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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 May 12. 2023

비혼을 비혼이라 말하지 못하고

즐거운 비혼생활   

"너네는 결혼 안해?" 

"두분은 결혼 안하세요?"

"조카 예쁘지? 저런 거(!) 하나 낳고 싶지?" 


애인의 존재를 주변에 알리고 나서 제일 많이 들은 소리 중 하나이다. 오히려 애인이 없었던 기간에는 거의 듣지 않았던 이야기. 달라진 건 애인의 유무인데, 왜 나의 비혼 주창까지 달라졌다고들 생각하는 걸까. 


정확히 언제부터 비혼을 결심했느냐고 물어보면 대답하지 못하겠지만, 한국에서의 결혼은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한 건 아주 어렸을 때부터라고 확신할 수 있다. 그보다도 앞서, 인간은 비혼인 상태로 태어나 죽을 때도 혼자 죽는데 결혼이 '작위'이자 '인위'이고 비혼 상태가 '자연스러운'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왜 결혼 안하세요?"라고 묻기보다 "왜 결혼하셨어요?"라고 묻는 게 맞는 질문 아닐까. 그냥 나는 태어난 채로 쭉 자연스럽게 살고 있는데. 


연애를 떠들썩하게 하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다들 '누군가 만나고 있겠거니'하고 생각은 했다고 한다. 맞다. 한달이든, 일년이든, 혼자 보내는 시간이 지루해질 때쯤 누군가 만나고, 누군가 만나는게 귀찮아질 때쯤 다시 자연상태인 '혼자'로 돌아가곤 했었다. 그러다 남은 인생을 쭉 같이 하면 편할 것같은 사람을 만났다. 내가 하기 싫어하는 집안일들을 능숙하고 자연스럽게 하고, 취향과 취미가 똑같으며, 여행을 가거나 맛있는 걸 먹으며 아이처럼 즐거워하고, 지인들과 함께 해도 즐겁고 둘이 있어도 충만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나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면서도 나의 모자람을 보완하는 사람. 나의 가족에게 잘하는 사람. 무엇보다 알고 지낸 지 20년이 다 되어가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xy 염색체 중 나와 가장 밀접한 사람.


그리하여 이번에는 떠들썩하게(?) 알려 보았다. 친구들(우리의 역사만큼 겹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고, 그렇지 않다하더라도 이미 연애 전부터 서로 어울려 놀곤 했었기에 다들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였다.) , 자주 가는 동네 요식업계 사장님들, 국내외 흩어져 있는 친구들, 둘의 가족들에게까지. 얼마 전엔 세대 전입을 마쳤다. 

"나 이제 세대주가 되어 어깨가 제법 무거워."라고 나는 종종 지인들에게 말하고 

"밥 다 먹은 그릇을 설거지통에 넣어놓지 않으면 친정 갈거야."라고 세대원은 종종 나에게 말한다. 


달라진 것은 없다. 비혼주의라고 말하는 것이 참 우습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나는 여전히 비혼 상태이고 비혼을 지향하고 앞으로도 비혼일 것이다. 애인 또한 비혼 상태이고 비혼을 지향한다. (앞으로도 비혼일지는... 그가 내가 아니고 내가 그가 아니니 장담 못하지만) 챙길 처가, 시가도 없고 서로에의 인간적 의무 외에는 제도적 굴레가 없으며, 그래서 오히려 서로에 대한 배려가 순수할 수 밖에 없는 관계.  


그런데 사람들은, "이제 결혼해야지?"라고 말하며 연애 다음 스텝은 결혼임을 강조해온다. 단지 애인이 있다는 사실이, 20년이 넘도록 줄기차게 외쳐왔던 "저는 결혼하고 싶지 않아요!"를 뒤엎을 만한 강한 힘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4B의 길을 걷는 지인들 중 많은 이들이 "나는 그래서 비혼이라는 단어를 아예 입에 안 올려."라고 한다. 단어가 주는 뉘앙스, 비혼이라는 말을 입에 올린 사람을 사회의 메인 스트림과는 살짝 다른 영역으로 보내버리기 때문이라고.

"그럼 결혼 공격이 들어올 때 어떻게 말해?" 

"할 만한 사람이 없다고 말하지. '아직' 혼자가 즐겁다고 하거나."

모든 것을 해탈한 선배는 이렇게도 말했다.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에게 설명이 통할 리가 없잖아. 구구절절 설명하기 귀찮아. 그냥 아 네~ 하고 말아." 


아... 그렇다. 결혼무새들이 보기에, 나에게는 결혼을 '할 만한' 사람이 있고, 이제 혼자 즐기는 시절은 끝났기 때문이었다. 서로의 조카들과 자주 시간을 보낼 만큼 아이들을 좋아하니 결혼해서 우리의 아이를 낳을 때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많은 모임에 동반 참석할 정도로 사실상 부부 상태가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상'과 '진실'은 다르다고 말하고 싶다. 비혼은 비혼이라고 말하고 싶다. 자발적으로 여생을 같이 보내고 싶은 것과, 여러 굴레들을 이고지고 결혼 생활을 끌고 가는 것은 다르다고 말하고 싶다. 조카를 잘 돌보는 것과 내 새끼를 양육하는 것은 다르듯이, 내 부모님을 봉양하는 것과 남의 부모님을 챙기는 것은 다르듯이. 


"결혼 생활은 어때?"라는 물음에 "여자친구가 집에 안간다."고, 자유를 박탈당한 듯 대답하는 유부남들의 (혐오스러운) 밈이 있다고 한다.  

"비혼 생활은 어때?"라는 물음에 이렇게 답하고 싶다. 어딘가에 얽매이지 않아서 홀가분하고, 하고 싶은 만큼 의리와 애정을 쏟을 수 있어서 충만하고, 이런 삶을 택한 나의 자유는 살아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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