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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작 Oct 13. 2023

아이들은 잔소리를 정말 '싫어하기만' 할까?

-한우리 교사 에세이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과 ‘잔소리는 필요하다’라는 주제로 토론을 진행할 때입니다. 찬성과 반대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지만, 그동안 생활과 밀접한 주제로 토론의 흐름을 익힌 덕분인지 아이들은 수업이 시작되자 두 눈을 반짝였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잔소리란 무엇인가요?”


사전에 나오는 잔소리의 의미를 알아보기 전에, 먼저 아이들의 생각을 물었습니다.


“듣기 싫은 거요.” 

“엄마나 어른들에게만 필요한 거요!” 

“부모님이 우리에게 하는 욕이에요!”


예상보다 격한 반응에 놀랐지만, 아이들은 아직 할 말이 많다는 얼굴로 다음 질문을 기다렸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잔소리를 들어봤나요?”


물음과 동시에 봇물 터지듯 잔소리가 쏟아져나왔습니다.


“공부 좀 해라!” 

“책상 좀 치워라!” 

“숙제부터 해라!” 

“핸드폰 좀 그만 봐라!” 


아이들이 하는 말을 칠판에 옮겨 적다가 제가 집에서 하는 말과 똑같아 가슴이 뜨끔했습니다. 제 딴에는 걱정되어서 한 말인데 학생들의 입을 통해 들으니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한편으로는 서운하기도 했습니다. 부모들의 잔소리란 으레 아이가 더 잘 성장하도록 돕고 싶은 마음에 하는 말이니까요. 이점을 우리 아이들도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으로 다시 물었습니다.


“어른들이 잔소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번 질문에 아이들은 뜸을 들이더니,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로 답했습니다. 


“우리가 깜빡한 것을 하게 하려고요.”

“올바른 길을 걷게 하려고요.”


휴, 그제야 아이들도 부모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안다는 생각이 들어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어진 뜻밖의 대답에 그만 다리가 휘청거렸습니다.


“어렸을 때 당한 거 푸는 거예요.”

“스트레스 쌓인 거 우리한테 푸는 거죠.” 


아, 짧은 탄식과 함께 그건 아니라고 말했지만, 순간 집에서 아이들을 대하던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전날만 해도 집에 들어서자마자 아이들의 숙제부터 확인했고, 미리 하지 못한 걸 알고는 지난 일까지 끄집어내 혼을 냈거든요.


 실은 이렇게 꾸지람을 해도 아이들은 대부분 자기 전에야 간신히 할 일을 마치곤 합니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 익숙해진 제가 어떤 날은 기분 좋게 넘어가지만 어떤 날은 한바탕 화를 내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하루가 좀 고되고 피곤한 날 특히 그렇지요. 어쩌면 우리 아이도 이런 저를 보며 자신을 엄마의 화풀이 대상이라고 여겼을 것 같아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잔소리 들었을 때의 기분을 물었습니다. 하나같이 우울한 감정들이 흘러나오더군요. 그중에 ‘더 늦게 하고 싶어진다’ ‘자존감이 떨어진다’라는 대답은 다시 한번 저를 흔들어 놓았습니다. 그동안 제가 했던 말과 행동은 정말 아이를 위한 것이었을까요.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반대로 아이들 표정은 점점 살아났습니다. 잔소리 때문에 힘들었던 일을 말하는 순간, 마치 그 기억은 비눗방울이 되어 둥둥 떠다니다 다른 친구들의 비눗방울과 부딪혀 공중에서 사라져버리는 듯했습니다. 아이들은 ‘너도?’ ‘나도!’와 같은 말로 서러움을 나누더니 이내 까르르, 킥킥 웃었습니다. 

이번에는 잔소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를 물었습니다.


“잔소리는 필요해요. 생활 습관을 바르게 고칠 수 있으니까요.”

“잔소리는 필요하지 않아요. 들으면 짜증 나고 하기 싫어지니까요.”

“하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안 하고 딴짓만 할 때는 필요해요.”


의견을 모아보니, 잔소리를 듣기 싫어하는 건 모두 같지만 좋은 습관을 위해서는 필요하다는 입장이 우세했습니다. 그렇다면 잔소리를 듣기 좋게 하면 되지 않을까요. 저는 펜을 들고 아이들과 함께 칠판에 적어놓은 잔소리를 고쳐나갔습니다. 


“여러분, ‘공부 좀 해라’ 대신 어떻게 말하면 공부가 하고 싶어질까요?”

“음... ‘공부하면 네가 원하는 걸 이룰 수 있어’라고 말해요.”

“선생님, ‘책상 좀 치워라’는 ‘책상을 치우면 공부할 맛이 날 거야. 그럼 다음에도 깨끗이 쓸 수 있어.’가 좋겠어요.”

“엄마가 ‘숙제부터 해라’라는 말 대신 ‘할 거 다 하고 엄마랑 같이 산책가자’라고 말하면 빨리 끝낼 수 있어요.”

대답을 듣는 동안, 한가지는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같은 말이라도 표정과 말투를 부드럽게 하면 잔소리처럼 들리지 않는다는 것. 한 마디로 아이들은 사랑을 담아 표현해주길 바란다는 점이었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길, 이솝 우화에 나오는 해와 바람의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바람이 세차게 불수록 나그네는 옷깃을 여미지만, 해는 밝게 비추는 것만으로 나그네의 외투를 벗겨 내기에서 이깁니다. 물론 외투를 입히는 내기였다면 결과는 달랐겠지요. 하지만 상황에 맞게 따뜻함과 부드러움을 활용한 해의 지혜가 돋보입니다. 


귓가에 맴도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저 역시 햇살 같은 독서지도사 그리고 현명한 엄마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 이 글은 한우리독서토론논술에서 발간하는 교육 매거진 '한우리에듀레터' 및 '한우리독서토론논술 공식 블로그' 에도 실려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hanurimom/22315265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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