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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작 Oct 13. 2023

관조적 삶을 향해

_『국가론』( 플라톤 지음, 이환 편역, 돋을새김 펴냄)을 읽고

특별한 준비 없이 <국가론> 속 소크라테스와 만났다.

어수선한 시절, 그는 특유의 화술로 타성을 거부한 철학자였다. 나는 그가 케팔로스(무기 공장으로 많은 돈을 번 귀족)의 집에서 글라우콘(플라톤의 형이자 소크라테스의 주요 대화 상대)과 나눈 대화를 들으며 국가는 왜 생겼는지, 진정한 의미의 통치자란 어떤 사람인지, 철학자가 국가를 다스려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등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소크라테스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릴 때가 많았지만, 공산주의적 사유방식에서는 그만 뜨악했다. 나는 이미 자본주의 체제에 익숙한 터라 ‘친구들끼리는 모든 것을 공유해야 한다’며 재산은 물론 아내까지 공유한다는 말이 너무 야만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함께 갖는다는 것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므로 부패의 가능성이 제로가 된다’니. 이론적으로는 가능할 수 있을지 몰라도 현실적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인간의 본능을 무시한 이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기원전 407년, 아테네를 누비던 철학자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나에게 이정표를 제시해 주었다.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정의이고 절제의 결과물이 인격이며 아름다운 행위를 담당하는 지식이 곧 지혜라고, 그러니 맡은 바 자기 일을 열심히 하면 된다고 말이다.


교과서를 펴면 나올법한 말일지라도 소크라테스에게 들으니 묘한 감동이 일었다. 이 말을 길어 올리기까지 그가 보여준 사상에 이미 매료된 탓이었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독서지도사로서, 하루하루 성실히 살아가고자 애쓴 나의 노고를 인정받은 기분도 들었다. 잘하고 있으니 앞으로도 흔들리지 말고 뚜벅뚜벅 걸으면 된다는 공감과 위로로 다가왔다.


<국가론>이라고 해서 국가를 다스리는 방법에 대해서만 논하지는 않았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선과 악, 행복과 불행이 이상국가를 만드는 데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글라우콘과 대화를 나눴다. 그중에서 현명한 인간에 대해 말한 부분은 비수처럼 날카롭게 내 가슴에 꽂혔다.


현명한 인간이라면 자신의 고귀한 목적을 위해 평생을 바칠 걸세. 학문을 귀히 여겨 심신을 바로 닦고 야만성을 길들여 사악한 즐거움에 빠지지 않도록 절제하지. 재물을 취할 때도 분에 넘치지 않도록 주의하고 세상의 그릇된 찬사에도 휩쓸리지 않을 걸세. 그는 늘 자신의 세계를 관조하며 살 걸세. 무질서나 태만이 침입하지 않도록 경계하며 혼란을 방비하겠지.
 _258쪽 (국가론, 플라톤 지음, 이환 편역, 돋을새김 펴냄)


사춘기 아이를 키우다 보니 종종 별것 아닌 일에 신경을 곤두세울 때가 많다. 아이의 말투와 표정에도 감정이 요동치고 의도치 않은 말들이 툭툭 튀어나온다. 다른 사람의 한 마디에 일희일비할 때도 많다. 이런 나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관조가 아닐까.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나를 둘러싼 현실을 주의 깊게 바라봐야 한다는 의미로 읽혔다. 무질서나 태만이 침입하지 않도록 경계하면서.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정의나 지혜에 대해 딱히 생각해보지 않았다. 이러한 말들은 이념에 불과해 실천은 또 다른 문제라고 선을 그었던 탓이다. 그런 점에서 <국가론>은 어떤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새로운 감각을 선물해 주었다. 그가 남긴 또 다른 대화를 들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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