 30년 전쟁이 그것이다. 특히 독일 30년 전쟁은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마무리되는데, 개신교들이 그 지위를 부여받고, 스위스, 네덜란드가 독립을 승인받게 되는 계기이다. 


과거 역사가 종교와 정치, 전쟁에 의해 진행되었다는 사실은 흥미진진하지만, 내게 종교는 짐짓 삶의 골칫거리였다.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큰 형은 교회를 저렇게 신실하게 다니는데, 왜 이리 사람을 힘들게 하는지… 믿는 건 좋은데, 가정의 평화를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 때문에 고등학교 때 나는 Anti-christian이었다. 그 후로 어찌어찌해서 교회를 다니면서도 아직도 창조론이 아니라, 진화론을 믿고 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건 아직 모르겠고, 역사 속에 존재했다는 것은 아는 정도!

이제 실제인지, 아닌지 규명하고 싶지도 않고, 알고 싶지도 않다.

그게 뭐 그리 중요한 일인가? 성경말씀에 좋은 내용들이 있다. 그게 좋다.


고등학교 때 너무 힘들 때에 애타게 하나님을 찾았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답이 없으셨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지 않을 거야! 나는 누구를 해하지도 않고, 착하게 사는데, 왜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하시는 걸까? 진짜 하나님이 계신다면 내게 이럴 수는 없어!’ 


그러면 큰 형이 그랬다.

“하나님은 견딜 수 있는 고통만 주신다!”

그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말이냐고 따졌다. 당장 죽겠는데, 그리고, 거기에 더 힘들게 하는 게 큰형인데, 교회에서 그렇게 가르치냐고.. 그러면 난 교회 안 가겠다고…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나는 참 어렸다. 

마땅히 내가 이겨내고, 해결해야 했을 일을, 절대자를 찾고, 절대자가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며 원망하고… 초등학생 같다. 넘어지면 일어나야지.. 왜 '엄마'를 찾냐고.. 왜 우냐고.. 그런다고 누가 도와주냐고… 그런다고 안 아프냐고…


그래도 선을 넘은 고난에는 나도 어쩔 수 없이 신을 찾게 되고, 원망하게 된다. 왜 찾아놓고 원망하는 걸까? 신도 참 힘들겠다. 불러서 왔더니 원망해! 그렇다고 없는데 원망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일단 불러다가 내 앞에 앉혀놓고, 원망을 해도 해야 하지 않을까? 

어제, 오늘 다시 잠 못 드는 밤이 왔고, 장어 헤엄치듯 발작이 내 몸을 훑고 지나갔다. 

나는 걱정하는 걸까?

나는 욕심내는 걸까?

걱정을 한다면 나는 무엇을 걱정하는 걸까?

욕심을 낸다면 나는 무엇을 욕심내는 걸까?

내게 걱정할만한 자격이 있는 걸까?

내게 욕심낼만한 자격이 있는 걸까?


나는 내려놓지 못하고, 왜 아직 이러고 있는 걸까?

참으로 위대해지기 어렵다.


완전한 크리스천은 아니지만, 성경엔 내가 좋아하는 몇 가지 구절이 있다.

그중에 고린도 전서! 사도 바울이 고린도(지역)에 있는 교회 회원들에게 보낸 편지(성경에 숨어있는 역사도 재미있다)인데, 몇 장 몇 절인지는 모르겠는데,, 

왜 그,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그 노래..

찾아보니 이렇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난이 한창 나를 휘감고 있는 때이다. 그래서 밤에 잠 못 자고, 숨 못 쉬는 이틀이다. 장 칼뱅 말처럼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가야 할 것이다. 

아무리 힘들고, 고되고, 거칠고, 어렵고, 고단하고, 곤란하고, 부딪히고, 불편하고, 우울하고, 걱정되고, 화나고, 답답하고, 막막하다 할지라도, 내 삶은 사랑받아야 하니까!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친절한 것이니까 나는 참아야 하고, 나는 친절해야 할 것이다.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니까 나는 드러내어 말하지 아니하고, 태도나 말에 예의를 구하고, 내 유익이 아니라, 남의 유익을 위해 살아야 할 것이다. 

사랑은 성내지 아니하므로, 누군가 내게 거짓말하고, 나를 궁지에 몰아넣는다 해도 노여워하지 않아야 할 일이다.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므로,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생각지도 아니할 일이다. 

다만 모든 것을 참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딜 일이다.

묵묵히 모든 것을 참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딜 일이다.

말없이 모든 것을 참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딜 일이다.

잠잠히 모든 것을 참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딜 일이다.

소란하지 않게 모든 것을 참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딜 일이다.


이렇게 여러 번 ‘참고, 믿고, 바라고, 견딜 것’을 적고 나니 좀 위안이 된다.

역시 삶에는 원칙이 필요하다.

길을 잃을 때 되새기면 힘이 난다.

어찌할지 몰라 헤매게 될 때에 답이 된다.

포기하고 싶을 때에는 희망이 된다.


그 원칙과, 힘과, 답과 희망으로 새벽을 기다려야겠다.

밤도 외로울 테다.

어둡고, 조용하고…

그러니 나라도 잠들지 않고 깨어서 이 ‘밤’ 곁에 있어줘야겠다.

밤이 내게 말하는 언어에 귀 기울이며, 어려움 뒤에 결국 달콤함이 올 거라는 위안을 받고 말리라.


그 위안으로 이 발작과 싸워야지.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더니 그게 뭔 말인지 알 것 같다.


삶은 고통이다.

알고 나니, 다행이다.

그래서 잔잔하게 슬플 예정!


#종교개혁 #우울증 #고린도전서 #장 칼뱅 #프로테스탄트 #마르틴 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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