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회사 생활로 남은게 우울증, 불면증, 불안장애라니
prologue
아버지 세대의 성실한 삶과, MZ세대의 나 자신을 위한 삶.
그들이 사는 시대 중간에서 줘터진 나의 회사생활.
스타트업 특성상 20대 첫 사회생활을 하는 직원들이 많았다.
직장인들의 3.3.3 법칙이라고 퇴사 욕망은 3일, 3개월, 3년 주기로 온다는데 10년 넘게 퇴근도 안하고 일만하는 팀장을 보니 얼마나 궁금했을까.
결국 그 끝이 '회사 40층에서 떨어지면 고통 없이 죽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만든 우울증, 불면증, 불안장애와 마주하게 될지 몰랐지만.
1-3년
꺅 대박! 내가 좋아하는 일이 뭔지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른다는 사람들도 많던데 일찍 하고 싶은 일을 발견해서 입사한 회사가 너무 귀했다
열심히 했고 회사가 성장해 가는 것을 보며 성취감을 느꼈다
처음 하는 일들도 많았지만 처음이라 재미가 있었고 잘하고 싶었다
돈까지 잘 벌게 되면 더할나위 없었고
4-6년
일하는 건 자신 있었는데 사람관리는 영 소질이 없었다.
그냥 직원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만 할 줄 알던 껍데기 팀장. (그래도 직원들은 좋아해 주는 팀장이라 혼돈의 카오스가 따로 없었다)
하지만 매번 회사욕, 대표욕, 상사욕을 하는 직원들을 보며 인류애를 잃고 있을때 쯤 대표님이 새롭게 업종을 바꾸셨다.
출근시간은 한 시간이나 빨라지고 퇴근시간은 정확하지 않지만 같이 해보지 않겠냐며 제안을 하셨고,
생각할 시간을 주겠다고 했는데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말했다.
“저 할게요!”
다시 시작이다.
직장 생활을 한지 꽤 시간이 되었지만 또 새로운 걸 도전하고 하나하나 다 알아가야 하는 게 재미있었다.
맨땅에 헤딩이라 어느 하나 쉬운 건 없었지만 새 거다! 신상은 늘 짜릿하다!
변태도 아니고 쉬운 건 지루해하고 어려워야 재미와 성취감을 느낄 때라또 나는 일이 재미있었다.
7-9년
죽도록 매달렸지만 어느 하나 잡지 못했던 암흑기.
개성 강하던 직원들을 끌어주는 것도 제대로 못해 그러다 보니 개인업무도 제대로 못해, 성과도 못내, 항상 열심히 했고 열심히 하면 다 잘되는 줄 알았는데.. 포기만 안 하면 다 해결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만성피로, 일중독, 완벽주의, 스트레스, 불면증으로 망가지면서도 망가진 나를 외면했다
매일 일하면서 두통에 온몸이 아파 타이레놀을 먹으면서 일했고 버텼다.
이런 것도 제대로 못하는 내가 가치가 없어지는 거 같았고 자존감이 떨어졌다
나 자신이 자존감이던 내가, 일의 성과가 내 자존감이 되었다.
점점 금요일이 무서워지고 일요일은 잠을 거의 못 잤다.
머릿속에는 하루종일 '일생각, 뭐가 문제지?, 어떻게 하면 더 잘될 수 있지?, 대표님이 말한 목표 매출을 달성하려면 어떻게 해야하지?' 나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었다.
완전히 고장이 났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10년-ing
고장 난 건 고치면 된다.
내가 아프다는 걸 인정하고 정신의학과에 방문했더니 '불면증 불안장애 우울증' 처방받았다
정신력이 약해서 걸리는 병들이라 생각했었더라 받아들이고 인정하기 꽤 힘들었지만.. (내...내가?)
병원에서는 온몸이 스트레스를 받아들이지도 못할 만큼 망가졌다고 했다.
어떻게든 먹고 사는게 급했으니 멈출수는 없었다. 이 상황을 이겨내야 했다.
그래서 매일 작은 일이라도 일기처럼 오늘 한 일을 성과처럼 작성했다. (심지어 퇴근할때 노란불 신호를 잘 지킨것도 오늘 한 일 리스트에 작성했다)
그리고 속상하고 답답했던 생각을 생각으로만 정리하지 않고 글로 정리했다.
한번 써내려 간 뒤 다시 보면 굳이 스트레스받을 일이 아닌데도 나는 상처받고 자존감을 깎아내리고 있었다.
나 자신의 마음을 좀더 들여다보기 위해,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 생각하려 매일 명상을 듣기 시작했다.
그냥 들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처음에는 그래서 어쩌라고(?)였다.
자꾸 다 내려놓으라고 하니까.
죽을 때 싸들고 가는 거 아니라니까. 욕심부리지 말라니까.
그럼 왜 사는 거지?라고 불만만 가득했으니까
재미있게도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마음이 편한 게 뭔지 알게 되었다.
금요일이 좋아졌고 일이 다시 재미있어지는 거 같다.
그 후로 욕심부리지 않고 일의 과정에 더 최선을 다하게 되었다.
이게 회사에서 뿐만 아니라 인생에서도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매번 성과, 결과 우선적인 회사생활만 하다보니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마음이 점점 불안하지 않아 진다. (이 또한 정신과 약의 효과는 대단했다. 잠만 잘 자게 되었는데 모든 증상들이 나아지고 있으니..)
나를 좀 더 돌보기 위해서 이제 아프면 병원을 가기 시작했다. (미련하게 타이레놀 붙잡지 않는다)
하루 먹는 약이 3가지가 넘지만 조금씩 고쳐가보려 한다.
여전히 회사는 잘되고 내 일은 더 잘하고 싶지만 내가 신도 아니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최선을 다하자!
이미 지나간 과거를 생각하며 오늘도 불안하게 출근하던 내가, 이제 과거는 과거이며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자고 생각한다.
힘내자!
.
.
.
그리고 나는 퇴사했다.
6개월의 긴 고민, 그리고 시간을 소비했지만 결정을 내린 뒤 실행은 빨랐다.
뭐가 문제인지 분석 완료.
그리고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 분석완료.
그래서 나는 후회 없이 퇴사했다.
Epilogue
~ 퇴사 6개월 후
여기까지가 6개월 전의 나였다면 지금은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 자신이라는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책임감을 버리지 않는 선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보자고...
아니, 그보다 우선 쉬어보자고. 복잡한 생각 없이 멍 때리고, 못 자던 잠으로 망가져버린 내 마음과 신체를 돌보는 시간을 6개월을 가졌다.
그리고 이제 “팀장님 어떻게 11년 동안 일할 수 있었어요?"라고 물으면 사뭇 다른 대답을 하게되었다.
"그냥 나를 버리고 망가뜨리고 내 인생과 자존감을 버리고... 내 인생이지만 월급 주는 사람의 눈치를 보며 인정받으려 몸부림쳤더니 일하고 있더라"
무조건 잘해야 한다는 욕심을 버리고, 힘들고 아픈 나 자신을 인정하자 내 삶의 가치관도 변해갔다.
'나는 신이 아니라서 죽도록 노력해도 결과가 항상 좋을수 없고 얼마든지 실패할 수 있다'
그리고 어떤 회사든 오너들은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거기에 내 자존감을 떨어뜨릴 필요 없다.
취준생의 경우 면접에 떨어진 경우도 똑같다.
내가 부족해서 떨어진 게 아니라 단지 회사에서 원하는 인재상과 달라서 떨어진 것이다 (취준생분들 믿어주세요. 저 10년동안 애기들 면접 봤어요)
그냥 오늘 하루, 눈뜨고 밥만 먹어도 큰일했다! 박수!
항상 잊지 말자.
꼭 잘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귀찮아서 눈뜬채 누워있고 몸 망가지게 밥도 챙겨먹지 않았다면 궁뎅이 찰싹찰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