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투병기록 1-1
2024.7.9. 화. 천둥을 동반한 비
"결혼은 하셨어요?"
"네? 애가 셋인데요? 그게 검사결과랑 상관이 있나요?"
침묵
"자세한 건 조직검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현재로서는 췌장암으로 보입니다"
...
"네?? 암이라고요?? 췌장암요??"
이후 내가 진료실에서 무슨 생각을 했었고, 무슨 말을 했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라디오에서 머나먼 누군가의 사연을, 책에서 읽었던 한 문장들처럼 그날의 그 공기와 의사 선생님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은 내게 현실감각을 1도 느끼지 못하게 했다.
얼떨떨한 나와는 달리 눈물샘은 현실자각을 먼저 했는지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잠깐, 진료결과 듣고 바로 출근하기로 한 학원을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암환자도 그것도 췌장암환자도 일을 해야 하나?
그나저나 오전 일찍이라 진료실에 대기가 길던데 이 의사 선생님을 나 혼자 이렇게 오래 잡고 있어도 되나.
이제 그만 설명하라 하고 나갈까... '였다.
나는 그때도 나의 안위보다는 내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한 책임감, 다른 이들에 대한 배려가 먼저였다.
내일 당장 입원해서 조직검사부터 하자할 때도 학원 걱정이 가장 먼저였다.
남에게 폐 끼치는 걸 기질적으로 싫어하는 나는 이제 모두에게 도움을 받아야 할 민폐캐릭터가 되어버렸다.
진료실을 나와 병원로비를 지나면서 비로소 아주 조금 현실감이 느껴졌다.
먼저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핸드폰너머로 전해져 오는 비명소리...
울먹이며 학원은 아무 걱정마라는 얘기에 당장의 걱정을 한시름 내려놓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래... 그랬던 것 같다.
로비의 의자에 앉아야 하는지 서야 하는지 주차장으로 가서 차에 앉아서 전화해야 하는지.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마 한평생 그렇게 작은 선택조차 결정 내리지 못한 적은 처음이었다.
로비를 지나 입구문을 통과하니 벤치가 보였다.
일단 보이는 벤치에 앉았다.
30도가 웃도는 습한 날씨에 천둥을 동반한 억수 같은 비가 쏟아지는 날이었지만.
습함도 더위도 느껴지지 않았다.
입원수속을 해야 했지만 지금 췌장암판정을 받은 사람에게 그런 이성적인 행위를 무감각하게 지시하는 병원사람들이 순간 원망스러웠다.
입원수속 종이를 옆에 내려놓고 우산을 걸쳐놓고 전화를 걸었다.
"오빠 나 췌장암이래"
...
"어디야? 일단 내가 그쪽으로 갈게"
전화를 끊고 눈앞에 보이는 풍경이 흑백 무성영화처럼 무음에 무채색으로 다가왔다.
퍼붓는 빗속으로 수없이 밀려오는 택시들.
그 속에서 내리는 수많은 사람들.
건너편에 보이는 약국들.
내가 앉아있는 벤치옆에 앉아있는 할아버지.
'좋겠다... 저 나이까지 가족들과 함께 나이들 수 있어서...'
나는 평소 낯선 사람에게 얘기를 거는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나는 조금이라도 지금 이 순간에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 현실감각을 깨워야 할 것 같았다.
"아저씨. 저 췌장암이래요."
"네?"
"저 오늘 췌장암 판정받았어요."
"아이고,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어쩌지. 애들은 없어요?"
"애가 셋이에요..."
그리고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
"아이고 우짜노. 그라문 서울로 가야지. 서울로... 아이고. 우짜노."
그리고 아저씨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주차장으로 걸어가셨다.
그래, 난 그렇게 하루아침에 암환자가 되었다.
누군가의 부모님, 누군가의 배우자, 그리고 책에서...
참 많이 들었었다.
암이라는 병.
단어가 가지는 엄청난 어둠과 무게감으로 암이라는 말만으로도 분위기를 어둡게 만드는 그 병.
언젠가 누군가가 암에 걸렸다 했을 때 뭐라 위로해야 할지 몰라 불편해했던 내가 떠올랐고.
오늘의 나는 그 누군가가 되어 앉아있다.
아저씨도 불편하셨을 것이다.
분명 아들이 차를 가지고 올 때까지 벤치에서 기다리기로 한걸 들었으니까.
나는 그렇게 하루아침에 암환자.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라 피하고 싶은 불편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홀로 앉아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미친 듯이 스쳐 지나갔다.
제일 먼저 떠오른 건 남편과 아이들.
우리 아이들... 내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줘야 하는데 이제 어쩌나.
우리 애들 결혼하는 것도 못 보고
우리 세연이 유진이 결혼하면 친정엄마가 없으면 서러워서 어쩌나
애기 놓으면 뒷바라지도 못해주고
나만 보면 "엄마 우리 오늘 뭐 먹어?"물어보는
우리 막둥이 은우는 이제 초등학생인데 그 긴 세월을 엄마 없이 커야 하나...
20살에 만나 내년이면 결혼 20주년을 맞이할 동안 정말 한결같이 사랑해 준 우리 남편...
모든 걸 나와 함께 해야 제일 즐겁고 행복하다는 우리 남편...
나 없이 애들 셋을 어떻게 키워나가나.
재혼은 하라 해야 하나.
그럼 우리 애들은 계모밑에서 커야 하나...
안 그래도 심장이 안 좋은 엄마에게 이 사실을 어떻게 얘기하나.
내가 그렇게 벌 받을 짓을 했나.
나름 착하게 열심히 산 것 같은데.
엄마 따라갔던 용하다는 점집에서는 왜 한 번도 내가 단명한다는 얘길 안 한 거지?
100세 인생에 50도 못살고 가면 단명 아닌가. 역시 점쟁이는 믿을게 못된다.
항암치료는 어떻게 하는 거고 췌장암은 발견하면 말기라는데 항암치료가 가능하긴 한 건가?
6개월 남았으면 나는 너무 가 고팠던 유럽여행도 못 가보고 죽는 건가?
6개월을 후회 없이 알차게 보내려면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
지금은 가벼운 복통이지만 이제 나는 점점 더 아파지는 건가.
지금 내 눈에 보이는 푸르른 7월은 내생에 마지막 7월인가.
오진인 확률은 없는 건가.
누구에게 언제 어떻게 내가 췌장암이라고 얘기해야 하나.
이게 현실인가.
어제만 해도 저녁 먹은 후 애들이랑 다 같이 소파에 앉아 무한도전레전드 편을 보며 자지러지게 웃었는데.
이제 내 삶에 순도 100%의 행복한 웃음은 없는 것인가.
나는,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삶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언제나 나의 삶의 선택에 확신이 있었고, 그 확신으로 삶을 알차게 만들어왔다.
하지만 나는 이제껏 가보지 못했던 완전히 낯 선 새로운 길을 만났다.
두려워서 한 번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었던 길.
희뿌연 안개 너머에 얼마나 힘들고 무서운 시간들이 자리하고 있을지 몰라 감히 쳐다보지도 못한 길.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오래 살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40대 초반에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혼란스러움에 하염없이 눈물만 흐르고 있을 때
눈앞에 택시에서 내리는 남편의 모습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