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9일
처음으로 췌장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10여 일이 흘렀다.
처음 그 단어를 마주했을 때의 충격과 공포와 혼란의 감정은 아주 많은 감정들로 희석되었고
지금 이 단어가 적당할지 모르겠으나
이 시간 나는 편안함을 느끼고 있다.
내가 '암밍아웃'을 한 그 며칠새에 정말 수많은 감정의 파도를 경험했고.
그 감정들의 동요를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뭔가를 하기 위해 스스로 붙들거나 내려놓음이 아니었고
나의 감정의 침전물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내게 자리 잡은듯하다.
어쩌면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지금 내가 하려는 걸 하려 하고, 뭐든 해낼 수 있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는 평소의 내 성격이 지금 나의 편안함에 일조했을지도 모르겠다.
처음에 쓴 몇 편의 글들은 암진단을 받고 조직검사를 할 때의 글들이었다.
제일 혼란스럽고 절망적이었던 2~3일에 쓴 글들.
지금 보니 참 슬프다.
그 글에 이제 앞으로는 순도 100%의 행복의 웃음은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인가라는 문장이 눈에 띈다.
그런데 아니다.
슬픔에 젖어 모든 것이 암과 함께 뒤섞일 거라 생각했던 일상은.
그냥 고요하게 흘러간다.
아이들이 큰 동요 없이 잘 받아준 게 내게는 가장 큰 위안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인기리에 방영 중인 서진이네 2를 재밌고 보고 최우식의 어리바리하지만 귀염성 있는 행동들에 웃음을 터뜨린다. 갑자기 퍼붓는 소나기에 우산을 안 가져간 둘째를 걱정하며 전화를 하고 비를 잘 피하고 있단 얘기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저녁에 뭐 먹을지를 고민하고 먹고 싶은걸 가족들과 함께 맛있게 먹는다.
예전에 읽었던 [빅터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으며 다시 한번 긍정의 마음을 다잡는다.
하지만 그 사이에 항암일정을 조율하고 서울의 요양병원도 검색해 본다.
그렇게 우울과 절망감으로만 점철될 거라 생각했던 내 일상은 고요하게 흘러간다.
죽음과 겹쳐지는 그 이름.
췌장암 환자라.
1분 1초가 귀한 상황이라 모든 게 아름답고 감사하고 작은 행복에 미소 짓게 되냐고?
아니다.
그저 그렇다.
이렇게 가족과 저녁을 먹고 TV를 보고 있으면 내가 환자 인지 뭔지도 모르겠다.
이대로라면 하반기에 여행 가기로 한 곳에 예약을 하고 10년 후에도 나는 이렇게 무탈하게 가족들과 함께 있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
집중력이 떨어져 책을 읽지 않고 있다는 것만 빼면,
그저 평범한 일상이다.
이렇게
가끔씩 움켜쥐고 비트는듯한 통증만이 나의 암의 존재를 일깨워줄 뿐이다.
이 존재가 나의 생사를 쥐고 있다는 사실이 영 기분 나쁘다.
그래서 얼른 싸우고 싶다.
모든 상황에서 의미를 찾고 그 의미 속에서 또 긍정적인 부분은 찾아내는 스타일이지만.
지금 이 무심코 찾아오는 통증은 그저 짜증만 날 뿐이다.
그나마 앞으로 있을 항암시기에 수없이 덮쳐올 통증을 대비한 예행연습정도라 해야 할까.
나는 이것과 싸워서 질 생각이 없다.
무조건 이겨낼 거다.
이렇게 얘기하면 나보고 충격으로 정신이 어떻게 된 거 아니냐 할지는 모르겠으나
항암치료의 시작이 기대가 되기도 한다.
아플 건 안다.
특히 췌장암은 더 힘들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 아픔과 힘듦이 암을 없애는 과정이라면 나는 충분히 버텨낼 수 있다.
무의미한 통증만이 나를 힘들게 할 뿐이다.
아직 닥치지도 않은 통증과 일상을 걱정하는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언제나 그랬듯 나는 길을 찾을 것이고, 버텨낼 것이고,
지난할 긴 싸움에서 어떻게든 이길 걸 알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