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6시 알람이 울린다.
남편은 아직 반쯤 감겨있는 눈을 억지로 뜨면서 몸을 일으킨다.
조용히 내 이마에 입맞춤을 한 후 화장실로 향한다.
몇 분 후 나온 남편은 에일리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평범하다 못해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현실이 아닌 것 같은 기괴함을 마주한날,
암진단을 맞은 날의 충격을 이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날 이후,
앞으로의 깜깜하고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최고조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 안에는 커다란 죽음뒤에,
이별이 있었고, 고통이 있었고, 좌절이 있었고, 온갖 종류의 허무가 깔려있었다.
일단 유방암 8년 차인 아는 지인을 통해 정보를 얻었다.
그녀의 입을 통해 흘러나온 수많은 얘기들은,
나에게 조금의 안정감과 더 큰 두려움을 안겨줬다.
비슷한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모인 온라인 카페에 가입도 했다.
전해 들은 바대로 사망률이 가장 높은 암이기에 직접 카페활동을 하시는 분들은 극소수였고,
대부분은 환자의 가족들이 카페에서 정보와 응원들을 주고받는 상황이었다.
이제 햇수로 7개월 차에 접어든 나는,
암진단을 받은 누군가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해줄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막막했던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던,
아니, 답을 찾을 수 없었던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서 수없이 떠올렸던 질문들을.
앞으로 어떤 상황에 어떻게 반응하며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까.
항암치료를 하고 있는 환자에게 가장 이상적인 하루의 일과는 어떤 것일까.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음식을 먹고, 운동은 얼마만큼 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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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쓰인 글들은 지극히 나의 개인적인 생각과 생활방식이므로, 암을 이겨내는데 어떠한 결과를 가져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일상들이 암환자의 하루를 가늠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써보려고 한다.
항암치료를 선택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가와 보조치료를 병행할 것인가.
항암치료의 필요에 대해서는 이전에 다른 글에서 언급하기도 했고,
지금 나의 치료상황이 대변해 줄 것이라 생각한다.
가끔 주변에서 호전되고 있는 나의 건강상태를 보며 보조치료는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계신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나는 그 어떤 보조치료도 받지 않았다.
췌담도암 카페에 들어가면 수많은 보조치료들의 소개들이 나와있다.
도표로 입증된 사실들을 보고 있자면, 내 생명줄 또한 그 줄들에 매달려 있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는 나도 그 도표 위에 편승해 함께 생존율을 올리고 싶어진다.
현실로 돌아와 그 치료를 받을 시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환산해 본다.
1회에 수백, 수천을 호가하는 치료부터 저렴한 치료들까지 매우 많다.
하지만 소개하는 글들에서는 하나같이 효과와 비용은 정비례하고 있다.
비쌀수록 효과가 있다는 말이다.
왠지 저렴한 약들이나 간단한 치료들은 마음의 안정감을 가져다주는 정도의 효력에 그칠 것 같은 느낌이다.
암진단 초기에 밤을 새우며 며칠 동안 카페의 대부분의 글들을 정독했던 나의 머릿속에는
‘보조치료를 안 하면 죽는다’라는 공식이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막상 병원에서 진행하는 항암치료에도 어마어마한 금액이 들어가는데, 보조치료까지 병행하다가는 나하나 살자고 우리 가족의 미래까지 구덩이로 함께 끌고 들어갈 판이었다.
그래서 좀 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보기로 했고, 병원에서 진행하는 항암치료를 잘 받고 추이를 살펴보면서 보조치료를 병행하기로 마음먹었다.
솔직히 불안하긴 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보조치료를 하면서, 내 상태가 호전된다면 이것이 보조치료 덕분인지, 항암제 덕분인지 면역항암제 덕분인지 알 길이 없지 않을까.
한 단계씩 밟아나가야 진짜 효과를 나타내는 보조치료를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다행히도 지금까지 나는 그 어떤 보조치료 없이 병원에서 진행하는 항암치료만으로 수술을 할 수 있을 만큼 상태가 좋아져 있다.
아마도, 큰 이변이 있지 않는 한은 나는 병원에서 이루어지는 항암치료 이외에 타 기관의 보조치료는 하지 않을 듯하다.
식단과 운동
췌장, 담도 쪽 소화기관에 이상이 생겨있는 나는 진단당시 죽 한 그릇도 소화해 내기 힘든 상황이었다.
속이 계속 울렁거리고, 몇 숟갈 먹어도 구르륵, 꾸르륵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요동치는 소화기관에 무엇인가를 넣는다는 것 자체에 두려움이 생겼었던 것 같다.
가족들과 함께 인터넷에서 수많은 정보들을 검색했다.
유튜브는 어마어마한 정보들을 담고 있지만 가장 큰 단점 또한 존재한다.
검증되지 않은 정보도 어떠한 필터링 없이 올라갈 수 있다는 것.
아무거나 보고 그대로 습득했다가는 득 보다 실이 더 클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처음엔 먹지 못해서 조심했고, 항암치료가 시작되면서 병원에서 정확한 지침을 가르쳐주었기에 그대로 따르려 노력했다.
흔히들 몸에 좋은 야채나 과일의 좋은 영양분을 한꺼번에 섭취하기 위해서 주스로 갈아먹는 것이 좋다 생각하지만 항암환자들에게는 갑작스러운 혈당을 높일 위험이 있는 액체보다는 어떻게든 건더지 위주로 먹어야 한다는 것도 후에 알게 된 사실이다.
첫 항암 후 2주 동안 몸무게가 7킬로가 빠졌다.
안 그래도 소화도 안되는데 울렁거림까지 심해서 침대에서 거의 일어나지 못했다.
원래 한 덩치 했던 터라 그나마 버텨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상태로 가다가는 못 먹어서 기력이 달리고 이후에는 멘털이 나가고 거의 암에 지배당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어떻게든 먹어보려고 애썼다.
그럼 어떤 걸 먹었냐. 그냥 먹고 싶은 건 다 먹었다.
너무 입맛이 없을 땐 아이스크림도 먹고 라면도 먹었다.
완전히 기름진 음식만 좀 피했을 뿐 가리는 것 없이 다 먹었다.
물론 술은 완전히 끊었다.
다행히 자극적인 음식들이 들어오고 나서 나의 울렁거림은 많이 가라앉았고, 이후 항암효과도 좋아서 소화가 잘 이루어졌기에 지금은 그때 빠졌던 몸무게가 다시 원상 복귀되어 있다.
소화기계통 암환자들은 소화가 잘 안돼서 잡곡밥보다는 흰쌀밥을 먹는 게 좋다 하지만, 나는 현재 소화가 안 되는 느낌이 없기에 쌀과 현미 보리를 1:1:1로 섞은 잡곡밥을 먹는다.
차가버섯 우린 물을 수시로 마시고, 신선한 채소 위주로 먹되, 먹고 싶은걸 굳이 참지는 않았던 것 같다.
식단이랄 것도 없는 나의 식단은 이렇게 여전히 진행 중이다.
지금은 이대로도 항암이 잘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추가적으로 무언가를 제한할 필요성은 느끼지 못하고 있다.
운동은 컨디션에 따라 집에서 사이클을 40분~1시간 정도 꾸준히 타고 있다.
날씨가 좋은 날은 집 주변의 강변을 한 시간 정도 산책하다 들어온다.
이것도 항암직후에는 힘들어서 못하는 경우들이 많아 일주일에 3,4번 정도라도 유지하려 노력 중이다.
항암치료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뭘까.
진단 후 지금까지 늘 머릿속에 머무르고 있는 하나의 질문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정답은 하나로 귀결되는 것 같다.
그건 ‘의지’ 혹은 ‘마음가짐’이다.
내가 무엇인가를 열심히 한다고 해서 바뀔 수 있다면, 그 무언가를 열심히 해 볼 텐데.
지금 나의 상황은 알 수 없는 ‘운’에만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다.
오랫동안 암을 연구, 관찰한 사람들도 결국은 재수 없으면 걸리는 병이 암이란 걸 인정한다.
실제로 췌장, 담도 관련 책을 3권 정도 정독해 봤을 때 공통점은,
비만, 유전, 식습관을 언급하지만, 추정된다 뿐이지 확인된 바는 없다고 나와있다.
그렇다면 나는 그야말로 재수 없어서 걸린 게 맞다.
그리고 하루라도 빨리 '인정'해 버리는 게 좋을듯하다.
다른 이들은 '왜 내가?'라는 질문으로 오랫동안 심란해하고 억울해한다 들었다.
하지만 희한하게 나의 억울함은 24시간으로 족했던 것 같다.
누구에게라도 일어날 수 있었기에 '그럴 수 있다'라는 인정이 빨랐던 것 같다.
그런 억울함과 원인도 모를 이유들을 찾으며 스트레스받을 바에는, 어떻게 남은 시간을 보내고, 어떤 마음 가직으로 살아갈지 고민해 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
암이 걸리고 난 직후 지인과의 얘기 중에 내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저는 진짜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어차피 이렇게 될 운명이었다면 남아있는 나의 운들을 다시 믿어볼래요. 전 운 좋은 사람이라 확신하거든요.”라고.
그리고 그 운들은 다시 내가 운이 좋은 사람이란 걸 확인시켜주고 있다.
항암제가 잘 맞았고, 큰 부작용 없이 잘 견뎌낼 수 있었고,
(머리카락이 빠지긴 했지만 지금은 다시 잘 자라나고 있어서 더벅머리가 되어있다.)
4기 환자로서는 기대할 수 없었던 수술까지 예약되어 있는 상황이다.
지난주에는 또다시 항암을 하고 왔다.
“박주혜 님은 특이한 케이스라, 다른 환자들과는 치료가 다르게 진행될 겁니다.”
라는 교수님의 말에 내가 얼마나 낮은 확률을 뚫고 있는지를 체감할 수 있었다.
4월 11일 수술 전에 작은 변수라도 있어서는 안 되기에 수술 최적의 상태로 만들기 위한 조치들이 이루어지나 보다.
그렇다면 이 ‘운’이란 것이 진짜 하늘의 운일까.
물론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건 나의 ‘의지’도 포함되지 않았나 싶다.
암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포기하는 사람’이란 말을 들었었다.
포기할 수 없었기에 삶의 의지를 가져야만 했고, 그 의지를 키울 수 있는 무엇이라도 움켜쥐었었던 것 같다.
그동안의 글들에서도 묻어났겠지만, 암으로 인해 많은 것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 포기의 과정들이 쌓여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한 과정을 준비하는듯한 느낌이 들어서…
어떻게든 ‘내가 없으면 안 돼’라는 생각을 계속해서 했었다.
그리고 내 멘털에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 건, 바로 가족과 지인들의 응원과 믿음들이었다.
암환자가 아닌 그냥 아내이자 엄마였고, 딸이었고, 동생이자 누나였고, 친구였고, 동료였고, 지인이었던 순간들 속에서 오래오래 이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의지는 새롭게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들과 함께 하는 순도 높은 행복의 순간에 암이란 존재는 나에게 그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
내게 진짜 사랑과 행복과 설렘을 가져다주려고 노력해 주는 이들로 인해
나의 의지이자 ‘운’은 앞으로도 계속 굳건하게 유지될 거라 믿는다.
그래서 항암으로 몸과 마음이 지친 환우들에게 같은 환우로써 하고 싶은 말은,
어떤 상황에서도 삶의 의지를 놓지 말자는 거다.
살아갈 이유는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의지를 세팅해 보자는 거다.
나 스스로도 수없이 되새기는 말이기도 하고.
"이 세상엔 내가 없으면 안 되는 것들이 너무 많다.
나는 세상에 꼭 필요한 존재다.
어떻게든 이겨내서 더 감사하고 행복하게
받은 것들은 갚고, 더 많이 나누며 남은 삶을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