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야미야니 Nov 21. 2023

음식처방전

무기력도 음식으로

 S가 시무룩하게 상담실로 들어왔다. '제발 엄마에게 학교 그만둘 수 있게 해 주라고 해주세요.'

학교는 재미도 없지만 같이 놀 친구도 없고, 자기만 지나가면 다들 수군 거리는 것 같다고 얘기했다. 왕따 아닌 왕따를 당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1) 가볍게는 친구들이 다들 자기와 다른 중학교 출신이라 그런 거 같다고만 했다. 2) 깊게는 쓰기 힘든 이야기들이다. 


 상담 온 이유와는 정반대로 S는 사랑 많이 받고 자란 느낌이 났다. 사랑 듬뿍 받고 자란 아이 특성상 모두가 자기를 위해 주고 항상 봐주고 인정해 주지 않으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곤 한다. 계속 상담하면서 느끼는 부분은 '아~ 정말 사랑 많이 받고 자랐구나!' 그리고 실제로 보면 볼수록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하지만 각박한 중학교 생활을 견디며 권위적인 아빠로부터 기대했던 만큼 나오지 못했던 성적 때문에 아이는 위축된 상태로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고등학교에서 계속적인 낮은 성적으로 아이는 교우 관계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생활조차 모두 엉망이 되었다. 코로나 영향도 있다. 당연하다. 코로나라는 아픔과 고통은 S만 거쳐 간 게 아니라 요즘 모든 친구들을 다 스치고 지나갔다. 일상이 흔들리면서 식사도 불규칙해지고 여고생들에게 인기 만점인 불* 볶음면이나 쉽게 사 먹을 수 있는 인스턴트로 매일 끼니를 때우고 있었다. MMPI 검사와 TCI검사, 문장 완성 검사와 DISC 검사, 다중 지능 검사 등을 통한 '나 찾기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횟수를 거듭할수록 원래의 밝고 건강한 S가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상담 시간도 먼저 연락해 잡을 정도로 좋아지면서 이제 더 이상 학교에 결석계를 내지 않아도 되고 출결이 좋아지면서 성적도 조금씩 오르고 있었다. 많이 오르진 않았지만 0.5씩 2번의 등급 향상을 연속적으로 보여주었다. 좋아지는 과정 중심에도 바로 '음식'이 있었다. S의 경우엔 엄마가 차려는 주는 밥이 맛있진 않다고 하였다. 그래서 아침을  굶고 학교를 갔고 학교 급식도 맛없어서 또 굶고 하교 길게 먹는 길거리 음식이나 인스턴트 음식이 하루 식사의 대부분이라고 했다. 특히 *초콜릿도 좋아했다. (초코릿향 과자류에 대한 언급은 앞글 첨부) 그래서 나는 '왜? 꼭 밥은 엄마가 차려줘야 하는가!'라고 반문했고 S도 자기는 요리가 좋다고 했던 것을 콕 집어! '네가 식사를 준비해서 부모님께 차려 드리는 방식으로 하자!'라고 제안했다. S는 적어도 2일에 한 번씩 가족을 위해 했던 요리를 나에게 전달했다. 무기력해질 시간이 없었다. 밥상 차리느라 바빴으니까. 가족이 좋아하는 메뉴를 물어봐야 하기 때문에 무섭던 아빠와도 얘기할 기회가 생겨났고, 밥상을 차려주는 딸에게 더 이상 아빠는 성적만 가지고 꾸짖던 아빠가 아니었다. 생각 외로 귀여운 요리를 좋아하는 아빠였다. 그렇게 전학도 아니고 자퇴도 아닌 여느 여고생과 같은 일상으로 돌아갔다. 당장 급한 건 성적을 올리는 게 아니었다. 아이가 잘하는 걸 할 수 있는 여유와 그걸 기다려줄 수 있음 믿음과 인내였다. 이렇게 S는 자기의 진로를 요리, 조리로 정하고 진행 중이다. 나와 상담하기 전 정신과도 꽤나 오래 다녔다. 별반 차도가 없어서 나에게 왔던 케이스였다. 약을 끊고 나에게 음식 관련 처방을 받았다. 그 결과는 위와 같았다. 이렇게 난 또 '음식 안정제'를 실천했다. 다음 상담 때는 얼마나 더 좋아졌을까? 기대되는 밤이다. S의 창의적인 요리 솜씨에 나도 가끔 똑같은 요리를 따라 해 본다.'이렇게 창의적인 아이였다니......' 음식이 약이다.

작가의 이전글 음식안정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