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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작 Jul 23. 2024

삶은 견뎌내는 것

<쇼펜하우어의 인생 수업>을 읽고

오랜 친구들과 만나 근황을 나누다 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야깃거리가 있다. 연애와 결혼, 그리고 육아에 대한 소회다. 교복을 입고 다닐 때부터 아줌마가 된 지금에 이르기까지, 서로 어떤 경로를 거쳐왔는지 가까이에서 지켜봐 온 터라 우리의 수다는 후회와 농담, 그리고 하소연으로 가득하다. 그러다 결혼을 논할 때면 친구들은 가장 먼저 시집간 나를 원망의 눈초리로 쳐다보곤 한다. 자기들이 결혼한다고 했을 때 내가 극구 말리지 않았다는 게 그 이유다.


하지만 그때 나는 분명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아니, 친구가 결혼을 전제로 누군가를 만날 때부터 결혼은 현실이니 잘 생각하라고 떠들었다. 그러니 눈 감고 귀 닫은 채, 불나방처럼 앞뒤 안 가리고 뛰어든 자기 자신에게 화살을 돌려야 한다. 친구도 이 사실을 모르진 않을 거다. 그저 넋두리가 좀 필요했을 뿐. 그리하여 우리의 대화는 차갑고 현실적인 한 마디로 줄곧 마무리된다.


“별수 있나, 선택의 대가를 치러야지.”     


매정한 이야기일 수 있으나, 삶은 선택과 감내로 이어진다. 물론 그 과정에서 만족과 행복을 느끼기도 하지만 이내 또 다른 욕구가 고개를 내민다. 더 안락한 삶을 살고 싶다는 바람과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명예욕이다. 그 결과 권태와 번민이 잇따르고 공허함이 찾아든다. 그래서일까.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인간 세계를 하나로 모아서 바라보면, 온갖 형태의 위험과 재난에 맞서 생존을 위해 체력과 정신력을 소모하는 악전고투라고 했다.     


아직 많은 시간을 살아내진 않았지만 나는 쇼펜하우어의 말에 동의한다. 온전히 좋은 순간은 찰나의 반짝임처럼 스쳐 지나갈 뿐, 기쁨과 즐거움 뒤에는 불안과 두려움이 뒤따른다. 그러니 모두가 부러워하는 선택을 한다 해도 치러야 할 대가는 있기 마련이다. 다시 친구들과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 서로가 응원하는 연애와 결혼을 했어도 아마 지금 우리가 나누는 대화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 다. 오두막에 살든 궁궐에 살든 그 어떤 삶도 본질은 같다.     


그렇다고 인생을 고통이라 정의하고 싶지는 않다. 삶에는 고통이 따르지만, 순간순간 잘 견뎌내괴로웠던 시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을 성취감을 맛볼 수 있다. 게다가 고통을 견뎌내는 방법은 그리 특별한 게 아니다. 타인의 견해에 관심을 두기보다 자신의 의견에 더 집중하면 된다. 타인의 견해에 신경 쓰다 보면,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이는 사치와 허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내 안의 불안을 인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 2>에서 주인공 라일리의 머릿속을 휘저어놓은 감정은 불안이었다. 불안은 초강력 긍정 에너지인 기쁨이도 어쩌지 못하는 강력한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불안이 또 다른 불안을 낳는 모습을 보고 나와 아이는 서로 자기 모습이라며 ‘웃픈’ 표정을 지었다. 어디 우리뿐이겠는가. 남녀노소 누구나 불안에는 꼼짝 못 한다. 그러니 쇼펜하우어가 말한 대로 세상에는 안정이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불안한 감정이 앞설 땐 영화 속 라일리처럼 잠시 ‘휴식 의자’에 앉아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일에 집중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또 다른 방법은 소중한 순간이 기억에서 빠져나가지 않도록 가둬두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선명했던 추억도 흐릿해진다. 그러니 좋았던 기억은 되도록 많이 사진으로 남겨두거나, 글로 써두어야 한다. 가끔 내가 썼던 글들을 읽어보곤 하는데, 십수 년이 흘렀음에도 그날의 감정과 분위기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듯 생생히 되살아난다. 시간을 붙드는 방법으로 사진과 글만 한 게 없지 싶다.     


<쇼펜하우어의 인생 수업>에서 가장 크게 공감했던 문장은 ‘인생이란 어떻게 해서든 마무리해야 하는 어려운 과업과도 같다’였다. 돌아보면 내 뜻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일들 태반이다. 직업을 갖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는 등 인생 전반에 걸쳐 수많은 선택을 하는 동안, 아무리 심사숙고했다 하더라도 그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을 때가 다. 행복을 느꼈다가도 금세 또 다른 욕구가 피어나기 때문에 몸과 마음은 다시 바빠진다. 그렇다고 중간에 그만둘 수 있는 건 또 거의 없다. 그리하여 나는 삶이란 덜 불행하고 덜 불안하게 자신을 다독이며 견뎌내는 거라고 생각한다. 선택에 따른 결과를 받아들이면서 조금 더 밝아지려 노력한다면 그래도 괜찮게 살다 가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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