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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작 Oct 18. 2023

내 삶에 'F5'를 누르고 싶다면

정재승의 『열두 발자국』을 읽고


문득 내가 남긴 발자국이 낯설어 놀랄 때가 있다. 어떻게 이런 선택을 했는지 스스로 신기할 정도의 흔적들이 대개 그렇다. 밥 먹는 시간도 포기하고 전자책 쓴 일, 글쓰기 훈련법 정리해 출판사에 원고 투고한 일, 눈 뜨자마자 실내 자전거로 유산소 운동한 일 등 작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내 모습이다. 새해를 계획할 때도 이런 다짐은 머릿속에 없었다.      


알다가도 모르겠는 내 모습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 건 정재승의 『열두 발자국』이란 책 덕분이다. ‘뇌를 연구하는 물리학자’란 저자의 소개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뇌과학의 관점에서 풀어놓았다. 제목은 ‘인간이라는 경이로운 미지의 숲을 탐구하면서 과학자들이 내디딘 열두 발자국’을 줄인 것이다. 우리가 선택하는 동안 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결정 장애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결핍 없이 욕망할 수 있는지 등 살면서 누구나 해봄직 한 일들에 대해 열두 개의 주제로 나눠 뇌과학적 측면에서 설명하고 있다.      


그중 인상적인 주제는 ‘우리 뇌도 ‘새로고침’ 할 수 있을까’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저자는 뇌를 새로고침 하는 건 어렵다고 했다. 뇌는 에너지를 적게 쓰고 싶어 해 늘 먹던 것만 먹고, 하던 것만 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메뉴가 수십 가지인 식당에 가도 고르던 것만 고르고, 누가 대신 결정해 주기를 바랄 때도 있다. 이런 경향은 나이가 들수록 심해져 삶의 진폭도 좁아진다는데 아니나 다를까, 점점 친구와의 만남도 줄어들고, 일과도 단순해졌다. 그 원인이 뇌에 있다니 뭔가 좀 신비로우면서도 이대로 살아도 될까 싶다.     


‘우리가 뇌의 에너지를 기꺼이 사용하면서 즐기는 일은 매우 제한적입니다. 대부분의 시간을 차지하는 일상은 습관이 관여하고, 우리는 거기에 굳이 많은 에너지를 쓰지 않고 살아가죠.(중략) 으레 아침에 일어나면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지하철을 타면 스마트폰으로 페이스북을 하는 삶. 그렇게 판에 박힌 듯이 돌아갑니다. 그게 바로 우리 ’ 삶의 진폭‘입니다.’_ 140쪽


그래도 다행인 건 우리는 이런 뇌의 속성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 그 방법은 절박함을 느끼거나 새로운 환경에 자신을 놓는 일이다. 또 우리에게 있는 ‘후회하는 능력’으로 인생을 리셋할 수도 있다고. 그러고 보니 사십 쪽밖에 안 되는 전자책일지라도 중도에 그만두지 않고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던 건 이십만 원에 가까운 등록비를 내고, 전자책 쓰기 챌린지에 도전한 덕분이었다. 매일매일 일정 분량을 써서 인증숏을 남겨야 했는데, 전자책 쓰기가 목표인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자 밥 먹을 시간을 포기하고라도 쓸 수밖에 없었다. 그 기간이 30일. 매일 글을 쓰는 게 익숙해졌고, 원고 투고를 위해 컴퓨터 앞에 앉는 일도 대수롭지 않게 되었다.   

  

전자책 쓰기와 원고 투고에 열을 올린 건, 만약 이 작업이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면 머릿속으로만 꿈꾸었던 디지털 유목민의 삶을 실현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한 마디로 ‘꿈 깨!’였다. 내가 쓴 전자책은 인기 있는 소재가 아닐뿐더러 내용이 부실했고, 원고 투고는 저작권 문제가 걸려 몇몇 출판사로부터 아쉽다는 메일을 받았다. 사실 충분히 예상한 결과였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기에는 너무 안일하게 사는 것 같아 내 삶에 변화를 주고 싶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당장 먹고사니즘을 걱정해야 할 형편은 아니어서 그랬는지 막판에 힘이 빠져 내용을 업데이트하거나 홍보하는 일에 그만 손을 놓고 말았다.    

 

 새로고침에 성공한 사람들을 보세요. 갑자기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죽다 살아난 사람이 그토록 많이 마시던 술을 끊고 담배를 끊고, 등산을 하는 거예요. 죽을 만큼 절박하지 않으면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겁니다. _145쪽     


운동이 세상에서 제일 귀찮다고 생각한 내가 눈 뜨자마자 실내 자전거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요가 학원에 등록했다가 결국 절반도 가지 못한 일을 곱씹으며 또 돈만 낭비했다는 후회 때문이었다. 요가뿐 아니라, 복싱, 헬스, 필라테스 등 모두 등록한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중도에 그만두었다. 그런데 작년에 입던 바지가 더는 내 몸에 맞지 않자, 돈 들이지 않고 살 빼는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틀에 한 번 정도는 실내 자전거를 타고 있는데, 매일 하지 못하는 이유는 여전히 운동은 하기 싫고 힘들기 때문이다.      


쓰고 보니, 호기롭게 내디딘 발자국이 걸음걸이가 되지 못하고 하나의 점으로 남은 것 같아 씁쓸하다. 책을 읽기 전에는 의지가 약한 나를 탓했으나, 뇌의 특성을 알고 나니 편하고 쉬운 것만 좇으려는 뇌에 속은 듯한 기분이 든다. 내 머릿속에 있는 녀석에게 스스로 속고 살다니. 더는 뇌가 원하는 대로 끌려다니고 싶지 않다. 이제 2023년도 두 달밖에 남지 않았는데, 내년에는 지금보다 더 좁은 진폭으로 살아갈까 두렵다. 책도 쓰고 싶고, 강의도 하고 싶고, 여행도 다니고 싶은데. 키보드에서 ‘F5’를 누르면 화면이 새로고침되는 것처럼 삶도 손쉽게 리셋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고 또다시 절박한 이유를 찾거나 후회할 일을 만들고 싶지는 않다. 저자는 친절하게도 나와 같은 독자를 위해 방법을 하나 알려주었다. 라틴어로 죽음을 잊지 말라는 의미를 지닌 문구 ‘메멘토 모리’다. 이미 여러 권의 책을 슬로리딩으로 읽으며 깨우친 바이지만, 죽음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우리는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이 사실을 자각한다면 그래도 상념처럼 떠오르는 결심의 절반은 이뤄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계획한 대로 살고 싶다면 뇌를 속이며 일상을 역행하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내 머릿속의 뇌를 지배할 줄 알아야 한다. 이루지 못한 게 너무 많다고 죽는 순간 후회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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