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수업 도서로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 고양이』라는 동화책을 건넸을 때, 아이들의 반응은 그리 밝지 않았습니다. 제목부터 말이 안 된다며 새와 고양이는 천적 관계임을 강조하거나, 표지에 그려진 고양이 그림이 별로라고 입을 삐죽거렸습니다. 6학년 독자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독서 전 지도’가 필요했습니다.
“갈매기는 무리를 지어 다니는데 왜 고양이가 나는 법을 가르쳐줘야 했을까요?”
동화의 미덕에서 한 발짝 멀어진 질문 같았지만 제 딴에는 새와 고양이가 천적 관계라고 말하는 아이들의 눈높이를 고려한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갈매기 한 마리를 잘 키워서 여러 마리의 갈매기를 동시에 낚으려 한 고양이의 큰 그림(!)이 아니겠냐는 답변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아이들의 상상력에는 한계가 없다는 걸 새삼 느끼며 다시 물었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갈매기를 날게 할 건가요?”
주체를 ‘고양이’에서 ‘나’로 바꾸자, 아이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해졌습니다. 책 읽을 걱정에 한숨짓던 모습은 사라지고 앞다퉈 방법을 꺼내놓았습니다.
“높은 곳으로 가요.”
“갈매기들이 나는 것을 보게 해요.”
“갈매기들이 모여있는 곳에 데려다 놔요.”
대답을 들으며, 고양이 역시 비슷한 선택을 했지만 결국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넌지시 알려주었습니다. 그가 누구인지를 궁금해하는 눈빛이 역력했으나, 읽어보면 알 수 있다는 말로 아이들의 독서 의지를 북돋아 주었습니다. 이 동화를 쓴 작가의 큰 그림이야말로 무엇일지 고민해보고 오자는 말도 잊지 않았습니다.
제목과 표지에서 아이들의 호응을 얻진 못했지만, 이 책은 ‘8세부터 88세까지 읽는 동화’라는 찬사를 받았을 만큼 폭넓게 읽히는 작품입니다. 고양이와 갈매기의 이야기로 나와 다른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방법을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환경 단체에서 활동했던 작가의 시선이 더해져 자연과 생태를 바라보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합니다.
이 책의 첫머리에는 흑해의 기름 덩어리를 뒤집어쓴 채 마지막 비행을 하는 갈매기 켕가가 등장합니다. 켕가는 고양이 소르바스의 집에 떨어진 후 약속을 지켜달라는 말을 남긴 채 죽어갑니다. 그 약속은 자신이 곧 낳을 알과 새끼를 보호해주고, 새끼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소르바스는 처음 본 켕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알을 품고, 태어난 새끼에게 먹이도 잡아 줍니다. 소르바스의 동료들은 ‘고양이 한 마리의 약속은 전체와 관계된 일’이라며 함께 어린 갈매기를 보살핍니다. 행운아를 뜻하는 말로 ‘아포르뚜나다’라는 이름도 지어줍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포르뚜나다는 날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냅니다.
고양이들은 어린 갈매기를 돕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지만, 나는 방법을 정확하게 가르칠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 맙니다. 결국 소르바스는 ‘인간과 언어 소통을 하는 것은 절대 안 된다’는 금기 사항을 깨고 ‘시인’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시인을 따라 교회 종루에 오른 아포르뚜나다. 돌멩이처럼 떨어지던 것도 잠시, 어느새 상공을 날아오릅니다.
동화는 멀어지는 아포르뚜나다를 바라보며 소르바스의 눈가에서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액체 방울이 흐른다는 문장으로 끝을 맺습니다. 어쩌면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결말입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읽는 내내 가슴께가 시큰하면서 먹먹했습니다. 난다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결정이라며, 아포르뚜나다가 날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낼 때까지 기다리는 소르바스의 사랑이 따뜻함을 넘어 숭고하게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이는 어른으로서 지녀야 할 자세임은 물론 내가 아닌 다른 존재를 대할 때 필요한 마음가짐이기도 합니다.
수업을 위해 아이들과 다시 만난 날. 우리는 작가가 독자와 함께 그리고자 한 큰 그림은 무엇일지 그 조각을 하나하나 맞춰보았습니다.
켕가가 죽는 장면에서는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저지르는 환경오염에 대한 비판과 반성이 이루어졌고, 아포르뚜나다가 날개를 펴는 부분에서는 자기다운 삶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또 ‘오직 날려고 노력하는 자만이 날 수 있다’는 소르바스의 말을 다시 읽으며 누군가의 강요가 아닌 스스로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소르바스와 아포르뚜나다를 도운 고양이들의 마음을 짚어볼 땐 아이들의 가슴에 연대의식이 조금씩 움트는 듯했습니다.
깊이 있게 책 내용을 이해하고 나자, 아이들은 서로 다른 존재도 가족처럼 끈끈한 관계가 될 수 있다는 걸 이해했고, 인정과 포용이 따뜻한 소통을 낳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와 달리 아이들은 ‘반드시 읽어야 할 동화’라고 표현할 만큼 책에 대한 평가가 후했습니다.
한 장 가득 채운 아이들의 독후 글을 읽으며 그 어떤 책이든 함께 읽는다면 작가의 메시지를 파악하는 건 물론 감동의 깊이도 더해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 수업도 기다려졌습니다.
* 이 글은 한우리독서토론논술에서 발간하는 교육 매거진 '한우리에듀레터' 및 '한우리독서토론논술 공식 블로그'에도 실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