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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끼묘 Jun 19. 2020

두 명의 오빠 그리고 두 명의 새언니

오빠 VS 언니




 나는 11살, 10살 터울의 오빠가 2명 있다. 고로 늦둥이, 막둥이 그리고 고명딸이다. 가족사항을 묻는 질문에 오빠가 2명이라고 대답하면 다들 같은 말을 한다.


 "헐, 대박 완전 공주님처럼 자랐겠네!!"


  그러면 언제나 내 대답은 똑같다.


 "아니요! 오빠들 사이에서 왕자님처럼 컸어요!"라고 말이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다 보니, 오빠들이 학교에 다니느라 마주치는 일이 별로 없었다. 옛 기억에 오빠들 모습을 떠올려 보자면. 음..

 


 [큰 오빠]


 동네 떠돌이 강아지들한테 둘러 쌓여 벌벌 떨고 있던 날 보며 웃던 모습. 진흙물이 잔뜩 묻은 인형을 나에게 묻히려 했던 동네 친구를 혼내주는 모습. 친구들과 롯데월드를 다녀와 나에게 인형 팔찌를 선물해주었는데, 받은 지 1시간도 안돼 버스에 두고 내렸더니 그 이후로 모든 선물이 끊겨버렸던 모습. 첫 월급 선물로 과자를 잔뜩 사 왔던 모습.


 [작은 오빠]


 초등학교 때 방바닥에 엎드려 수학 숙제로 머리를 쥐어짜고 있으면, 내 교과서에 연필로 답을 적어주던 모습. 밥 먹으라며 프라이팬 한 가득 넘치게 볶음밥을 해오던 모습. 술에 잔뜩 취해서는 그 당시 20만 원에 가까운 옷을 턱 사준 모습.(실은 그 뒤로 오빠가 술에 취한 걸 좋아하기도 했다.) 주말에 늦잠을 자고 있으면, 게으르다며 내 침대 위에서 펑펑 뛰던 모습.



정도이다. 오빠들은 서로 성격이 너무 달라 친 형제가 아닌 거 같기도 했는데, 유일하게 비슷한 점이 있었다. 바로 술주정. 술만 취했다 하면 자고 있는 내 방문을 살짝 열고, 문턱에 걸터앉아 몇 분이고 이야기를 했다. 둘 다 술을 먹고 들어온 날이면 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어느 여름날 새벽, 현관문 여는 소리에 '또 시작이겠군' 하고 자는 척을 하고 있었는데, 큰 오빠가 방으로 들어왔다. 나는 날이 더워 한쪽 다리만 이불을 덮었고, 다른 다리는 맨다리로 배게 위에 올려놓은 상태였다. 내 자는 척을 눈치챈 건지 못 챈 건지 큰 오빠는 갑자기


 "어휴, 저 코끼리 다리를 누가 데려가려나 몰라" 라며 한 숨을 쉬더니 내 방에서 나갔다.


 상처 받았다. 매우. 그때 나는 한참 예민한 고1이었다. 오빠들이란.. 칭찬을 모른다. 지적에 하지 말라는 건 또 왜 그리 많은지. 그리고 언제나 답은 내려주지 않는다. 옷을 어떻게 입어야 이쁘다, 화장은 이렇게 해봐라 라는 등의 조언은 본인들도 모르니. 항상 듣는 건 잔소리뿐이었다.



 오빠들이랑 지내다 보니 자연스레 털털하게 자랐다. 옷도 오빠들 걸 자주 뺏어 입었는데, 내가 입으니 헐렁한 힙합 스타일이었다. 짧은 옷을 입으면 뭐라고 하니 항상 긴 바지에 여성스러움이란 없었다. 머리도 언제나 단발.


 또 어렸을 때부터 오빠들 말투나 행동을 자주 따라 했었는데, 온 가족을 당황시킨 적도 있었다. 5~6살쯤인가. 화장실 문을 열어놓은 채 소변 누는 오빠들의 뒷모습을 몇 번 봤었는데, 나와는 많이 달랐었다. 이상하다? 느낀 나는 '내가 그동안 잘 못 한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뒤로는 오빠들과 똑같이 서서 소변을 보기 시작했다. 화장실 문 앞에 팬티까지 모조리 벗어두었고, 변기에 올라설 수 없으니 변기 옆에 서서 소변을 봤다. 그리고는 샤워기로 씻고 밖에 나왔다. 화장실에 들어갈 때마다 옷을 벗고, 한참 뒤에나 나오는 모습을 보고 부모님께서 의아하셨는지 이유를 물어보셨다.


 "나는 변기에 앉아서 쉬야를 하는데, 오빠들은 서서해! 그래서 나도 이제 서서하려고!"라 대답했다.


 그러자 아버지께서는 오빠들한테 말하셨다.


 "야! 너네 이제 변기에 앉아서 소변봐!"라고. 


 그 뒤로 한 동안 우리 집 남자들은 '서서 소변보기 금지령'이 내려졌다.






 오빠 1명 다른 집 주고, 언니 1명 데려와 달라고 떼쓰다 보니 어느새 나는 성인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23살에 드디어 새언니가 생겼다. 첫째 언니. 또 3년 뒤 26살에 둘째 언니까지. 총 오빠 2명에 언니 2명이 되었다.


 처음에는 '아가씨'란 소리가 어색했지만 이내 익숙해졌고, 언니라고 부를 수 있어 마냥 좋았다. 바라고 바라던 언니가, 그것도 2명이나 생겼는데 역시나 좋았다.


 무뚝뚝이 철철 넘쳐 대화가 1분을 채 넘기지 못했던 오빠들과 다르게, 언니들과의 대화는 끝이 없었다. 그리고 새로운 옷을 입고 '오빠 이뻐? 이쁘냐고!!!'라고 물을 필요도 없었다. 등장과 동시에


"아가씨 옷 샀어?? 잘 어울린다~!! 아가씨는 이런 색이 참 잘 어울려!"


 라는 말로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리고 언니들은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셨다.



 "오빠! 내가 처음으로 계란찜을 해봤거든? 폭탄 계란찜인데 맛있더라~!"



 "먹을 수는 있는 거냐?"


 진짜 이럴 때마다 내 오빠로 태어난 걸 천운으로 알라며 이제는 대꾸도 안 한다. 그러다 보면 뒤이어


 "아니 아가씨가 자랑하는데 왜 그래~! 아가씨 내가 다음에 집에 놀러 갈 테니까 꼭 해줘~!!"라고


내 마음을 솔솔 녹여주는 멘트가 나온다. 이런 예시는 셀 수 없이 많다.



 "오빠 이 옷 이쁘지?"


 "옷 좀 그만 사!!"


 "아니 이쁘구  그래! 아가씨 어울려  !"  부터


 

"언니! 제가 오늘 마트에 갔는데 애기들 이유식 채소도 따로 포장해서 팔더라구요!?"


"그걸 몰랐냐?"


"모를 수도 있지. 응응 아가씨 요즘은 별 거 다 팔아! 이유식에 넣을 브로콜리 갈아놓은 가루도 파는 걸~!"



 한 번은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실수로 물을 흘린 적이 있었다. 물은 내 바지와 옆에 있는 서류봉투까지 적시고 있었다. 식당 아주머니와 내가 놀라서 휴지로 닦고 있는데 오빠가 한 마디 했다.


 "야 서류부터 치워"


라고. 하하. 오빠를 치우고 싶었다. 그러자 식당 아주머니가 말씀하셨다.


"언니들이었으면 당장 휴지 들고 달려들었을 텐데 오빠라 그런 게 없지?"라며, 난 바로 대답했다.


"네! 그러게요!!"라고.



 이렇게 오빠와 언니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나도 언제나 언니들 편이었다.






 언니들이 생기기 전에 나의 편은 언제나 아버지였다. 10살, 11살 차이 나는 오빠들한테도 굽히지 않고 덤벼왔던 나는 간혹 작은 시비가 붙곤 했었다. 그럴 때마다 난 아버지 품으로 숨었다. 그만하라는 부모님 말에 오빠들은 더 화가 나


 "아니 진짜 쪼꼬만 게, 네가 나보다 큰 게 뭐 하나라도 있으면 내가 안 그런다!"


라고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때 아버지가 곰곰이 생각하시더니


 "진짜 하나라도 있음 안 그래? 얘가 너보다 큰 게 없긴 왜 없어?"


 "뭐가 있는데요?!"


 "머리카락! 얘가 너보다 머리카락 길잖아~!!!"라고 내 편을 들어주셨다. 오빠는 KO 패.






 시간이 많이 흐르고, 이제 30살을 앞둔 시점에서 다시 생각해보니 오빠와 언니 사이에는 확실히 다른 영역이 존재하는 거 같다. 하지 말라는 거 많고, 내 말에 진지함 없이 툭툭 장난을 내뱉는 모습이 매우 많이 얄밉긴 하지만, 오빠들이 여동생을 챙기는 방법은 따로 있었다.


 분위기 좋은 파스타집을 같이 가기는 어색했지만, 집 안에 있는 가장 큰 프라이팬에 스팸&야채를 온통 깍둑썰기로 큼지막하게 볶아 밥을 차려주었다. 언제나 메뉴는 볶음밥.  


 또 중/고등학교 때 학원이 늦게 끝날 때면, 학원 근처로 데리러 와주었다. 심지어 중학교 때는 2명의 남자한테 납치당할뻔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술 취해 비틀거리며 날 데리러 오던 오빠 때문에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이건 성인이 돼서도 마찬가지였는데, 대학교 근처에서 술을 마시고 있으면 꼭 연락이 왔다. 집에 같이 들어가자고..,  어두운 밤길엔 항상 오빠들이 함께 해주었다.  


 그리고 똥 손인 여동생을 위해 뚝딱뚝딱 잘도 만들어내는 오빠들이었다. 최근 이사한 집의 옷장은 큰 오빠가, 책상은 작은 오빠가 조립해 주었다. 컴퓨터, 기계, 조립은 언제나 오빠들 담당이었다. 그리고 차는 있지만, 차 관리하는 법은 하나도 몰라.., 오빠들이 관리해주고 있다.


 "너 엔진오일 언제 갈았냐?"


 "그게 뭔데?"


 ".... 그냥 차 끌고 나와"


 "응..."




 이렇듯 나는 무뚝뚝한 보디가드 오빠 2명과, 언제나 내 편인 새언니 2명이 있다. 그리고 덕분에 울고, 웃으며 만족스러운 가족생활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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