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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 Apr 07. 2023

이모는 異母인가요 二母인가요?

또 다른 엄마? 두 번째 엄마? 출산을 겪지 않은 엄마!  

"엄마 말고 둘째 엄마라서 이모잖아, 이모는."

조카가 태어난 지 3개월 지난 시점부터, 조카의 할아버지이자 나의 아빠는 불쑥 이런 말을 했다.

"로로야, 둘째 엄마 왔다, 둘째 엄마."

그보다 훨씬 전, 아기가 흑백 말고는 색도 구분 못한다고 할 때 내가 방문하자 엄마가 한 말이었다.

 

조카가 태어나던 순간부터 나는 조카에 미쳐 있었다고, 주변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러했다.

부모가 아이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것 중 최고는 무엇이냐, 돈과 건물이다.

둘째로 좋은 것은 무엇이냐, 돈 많은 비혼주의 이. 모,라고 나는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녔다.

(물론 '돈 많은'이라는 수식어는 요원하다.) 고모의 경우, 남호메는 출산에 기여한 바가 극히 적고 아기의 어머니라는 오묘한 관계의 방지턱이 있으니 나름의 거리를 지켜야 한다고,

아기를 붙잡고 '와랄랄라'하기에 신경 쓰이는 부분들이 존재한다고 이미 훨씬 전에 고모가 된 친구가 말했다, "이모여서 좋겠다."라고.


그렇다면 '돈 많은 비혼주의 이모'가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백년대계를 세우며 가족의 생활비, 아이 미래의 사교육비, 두 배가 되어 버린 각종 경조사비에 시달리며 지금 당장 필요한 육아템과 반짝 쓰고 말 육아템과 주야장천 닳을 때까지 쓸 육아템을 분류하고 가성비를 따지고 있을 부모를 대신해

유럽과 미주의 수많은 사이트들에서 오로지 취향(물론 아직 아이의 취향은 아니지만)과 미적 요소만을 고려, 감성템들로 구매 및 세팅하는 것. 앞으로 조카가 뽀*로를 비롯한 온갖 (로봇) 캐릭터의 길로 가지 않도록 말이다. 하여 나는 아기의 성별이 나옴과 동시에 장바구니에 각종 의류와 딸랑이, 담요, 모빌을 담고 그중에서도 가장 힘을 실은 명품 브랜드의 우주복 세트가 얼른 오기를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었다.


시도 때도 없이 "이거 어때?" "이건 어때?" "이거 귀엽지?" 메시지를 보내는 나에게 동생은, "언니, 이거 한 번밖에 못 입히고 버리게 될걸?" "애가 걷지도 못하는데 신발은 왜 사." "... 그만해... 제발..." 등의 말로 만류를 했지만, 이모뽕을 주유하고 있는 나의 귀의 들어올 리가 없었다.

아무렴, 나는 이모이니까. 엄마는 쉽게 해줄 수 없는 걸 해줄 수 있는 이모니까.


그런데 또 다른 엄마라니.

이걸 다른 사람의 입에서 듣는 것은 예상치 못한 느낌이었다. 뭐랄까, 열심히 공부해야지! 하고 공부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이 "열심히 공부해라." 하는 말을 듣는 느낌과 비슷한 건가.

나는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갓 엄마가 된 동생을 위해서, 세상에 태어나 나름 고군분투하며 하루하루 진화하고 있는 아기를 위해서 언니 노릇과 이모 노릇을 하고 있었는데. 왜 내가 아닌 제삼자가 나에게 난데없는 의무감과 책임감을 부여하는 거지?


한편으로는 나의 이 언니 노릇, 이모 노릇이 누군가에게는 당연함으로 비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도달하기도 했다. 아빠 말대로 '또 다른 엄마', 엄마 말대로 '둘째 엄마'이니까, 시간이 날 때마다 조카를 보러 달려가서 잠시 동생의 손을 쉬게 해 주고, 육아에 지친 부모는 눈 붙이기 바쁜 시간에 수 시간 동안 인터넷을 검색해서 아기용품들을 구매하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이 되어버린 걸까?


그렇다고 하기에 나는 이미 너무 이기적인 인간이었다. 나의 시간과 소득을 다른 이와 나눠가지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비혼의 이유에 포함시킨 인간이었다. 그렇기에 조카의 물건을 사는 마음에 기꺼움 100%만이 깃들어 있다고 볼 수 없었다.  

(나를 잘 아는 동거인은 내가 쇼핑 욕구를 이렇게 푸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나의 물건만을 과도하게 사제 끼는 것은 매우 비이성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지양했던 것이고, 아기 용품을 살 일은 앞으로 없을 것이니 유일한 기회이며, 또 유독 아기 의류는 너의 취향을 적극 반영한 것이 많으므로 소비 행위를 합리화하고 있다고.

결론: 그렇다, 조카를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실행한 구매가 아니었다)


부모님의 말이 내 머리를 둥- 하고 울린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엄마가 된다는 것은 누군가를 적어도 스무 살까지는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고 나보다도 그를 우선 순위에 올려놓아야 한다는 것인데, 나는 나 하나도 먹여 살리기가 벅차다+내 1순위는 나여야 한다+태어날 때 비혼 상태로 태어났는데 왜 결혼이라는 인위적인 행위를 해야 하는 것인가 등등의 이유로 비혼 비출산의 길을 걷고 있었던 것 아닌가. 그런데 그 모-------든 과정을 건너뛰고 뚝. 아들같은 조카를 안겨준 것이다, 나의 가족들이.  


어쨌든 나의 의지와는 관계 없이, 2020년 11월 모일 기장에 여행을 갔던 밤, 나는 출산을 겪지 않은 또 다른 엄마가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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