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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닙 Mar 29. 2022

수집본능

결국 이루지 못하고 지나가는 것에 대하여

결국 하지 못하고 끝나는 것에 대해 물을 때 나는 그것이 '정리'라고 단번에 대답할 수 있다.

몇 년 전, 미니멀리즘이 크게 유행했을 때 나 역시 반짝 관심이 생겨 미니멀리즘에 대한 책을 여러 권 구매했다.

아끼는 책들로 가득 찬 책장을 정리할 때 이미 다 읽은 '미니멀리스트 되기' 책조차 정리하지 못하는 만년 미니멀리스트 지망생.

심지어 유치원 때 부모님이 사주신 어린이 전집, 조립하다 그만둔 피규어 조각이나 시작만 그럴듯한 20XX 년도 일기장처럼 집 안 어디에 있는지 존재가 기억나지 않는 물건도 버리지 못하는 지경이니 당연한 일화인지도 모르겠다.

본디 잔정이 많아, 추억이 담긴 것이라고 생각되면 새로 산 옷의 택에 달린 옷핀마저 보관하는 경우가 있지만 마음을 굳게 먹은 어떤 날은 그러한 자잘한 것쯤은 마구 버려대기도 한다.

하지만 버릴 마음이 들기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리며 연중 몇 번 드물게 청소를 시도하므로 자질구레한 것들은 늘 쌓여있다.

고양이를 키우는 집은 깨끗할 수 밖에 없다던데, 이제 고양이가 두마리임에도 불구하고 쌓인 물건 위 소복히 내려앉은 털까지 엎친데 덮친격으로 손대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놀라운 것은 어디에 무엇을 두었는지 의외로 곧잘 찾는다는 것인데, 종종 내키는대로 물건이 놓인 위치를 바꾸거나 치운답시고 한켠에 두었다가 영영 잃어버린 적이 꽤나 많다.


'정리'는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내게 평생토록 가장 어려운 숙제일거다.

애착과 부담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이것저것들과 나의 관계는 언제쯤 밀당을 끝내고 안정을 찾을 수 있을까?

가끔 그 것들에게 잔인하게도, 다시 되돌릴 수 없는 '내 방 초기화 버튼'을 꾹 누르고 싶어 진다.

"앗!"하고 한 번 실수처럼 눌러버리곤 여러 번 중첩되는 괴로운 선택의 순간들을 더는 겪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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