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계란 후라이가 슬프다
2024년 12월, 몇 일 전의 비상계엄령 사태로 나라가 시끄럽고, 오래간만에 찾아온 몇 번의 공황발작! 나의 뇌는 여전히 충격에 취약하다는 것을 알게 된 요 몇 일. 뉴스에 온 정신을 빼앗기고, 일상적인 생각마저 쉽지 않은 밤 11시 반.
고등학교 2학년 아들이, 독서실에 돌아와서,
“아빠 배고파요!’라고 했다.
부랴부랴 냉장고를 뒤져, 계란 3개를 꺼내들고, 가스레인지 앞에 섰다. 후라이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적절히 뜨거워졌다 싶을 때, 계란을 차례차례 깨뜨렸다. 완숙? 반숙? 잠깐 고민하다, 밤이라서 완숙으로!
아들이 식탁에 앉아 내가 만든 계란 후라이를 한입 베어 물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알 수 없는 감정이 차올랐다. 내 눈앞에 있는 아이는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언제 이렇게 컸을까?" 갑작스레, 나는 모든 것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세월의 흐름, 지나간 시간, 그리고 다가올 미래. 그 순간, 알 수 없는 슬픔과 깨달음이 내 안을 채웠다. 눈물이 하나 똑 떨어졌다. 내가 왜 이러지?
내가 느낀 것은 단순히 아들이 컸다는 사실 때문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은 세월이 흘렀다는 데서 오는 깊고 묵직한 무게였다. 18년 전에 신생아 냄새 폴폴 풍기며 내 품에 안겨 울던 아이는 이제 훌쩍 자라, 독서실에서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나이가 되었다. 나는 그의 성장에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내 젊음이, 나의 시간이 얼마나 빠르게 지나갔는지를 깨닫게 되고야 만 것이다. 시간은 참으로 잔인하다. 거울 속 내 얼굴에는 젊은 날의 흔적 대신 주름이 자리 잡았고, 머리카락에는 흰 빛이 더해졌다. 눈가의 주름과, 무거워진 눈꺼풀. 늘어진 목주름, 주글주글 해지는 손! 빛나던 생기 가득한 눈동자는 이제는 조금 더 깊어진 듯 하고…
한 때 나는 거창한 꿈들에 매료되어 있었다. 오지를 탐험하고, 세계 7대 불가사의를 탐험하고, 비가 많이 내리는 우기에 거머리가 비처럼 내린다는 히말라야 산맥을 오르고, 1년에 한 달 정도만 열린다는 뉴질랜드의 어느 공원을 가 보고… 노르웨이의 피요르드 해변을 목도하고…
그런 생각만 해도 가슴벅찬 꿈들은 어느새 조금씩 뒤로 밀려나 있었다. 언젠가 시간이 충분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 그 꿈들이 손에 닿을 것 같지 않다 느낀 것일까? 내가 슬픈 이유는 아들이 잘 자라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 꿈들이 멀어진 때문일까? 내 꿈이 아들의 미래로 바뀌고, 나의 열정이 아들의 성공을 위해 쓰이면서 나는 내 자신을 잊어버리고 있는 것일까? 소중하고 귀하면서도 뭔가를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슬픔일까? 사랑일까?
아들이 내 곁에 있다는 사실, 그가 나의 일부라는 사실이 가슴 벅차다. 나는 그를 위해 살아왔지만, 나 또한 나 자신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메시지를 아들이 보내고 있는 듯 하다.
이 밤을 오래 기억할 것 같다. 내 삶이 완벽하지 않아도, 내가 이 순간을 소중하게 여긴다면, 그게 충분한 행복은 아닐런지…
계란 후라이가 내게 많은 것을 알려주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