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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끼묘 May 27. 2020

제 앞으로 끼어드세요!

하루 3번 깜빡이 받기 챌린지


 도로 위의 빽빽한 차들, 지루한 운전을 이벤트로 바꿔줄 '하루 3번 깜빡이 받기' 챌린지.






 이사를 가는 바람에 차량으로 10분이면 가능했던 출/퇴근 시간이 4배나 늘어나게 되었다. 그것도 막히기로 유명한 구간을 직접 관통하는 경로로 말이다.


 사고는 또 어찌나 많이 나는지.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3일에 한 번씩은 사고 차량을 목격한다. 빽빽한 차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가득 싣고, 차량 간 좁은 틈 사이를 억지로 끼어드니 예측가능한 결과다. 안 그래도 막히는 길이 사고라도 난 날에는 당장이라도 차를 내팽개치고 싶을 정도.



 "내 앞으로 끼어들지 좀 말라고!"


 출/퇴근 시간 내가 늘 외우던 주문이었다. 차들은 왜들 그렇게 내 앞으로만 끼어드는 걸까? 일면식도 없는 사이지만 답답한 마음에 '내가 만만한 거야 뭐야?!'라며, 괜히 성질도 부려본다. 그리고는 끼어들어야만 하는 차 vs 용납할 수 없는 차(나)의 신경전이 시작된다. 엑셀과 브레이크를 번갈아 밟기를 몇 번, 상대 차량은 빈틈을 찾지 못한 채 포기하고 가버린다. 내가 이겼다!


 하지만 희열도 잠시, 이내 그 차는 나보다 더 앞선 위치에 끼어들기를 성공해 유유히 달리고 있다. 세상 허탈하고 허무하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인지 머쓱해졌다. 자리 방어전에 애썼던 무릎만 아파진다.






 꾸물꾸물했던 하늘이 개고, 유난히도 하늘이 파랗고 이뻤던 어느 날. 맑은 날씨에 기분도 좋고, 괜히 여유로워지는 아침이었다. 평소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지옥의 구간을 기어가고 있었을 때, 차 뒤에 '초보인데, 아이도 태우고 있어요..'라고 써 붙인 차량을 보았다. 꽉 막힌 차들 사이로 끼어들기를 몇 번이나 시도하더니, 결국 포기. 방향지시등만 켜 놓은 채 원래의 차선을 유지하는 상황이었다.


 짠했다. 그 차가 내 옆라인에 나란히 섰을 때쯤. 브레이크를 밟아 앞 차와의 간격을 벌려주었다. 내 의도를 알았는지 초보인데 아이도 태우고 있는 그 차량은 잽싸게 빈자리로 들어왔다. 그리고 깜박이를 켜 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기분이 좋았다. 내가 마치 초보 운전자와 그분의 아이까지 지켜준 경호원이 된 느낌이랄까? 뿌듯했다.






 그날 이후 나의 출/퇴근길에는 새로운 미션이 생겼다. 바로 하루 3번 깜박이 받기. 조급한 마음에 답답하기만 했던 출/퇴근 길이 나만의 챌린지 시간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챌린지에 대한 보상은 성취감과 여유. 이 두 가지면 충분했다.


 이왕 양보할 거면 한 10번 정도 하지 왜 3번이야, 너무 적은 거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양보를 해줘도 그냥 휑- 하니 가버리는 차들이 많아 10번 정도 양보해야 3번 받을까 말까 한 게 깜박이의 현실이다.




  "제발, 제 앞으로 끼어드세요!"


  챌린지를 시작한 뒤 새로 바뀐 주문이다. 앞 차와의 간격을 좁히려 바짝바짝 붙었던 운전 습관을 버리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그러다 보니 쉴 틈 없이 엑셀과 브레이크 사이를 왔다 갔다 했던 다리에 여유가 생겼고, 이것만으로도 출/퇴근 운전 길의 피로가 줄어들었다.


 앞에서 끼어들기에 실패한 차량들을 보며, '나한테 왔으면 바로 양보해 줬을 텐데!'라며 오지랖도 부리기 시작했다. 또 양보를 해줘도 그냥 휑 가버리는 차들한테는 '너무한 거 아니야!?'하고는 혼자 삐지기도 한다. 지루했던 출/퇴근길이 온 갖 혼잣말로 심심할 틈이 없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내 앞으로 끼어드는 차들에게 괜한 자격지심을 부렸었다면, 지금은 대환영이다. 챌린지를 도와줄 조력자이기도 하니 "어이쿠, 어서 오세요~" 하고는 브레이크를 밟아본다.


 하지만 누구나 챌린지를 도와줄 수는 없는데, 몇 가지 조건이 있기 때문이다.


 방향지시등을 켜고 들어오는 차 - OK

 방향지시등을 켜지는 못했지만, '초보운전' 스티커를 붙인 차 - OK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고 마구잡이로 끼어드려는 차 - NO !!

 칼치기(차량 사이를 빠르게 통과해 추월하는 모습) 하는 차 - NO !!


 이 외에도 상황에 따라 다른 기준이 생길 수 있지만, 나름의 철저한 기준을 세워놓고 하니 미션은 보다 재밌어졌다.




 


 짜증 가득한 출/퇴근길을 소소한 이벤트로 바꿔주는 건 생각보다 거창한 게 아니었다. 생각을 약간만 전환하면 왕복 1시간이 넘는 거리를 재밌게 오갈 수 있었을 텐데, 왜 그렇게 답답하게만 느꼈던 건지.



 나는 앞으로도 차만 타면 언제든 할 수 있는 '하루 3번 깜박이 받기' 챌린지를 계속해서 수행해 나갈 예정이다. 그리고 혹시나 나와 같은 챌린지를 하는 누군가를 위해 감사하단 의미의 깜빡이도 아낌없이 켜주려 한다. 모두의 운전이 행복해지도록.


 , 나와 같은 챌린지를 하는 운전자가 많아지길 

 기대해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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